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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카 백제 문화를 찾아서 : 15. 향원사(向原寺)와 일본 최초의 불상
보스톤코리아  2011-09-26, 15:56:11   
일본에 불교가 처음으로 전래된 정황이 일본 서기 긴메이(欽明)천황 13년 기에 적혀 있다. 백제의 성왕(聖王)이 달솔 노리사치계를 보내어 금동 석가불 1구와 경전을 보내왔다. (552)

긴메이 천황이 기뻐하며 불교를 국교로 수용할 것 인가를 중신들에게 물으니 소아도목(蘇我稱目)을 중심으로 한 승불파(崇佛)는 불교를 수용하려 했으나 물부미려(物部尾與) 대련을 중심으로 한 신도를 신봉하는 배불(排佛) 파는 강경하게 반발하였다.

천황이 불상을 소아 도목에게 주었더니 향원(向原)의 자기 집을 깨끗하게 하고 불상을 모셔서 절로 삼았고 향원사로 이름 지었다. 일본 최초의 절이다.

때마침 나라에 역병이 유행하여 죽는 사람들이 많았다. 물부대련이 천황에게 항의하기를 불교를 받아들이니 국신(國神)이 노하여 재앙이 닥친 것이라고 하며 불상을 없앨 것을 제의하자 천황도 어쩌지 못하고 승락해 버렸다. 물부대련은 향원사를 불질러 태워 버리고 불상을 난파의 굴강(堀江)에 던져 버렸다.

향원사는 나라의 아스카에 있는데 멀리 떨어져 있는 난파( 지금의 오오사카)까지 가서 불상을 물에 던진 이유가 궁금하다. 난파는 원래 백제 선박들이 왜국에 들고 나가는 관문이었기 때문에 백제에서 온 타국신인 불상을 다시 백제로 돌려 보낸다는 의미로 이곳에 버렸을 것이다.

그 후에 향원사를 복원하여 사쿠라이지 절을 세웠는데 소아도목의 대를 이은 소아마자 대신은 백제에서 3년 동안 공부하고 돌아온 세명의 비구니를 이 절에 입주 시켰다(588). 이들이 일본 최초의 비구니였다.

이 때는 불교를 처음 받아들인 긴메이 천황과 그의 뒤를 이은 비다쓰 천황이 사망 하고 비다쓰의 미망인 취옥희 황후(후일의 스이코 천황)가 이 절에서 두문불출 하고 사망한 부군을 위하여 극락 왕생을 기원하고 있었다.

비다쓰 천황의 대를 이은 슈순 천황이 소아마자 대신에게 암살 당하고 나서 스이코 천황이 이곳 향원사에서 즉위하면서 아예 황궁으로 삼아 버렸다. 그래서 이름도 향원사에서 풍포궁(豊浦宮)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 몇 년전에는 이곳을 발굴하여 천황의 궁궐인 것을 확인하였다고 한다.

향원사는 소아마자가 세운 아스카사 로부터 구다라 강 지류를 사이에 두고 도보로 10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데 지금은 향원사 (고겐지)로 불리고 있다.

백제 성왕이 보내준 석가 금동 불상은 난파의 굴강에 버렸는데, 기적처럼 다시 찾아서 나가노현 선광사(善光寺)에 비불(秘佛)로 안치 되었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공개를 안 한다고 한다.
지금 향원사는 옛날의 영화를 뒤로 하고 찾는 사람조차 별로 없는 한적한 사찰이 되었다.

필자가 향원사를 찾은 때는 늦은 오후였다. 해질 녘에 볼 것이 많이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향원사를 선택해서 찾아 간 것은 이 곳이 백제하고 관련된 역사가 많은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향원사는 일반 개인집으로는 조금 큰 규모의 집 정도였지 일국의 왕궁으로 보기에는 초라한 건물이었다. 절 입구에 “ 推古天皇 豊浦宮跡 “ 이라고 쓴 안내 간판에 소가씨의 향원사와 풍포궁과 관련된 일을 적어 놓았다. 금당 옆에는 몇 년 전에 풍포궁 궁적 (宮跡)을 확인하기 위해 발굴했던 현장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찾아오는 사람이 일절 없는 지 금당이 잠겨 있길래, 요사체를 두드리니 주지 스님의 부인이 맞아 준다. 주지 소가원 경정(蘇我原敬淨)씨는 출타중이라고 하는데 몇 가지 질문에 모두 모르쇠로 일관하니 답답 하기 그지 없었다. 주지 소가씨가 예전 소가 왕조의 소가씨와 어떤 관계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아무 관계 없다는 대답만은 확실하게 해 주었다.

