생각쓰기, 말쓰기, 글쓰기의 치유
신영의 세상 스케치 918회
보스톤코리아  2024-01-08, 11:37:12 
오륙십대 부모님들 세대의 어릴 적 겨울방학을 생각해보면 방학 숙제 중에 '그림일기'가 있었다.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면 며칠은 즐거워 노트에 그림을 그리고 일기를 쓰다가 며칠은 또 숙제가 밀릴 때가 있었다. 그렇게 밀리면 요일은 캘린더를 찾아 적어넣는데 날씨는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참으로 오래된 빛바랜 흑백의 추억이다. 그래도 밀렸던 그림일기를 어찌해서라도 다 채워서 개학 날에 가져갔던 기억이다. 요즘으로 말하면 움직이는 곳을 셀카로 담아 SNS에 올리거나 하는 일과 별다르지 않을 듯하다. 

요즘 무엇보다도 책 읽기에 시간을 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각자 좋아하는 장르의 책을 찾아 만나다 보면 '내면의 나'와 만날 기회가 많다. 무엇보다도 책을 읽으며 밑줄을 긋는 이도 있겠으며, 메모를 하는 이들도 있다. 이왕이면 책을 한 번만 읽고 책장을 덮지 말고 두세 번 읽을 수 있다면 더욱더 좋을 일이다. 읽은 책에 대해 굳이 독후감이 아니더라도 내 생각을 노트에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면 일상의 삶에 큰 도움이 된다. 이렇게 메모했던 글들을 6개월이고 1년이 지나서 다시 들춰보면 거울처럼 '나 자신'이 보이는 것이다. 

살다 보면 관계 속에서 편안한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고 불편한 이들도 있기 마련이다. 누구한테 특별히 말할 수도 없고 혼자 마음에 담고 생각하자니 화가 불쑥불쑥 치밀어 오를 때도 얼마나 많던가. 이럴 때 할 수 있는 것은 나의 마음을 달래려고 붓글씨를 쓰든가 그림을 그리든가 일기를 썼다. 그것으로도 화가 삭이지 않을 때에는 기도를 하고 작은 유리병에 속상한 내 마음과 내용을 적어 유리병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화가 가라앉으면 그 속의 것들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곤 했던 기억이다. 그렇게 나의 글쓰기는 내 속의 것들을 혼자서 치유하는 방법이 되었다. 

얼굴의 생김새가 다른 만큼이나 삶의 방식이나 사고하는 방식은 모두가 다르다. 다른 사람의 다름을 인정하기까지가 힘들었다는 생각이다. 누가 뭐래도 내 생각이 이렇게 와 있으면 내가 옳은 것 같았기에 의견이 다르면 틀리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생각(마음)이 들었을 때 내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대신에 노트에 내 생각을 적는 습관이 생겼다. 그렇게 생각쓰기와 하루의 일기를 쓰면서 나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모든 것들이 '내 마음의 치유'의 시간이 된 것이다.

상대에게 생각을 정리하지 않고 툭 뱉어버린 것은 말이라기보다는 서로에게 불편한 마음을 전달하기도 한다. 툭 뱉어버린 그 말 한마디에 말한 사람은 멀쑥해지고 듣는 사람은 서운해지는 것이다. 서로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의를 갖춰야 그 관계가 오래가는 것이다. 우리네 삶에서 때와 장소에 따라 가릴 수 있는 말은 그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다.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일은 그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만큼이나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때와 장소에 맞는 말은 지혜롭지만, 그렇지 않은 말은 상처가 되는 것이다.

생각쓰기를 실천하면서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으며, 나 아닌 다른 사람의 마음이 되어보는 귀한 시간이 된 것이다. 이렇게 생각쓰기가 자연스러워질 때쯤이면 그 어느 관계나 모임에서 때와 장소에 따라 말하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라 부족한 내 모습을 알아차렸다면 노력과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생각쓰기는 나의 고집과 아집을 찾아내는 훌륭한 도구가 되었으며, 말쓰기는 배려와 겸손을 배우게 하는 귀한 스승이 되었다. 

요즘처럼 여기저기 SNS로 서로의 생각을 올리는 일이 많아지는 때에는 더욱이 글이란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게 된다. 생각 없이 툭 적어올린 글로 인해 서로 마음이 상하는 일도 종종 생기게 된다. 말은 그나마 서로 그 자리에서 서로의 마음으로 풀 수 있지만, 글이란 것은 지워지지 않고 서로에게 상처가 되어 오래도록 그대로 있지 않던가. 내 마음이 편안해야 상대방에게도 너그러워지는 것이 인지상정이지 아니던가. 혹여, 내 마음의 불편함이 있다면 생각쓰기, 말쓰기, 글쓰기를 통해 치유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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