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127
보스톤코리아  2016-04-25, 11:52:25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미인이며 또한 가장 색사色事(음사陰事)를 잘 했던 여인 중의 한 명으로 전해지는 미실美室, 그는 세 명의 왕과 태자 그리고 왕족들에게 색공色供을 하였다. 미실은 제24대 진흥왕과 그의 맏아들 동륜태자, 진흥왕의 둘째 아들로 동륜의 동생인 제25대 진지왕(김금륜), 동륜태자의 아들인 제26대 진평왕(김백정) 등 할아버지, 아들, 손자에 이르는 3대에 거쳐 색공을 한 우리나라 역사상 유일무이한 여인이다. 

신국 신라의 색공은 단순한 성관계나 에로티시즘(Eroticism)이 아니라 신분이 높은 사람에게 여자를 바치는 일을 뜻하는 것으로, 이는 고도의 정치행위였다. 여기서는 그가 일생을 통해 바친 색공을 간단히 살펴보고, 구체적인 내용은 그가 정치적으로 실권을 잡았던 당시, 관계한 인물들과의 연결고리를 풀면서 당대 최고의 미인은 어떻게 음사를 하였으며 무엇을 얻었는가를 따라가 본다.

미실의 아버지는 2세 풍월주 미진부공이고, 어머니는 묘도부인이다. 미실의 생존연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주위 사람들의 기록 등을 종합 해보면 546년에서 550년 사이에 태어나서 619년에서 622년 사이에 죽었다. 화랑세기에서 묘사한 미실의 외모는 “용모가 절묘하여 풍후함은 옥진玉珍(외할머니, 묘도의 어머니)을 닮았고, 환하게 밝음은 벽화(할머니 삼엽궁주의 어머니)을 닮았고, 빼어나게 아름다움은 오도(외할머니 옥진의 어머니)를 닮아서 백화百花의 신묘함을 뭉쳤고, 세 가지 아름다움의 정수를 모았다고 할 수 있다” 먼저 옥진은 박영실의 부인이었는데 너무나 아름다워서 법흥왕이 후궁으로 삼았다. 

그리고 자신의 딸 지소를 박영실과 혼인시켰다. 그리고 할머니의 어머니 벽화부인은 오지奧地 날이군捺已郡(현 경북 영주)에 살던 파로의 딸이었는데 비처왕(소지왕, 제21대왕)이 그녀의 미모에 반해 정사를 제쳐두고 평민의 복장으로 몇 번을 찾아가곤 하다가 궁으로 데려와서 후궁으로 삼았다. 그리고 제22대 지증왕이 왕위에 오르면서 법흥의 후궁이 되었다. 그리고 오도는 외할머니 옥진의 어머니인데 그녀 또한 당대 최고의 미인 중의 한 명이었다. 그녀도 법흥의 후궁이었다가 위화랑에게로 가서 옥진을 낳았고, 다시 아시공, 즉 미실의 할아버지의 후처가 되었다. 이렇듯 미실은 당시 신라 최고 미인들의 ‘피’를 양쪽 부모로 부터 받고 태어났으니 아름답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외할머니 옥진은 미실이 어릴 때부터 “이 아이는 우리의 도道를 일으킬 만하다”라고 말하며 옆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면서 미도媚道(교태를 부리는 방법)와 가무를 가르쳤다. 이는 물론 색공을 위한 교육이었다. 이렇게 색공교육을 받은 미실은 평생 수 많은 남자들과 관계를 하였다. 

그렇지만 신국神國 신라의 도道인 일부일처의 원칙에 따라 미실도 남편은 있었다. 지소태후의 아들인 세종世宗과 혼인하였다. 미실은 남편 세종과 처음 성관계를 하였고, 평생 그를 남편으로 삼았다. 세종의 어머니 지소태후(제23대 법흥왕과 보도왕후 사이에서 태어 났으며, 삼촌인 입종갈문왕과 결혼하여 진흥왕을 낳았다)는 진골정통이기에 대원신통인 미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종이 미실을 너무나 사랑하였기에 입궁시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상통하였다. 이 무렵 지소태후는 진흥왕의 왕비인 사도왕후(대원신통)을 폐하고 자신의 딸이자 세종의 누이인 숙명을 왕비로 삼으려고 했다. 이런한 사정을 미실이 이모인 사도왕후에게 고했고, 지소태후는 노하여 미실을 출궁시켰다. 

출궁한 미실은 사다함과 서로 사랑을 나누었다. 세속오계를 실천하는 화랑의 표상으로 역사속에 빛나는 사다함의 용맹성은 561년 반란을 일으킨 가야를 진압할 때도 나타났다. 미실은 그들의 사랑을 다짐하고 그의 출정을 위로하기 위해 ‘풍랑가風浪歌’를 들려주었다. 이 노래가 화랑세기에 전하는 신라의 향가 두 수 중의 하나이다. 한편 미실을 잃어버린 세종의 나날은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지소태후가 아들 세종의 ‘상사병’을 염려하여 미실을 다시 입궁시켜 세종의 부인으로 삼았다. 임금을 위하여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양장용졸’의 정신으로 반란군을 진압하고 월성으로 돌아온 사다함, 사랑하는 미실은 이미 다른 사람의 부인이 되어 있었다. 그는 ‘청조가靑鳥歌’를 지어 부르면서 슬픈 심경을 달랬다. 이 노래가 화랑세기에 전하는 또 다른 한 수의 향가이다. 미실의 색공 이야기는 계속된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삼국사절요,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신라속의 사랑 사랑속의 신라(김덕원과 신라사학회, 경인문화사)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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