금당에 들어가니 금방 내 눈에 확 띠는 것이 한 가지 있었는데 30cm 정도의 금동 석가불이 유리곽 속에 담겨 있는 것이 아닌가. 자세히 보니 얼굴에 파편 자국이 많고 귀쪽에 녹이 몹시 슬어 있는 것이 것이 아주 오래된 불상 같았다. 필자 생각에 꼭 백제 성왕이 긴메이 왕에게 서기 552년에 전해준 금동 석가상으로 짐작 되는데 그전에 본 적이 없으니 확인할 길이 없었다.

부인 말로는 20여년 전에 도난을 당하였는데 바로 얼마 전에 경매에 나온 것을 보고 예전에 찍어 놓았던 불상 사진을 가지고 가서 찾아 왔다고 하는데 자세한 것은 남편이 알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보아온 기록에 일본 최초의 불상인 석가 금동상은 나가노 선광사에 있다고 했는데 향원사에 비슷한 것이 있으니 몹시 혼동 되었다. 무작정 주인 오기를 기다릴 수 없어서 불상 사진만 여러 장 찍고 나와야 했다.

보스톤에 돌아온 후에 불상 사진을 방송작가 홍하상(洪夏祥) 교수에게 email로 보냈더니, 자기가 생각 하던 불상의 모습하고는 차이가 있다고 하면서 자신이 향원사 갈 때 동행했던 담당 PD에게 사진을 보내서 확인 해줄 것을 요청 했다고 한다. 문제는 담당 PD가 “대장경의 길” 이란 대작 다큐멘타리를 찍느라고 해외 출장중이라 오오사카 상업대학 양형은 역사 교수 에게 다시 연락해 두었다고 한다.

일본 센다이가 쓰나미로 쑥대밭이 된 2-3일 후에 양교수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가 알아본 바는 나가노 선광사 비불은 소문이고 진짜 불상은 나라 국립 박물관에 모셔져 있는데 오랜 세월을 지내는 동안 (1500년) 망가져서 원형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향원사 불상은 복사품이라고 한다. 필자는 비록 복사품이라도 원형의 모습을 간직한 불상의 모습을 보스톤코리아 독자들에게 보이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 하였다.

그러다가 한달이 지나서 또 다른 소식을 홍하상 씨가 전해 주었다. 목마른 사람이 샘물 판다고 홍하상 씨가 나라의 향원사를 양교수와 함께 찾아가서 문제의 불상이 백제 성왕이 일본의 긴메이 천황에게 보내준 진짜 불상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 동안 고생 끝에 진짜 불상을 볼 수 있게 노력 해 준 홍하상, 양형은 교수에게 감사를 드린다.

홍하상 교수는 이미 소개한대로 <가업 1400년, 금강조>로 MBC 방송대상 작가상과 백상 출판 문화상을 수상한 분이고, 양형은 교수는 원래 오오사카 아시아나 황공 지점장으로 있으면서 주위에 산재해 있는 한일 고대사 유적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원래 직장을 사직 하고 역사를 공부 해서 지금은 오오사카 상업대학 교수로 재직 중 이다.

아스카베 신사의 제신, 곤지왕 연구에 심취해서, 필자가 금년 1일 2일에 문안 전화했더니 곤지왕 신사 에 세배하고 오는 길이라고 한다. 잊혀진 우리 역사를 찾으려고 이렇게 애 쓰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에 일말의 위안을 느낀다. 조상의 역사를 망각한 민족에게는 장래가 없다는 격언을 마음에 새긴다.

 
향원사 정문
향원사 정문
 
향원사 금당
향원사 금당
 
 얼굴에 파편 자욱이 많은 석가금동 불상.
얼굴에 파편 자욱이 많은 석가금동 불상.
 
부식이 심한 금동불상
부식이 심한 금동불상
 
소가 경정 주지의 부인. 필자의 왼쪽 팔꿈치에 유리 상자에 담긴
소가 경정 주지의 부인. 필자의 왼쪽 팔꿈치에 유리 상자에 담긴
 
금동불상을 모셔 놓은 금당
금동불상을 모셔 놓은 금당
 
김은한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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