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과 규장각 도서의 수난
보스톤코리아  2013-10-16, 14:24:21 
문제는  60여만권의 도서가 온통 교내사방에 흩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할지 엄두가 나지않았다. 하지만 총장님 앞에서 3개월이면 개관할 수 있도록 정리해 놓겠다고 했으니, 이제 그  책임은 면할 수 없는 것이다.   사정이야 어떻든 3개월 내에 도서관을 열 수 있게 해놓아야 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살아 남을 수 없는 것이다.

우선 이상준 서무과장에게  고등학교졸업 이상의 직원  10명을 채용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때 새로 채용한 직원이 후일의 유동렬(사서과장), 이상은(사무관)    백용기(본부총무과장), 장태원(사서), 서기봉(사서), 김용희(사무관) 등이다.      

우리는  사방에  흩어져있는 도서들을 우선 모아다가 도서관통로에 늘어 놓았다. 우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힘들게 일했다.     나는 도서를 정리하는 동안에는 거의 집에 들어가지못했다. 약속한 기한 내에 일을 마쳐야 했고, 또 이상은과 백용기군은 시골에서 올라왔기 때문에 잘 데가 마땅치않아  도서관숙실에서 같이 자면서 밤에도 일했다.   

밤에 잠이 들면 산에 오르는 꿈을 자주 꾸었는데  낙엽이 쌓인 언덕을 기어 오르다 미끄러 떨어지는 순간 흰책장이 바람에 펄렁펄렁 날려 떨어지는 꿈이었다. 그래서 혹 내 도서정리계획이 잘못되는 꿈이 아닌가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다.  어느날의 꿈이었다. 검정치마의 흰저고리를 입은 처녀가 방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와 앉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들이 있는 방에 여자가 함부로 들어온다고 야단치면서 썩 나가라고 했다. 그랬더니 처녀는 말 없이 문을 열고 나가는 것이다.  나는 이상하여 뒤를 쫓아가 보았다.  처녀는 도서관수위실 밑의지하실로 내려가는 것이다. 꿈이 하도 이상하고 또 생생하게 기억되기에 총독부 참사관실 때부터 규장각도서를 관리해 왔으며 경성대학교 당시 도서관 사서관이었던 장지태 선생에게  간밤의 꿈 얘기를 말씀드렸다.  

장지태 선생이 좀 이상한 일 같으니 한번 지하실에 내려 가보자고 하시기에 같이 지하실에 내려가 보았다.  그런데 지하실에는 북한군이 입다 버린 헌옷과 빗자루, 걸레 등의 쓰레기로 가득차 있었다.     

그래서 쓰레기를 이리저리 헤치며 뒤져보았다.     족히 2 m 나 되는 검은 현판 두개가 발견되었다.   그것을 가지고 올라 와 먼지를 털고 보았더니  하나는 수교 수대관문형비선생모득승당(受敎 雖大官文衡非先生母得升堂)이라고 각 되어져 있었다.    즉 “대관이라 해도  선생이 아니면 당에 오를 수 없다.”  라고한 왕의 분부이다.  다른 하나는  수교 객래불기 (受敎 客來不起)라 하였는데 “모든 규장각의 신하는  손님이 와도 일어나지 말라” 한 수교이었다.     

청소부를 시켜 지하실 쓰레기를 다 치워보았으나  다른 특이한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나는 그헌판을 물에 씻어 말린 다음 먹을 갈아 칠하고 백목을 갈아 풀에 개어서 각자에 칠했다.        

그랬더니 보기가 참으로 좋았다. 그래서 그것을 서고 4층  규장각서고 입구에 가져다 걸어 놓았다.    국회도서관장 강주진 박사가 내 말을 듣고 찾아와서 그 현판을 모사하여다가 똑같은 현판을 만들어 국회도서관 입구에 걸어놓은 것을 보았다. 이 현판은 정조대왕의 친필을 양각한 수교로 이조왕실 도서관인 규장각의 권위와  정조 문예부흥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하다.  지금도 서울대 규장각의 전시실에 걸려 있을 것이다.
  
그동안 일한 성과로 어느정도 자신이생겼다.    모두 나서서 도서를 주어진 청구번호에 따라 해당 서가 앞에 가져다 놓게 했다.  그 일이 끝난 다음 청구번호순으로 서가에 올려 놓게 하였다. 그리고 해당 배열이 잘못되었는지를 점검했다. 그해 12월 말까지 장서 정리를 끝마쳤다.   서고도 말끔히 정돈되었다.  이제 장서목록함을 찾아야한다. 이곳 저곳 찾아 보니  통부연구실 한 구석에 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카드함을 열람실에 가져다가 짝을 마추어 보니  없어진 것이 없이 완전하였다.

1954년 1월까지 도서관을 개관하여 도서의 대출과 학생들이 열람할 수 있게 정리해 놓았다.     최규남 총장님을  오시라고하여 정리된 도서관 현장을 보여드렸다. 총장님께서 매우 좋아하셨다.    서고를  둘러보시고 난 다음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셨다. 여기 사진은 그때 찍은 사진이다.   왼쪽부터 이우영 선생,  정광현관장,  최규남 총장, 그 옆에 필자이다.  이후  인사이동이 있었다.  사서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정광현 박사님은 그 후 나를 전적으로 신임하여 도서관 운영을 맡기고  제자 이상으로 나를 아끼셨다.


백린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 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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