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화랑세기花郞世紀, 원화源花 미실美室(21)
보스톤코리아  2024-03-25, 11:27:35 
미실의 중매와 진평왕의 승락으로 결혼한 문노와 윤궁은 가장 화목한 부부로 살았다. 골위骨位가 없었던 문노는 진골이 되어 신분의 상승은 물론 자신의 이상理想을 성취하는데 한층더 가까와졌다. 문노는 결혼식 날이 생애에서 가장 경사스러운 날이라며 기뻐했고, 윤궁은 신기神技에 달하는 격검술을 보유한 ‘영웅호걸’ 문노의 아내가 됨을 더 없이 행복해 하였으며, 또한 같은 골이 된 남편을 마땅히 섬기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윤궁은 화주로서 직접 많은 옷을 만들어 낭도들에게 나누어 주기도하였다. 그들의 집안은 늘 화락하였고, 조용한 모습이 마치 물수리와 원앙 같았다. 그들은 외출할 때는 늘 같은 수레를 타고 다녔고, 미혼 때는 항상 방정하고 빈틈이 없었던 문노는 시비를 가리기 보다는 화목함을 더 좋아하는 사람으로 변했다. 그는 술을 마시지 않았고 또한 유화들과 색사를 나누지도 않았다. 
결혼 후 윤궁은 문노에게 “첩이 듣건대 영웅은 주색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낭군은 술을 안 마시고 색을 절제하니 첩이 속으로 부끄러워합니다” 하니, 문노가 대답하기를 “색을 좋아하면 그대가 질투할 것이며, 술을 좋아하면 그대의 일이 많아질 것이다” 라고 대답하였다. 윤궁이 또 말하기를, “장부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지, 어찌 한 여자를 염두에 두겠습니까? 첩이 있으면 저의 일을 대신하게 되니, 기쁜 일이지 투기할 일이 아닙니다. 지아비를 위하여 하는 일이 많은 것은 처의 영광입니다” 라고 했다. 그후 문노는 술을 조금씩 마시기도 하였고 한 명의 침첩을 두었으나 난잡하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성안의 사람들은 “지아비를 택할 때는 문노와 같아야 하고, 처를 얻는 데는 마땅히 윤궁과 같아야 한다” 고 말했다. 그들은 평생을 화목하고 행복하게 살다가 죽음도 같이하였다. 606년, 문노는 69세의 나이로 죽었다. 윤궁도 같은 해 사망하였다. 그녀의 나이는 59세였다. 문노의 화상은 포석사에 모셔졌다. 즉 신궁의 선단仙壇에 신으로 모셔졌다는 것이다. 김유신은 삼국을 통일한 후 문노를 사기士氣의 으뜸으로 삼았다. 그리고 신문왕은 문노를 각간(1등급)으로 추증하고 대제를 행하였다. 
이에 앞서 582년, 문노는 자신의 수제자이자 화랑의 부제였던 비보랑秘寶郞에게 풍월주의 위를 넘겨주고 호국선 낭도들의 무도를 연마시키며 부인 윤궁과 함께 장남 대강大剛과 갓 태어난 차남 충강充剛의 재롱을 만끽하고 있었다. 후일(654년) 김춘추가 무열왕으로 즉위하는데 김유신과 함께 가장 큰 공을 세우고 상대등에 오른 문노의 삼남 금강(상대등 655년 ~ 660년, 김유신은 금강이 죽은 후에 그를 이어 상대등이 되었다)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문노를 이어 9세 풍월주가 된 비보는 문노의 제자 중에서 가장 으뜸이었다. 비보는 549년 7세 풍월주 설화랑과 동년에 출생하여 가까이 지내면서 노래와 피리 등 예악을 함께 배웠지만 설화랑에게 미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별로 소질이 없었다. 그래서 문노의 제자가 되어 격검술을 배우니 마침내 가장 뛰어난 수제자가 되었다. 비보가 18세 때인 566년(또는 567년, 세종이 6세 풍월주로 대장군 이사부와 김무력이 등이 이끄는 군사들과 함께 신라의 국토를 확장하고 있던 무렵이다)에 유지柳枝라는 여검객이 신출귀몰하며 여러곳에서 소요를 일으켰다. 두목 유지를 따르는 무리(화랑세기에는 난도亂徒로 기록하였다)는 점점 늘어났다. 이에 조정에서 여러차례 군사를 보내 소탕하려 하였으나 여러번 실패하였다. 그래서 당시 격검술의 2인자로 명성이 날리던 열 여덟 살의 비보가 선발되었다. 그는 낭도들을 데리고 유지의 진영을 찾아가 그녀를 생포하였다. 다만 화랑세기의 기록에 의하면, 유지가 비보의 아름다운 풍모에다 의협심이 강하게 보여 스스로 항복했을 것이라고 적고 있다. ‘난도’들의 무리를 소탕한 비보는 그들을 가련하게 여기며 모두 풀어 주었다. 그들은 다시는 떼를 지어 소요를 일으키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뿔뿔히 흩어졌다. 그런데 유지는 홀로 가지않고 “나는 다만 그대를 좇아 죽기를 원하지 다른 곳으로 도망하여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그래서 비보는 유지를 데려와서 첩으로 삼았다. 
비보는 미실과 내외종간이다. 즉 미실의 아버지 미진부와 비보의 어머니 실보가 남매간이다. 비보의 아버지는 비대전군比臺殿君인데 부모는 법흥왕과 옥진이다. 법흥왕이 적자가 없어서 차기왕을 선택할 때 비대는 박영실(옥진의 남편이자 법흥왕의 누이 보현공주의 아들)과 함께 왕위계승 1순위에 있었다. 그런데 법흥왕의 적녀 지소(진흥왕의 모후)가 1세 위화랑(옥진의 아버지)과 삼엽공주(부모는 법흥왕과 벽화, 실보의 어머니로 비보의 외조모)와 함께 손잡고 갓 일곱 살인 자신의 어린 아들 삼맥종을 즉위(540년)시키고 551년까지 섭정을 하였다. 당시 지소는 계부繼夫 박영실과 부부사이였지만 왕후가 되기보다는 태후를 선택하여 직접 권력을 휘둘렀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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