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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183
화랑세기花郞世紀, 6세 풍월주風月主 세종世宗(12)
보스톤코리아  2017-06-19, 11:32:40   
[죽음에 임하여 이화공이 감싸 안고 슬퍼하며 말하기를 “그대 아우는 아직 어린데, 그대가 만약 일어나지 못한다면 누가 계승할 것인가?” 했다. 사다함이 말하기를 “신의 누이인 미실의 남편이, 모랑공의 고사故事에 의거하면, 또한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했다. 이화공이 이에 태후에게 아뢰어 (세종전군을 풍월주로) 세우기를 청했다. 태후가 말하기를 “나의 아들은 어리고 약하다. 어찌 능히 될 수 있는가?” 했다. 미실이 세종에게 권하여 말하기를 “사다함 종형從兄<종질從姪이다. 당시는 그 당시 사람들이 서로 좋아하면 형제라 했다. 그러므로 형이라 불렀다>이 나를 사모하여 죽었다. 죽음에 임하여 한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곧 장부가 아닙니다” 했다. 세종이 그렇게 여기고 태후를 설득하여 허락을 얻어, 6세 풍월주가 되었다. 인하여 설화랑薛花郞을 부제로 삼았다.]

5세 풍월주 사다함의 죽음과 6세 풍월주 세종의 취임 광경이다. 먼저 삼국사기 사다함열전에 보면 끝부분에 그의 죽음에 관한 기록이 있다. 인용하면 “함含이 전에 무관랑武官郞과 더불어 죽음을 같이 하는 친구死友가 되고자 약속했는데 무관이 병들어 죽자 매우 슬프게 울다가 7일 만에 그 또한 죽으니 그때 열일곱 살이었다”. 한편 화랑세기에는 사다함의 죽음이 아주 상세하게 실려있다(5세 풍월주 사다함 참조). 사다함의 어머니 금진낭주, 그녀는 희대의 색녀로 묘사되어 있다. 화랑세기를 자세히 보면 ‘색공’과 ‘색사’를 구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왕(족)들과 혼인을 하는 인맥姻脈은 진골정통과 대원신통에서 제공하였다. 모든 처첩이 골품의 유지나 정략에 의해서 혼인하였다. 심지어 단순한 색공도 그렇게 공급되었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색사는 단순히 개인의 정욕에만 얽혀있음을 볼 수 있다. 금진낭주는 초대 풍월주 위화랑의 딸이다. 언니 옥진과 함께 법흥왕의 후궁이 되었다가 왕이 죽자 궁 밖에 나와서 살았다. 이때 5년 동안이나 그녀를 원하는 발원기도를 했던 구리지가 찾아가서 함께 살았다. 이때 토함, 사다함, 새달이 태어났다. 그리고 548년 고구려가 백제를 침공한 독산성전투에 백제의 지원군으로 출전한 구리지가 전사하자 금진은 구리지의 부하(용양신)인 설성과 관계하였다(설성외에도 5명의 남자를 동시에 거느렸다, 金珍娘主素荒于色 – 금진낭주는 평소에 색에 빠졌다). 여기서 태어난 아이가 설원랑(설화랑)이다. 그 후 561년, 대가야가 반란을 일으키고, 이사부가 대장으로 사다함이 귀당비장으로 출전하는데 함께 간 설성이 전사하자 이번에는 금진이 아들 사다함의 친구인 무관랑을 침실로 불러들였다. 

무관랑은 사다함보다 나이가 조금 위다. 500여명의 화랑도를 거느린 낭두였는데 사다함의 인품에 감동하여 주군으로 삼고자 청했다. 그리고 그들은 사우死友를 결의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친구의 어머니 금진낭주는 자신을 계속 침실로 불러들이니 자괴감에 빠진 무관랑은 그만 월성의 성곽을 뛰어내렸다. 해자(구지)에 빠진 그는 중상을 입고 곧 죽었다. 이에 사다함은 그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식음을 전폐하고 7일간 앓다가 죽었다. 이 무관랑의 죽음, 그가 빠진 해자가 바로 박창화가 필사한 화랑세기가 위작이 아니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에 비좁은 월성만으로는 주거지가 부족하였고 또한 통일 후 외적의 침입 위험성이 줄어든 현실에서 성 밖의 해자를 매립하여 택지로 조성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리고 기록에 의하면 대규묘의 궁원지인 안압지가 674년(문무왕14년) 에 조성된 사건은 상징적이지 않을 수 없다. 즉 필사본이 완성된 시기는 1930년대인데, 1,300여 년 전에 매립되었다고 사료되는 해자의 존재성을 알았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월성의 해자는 1984년 부터 시작된 해자 확인조사를 시작으로 10년 이상에 걸쳐 발굴되었다.

사다함! 그는 충효의 사상과 임전무퇴 그리고 붕우유신의 화랑도 정신으로 완벽하게 무장된 화랑의 수장인 풍월주였다. 하지만 그는 꿈과 기량을 채 펼쳐보지도 못하고 17세의 어린나이에 요절하였다. 화랑의 큰별이 떨어졌다. 사다함은 죽기 전에 4세 풍월주를 지낸 이화랑에게 차기 풍월주로 세종이 적임자라고 추천하였다. 세종은 지소태후의 아들이다(아버지는 태종공). 즉 진흥왕과는 이부동복 형제이다. 지소가 세종은 약하고 어리다고 하였지만 모랑공의 전례를 말하면서 세종이 능히 풍월주의 책무를 감당하리라고 확신하였다. 모랑공은 3세 풍월주였는데 555년에 비사벌(창녕지역 – 진흥왕 창녕순수비) 지역을 여행하다가 객사하였다. 그래서 당시 부제였지만 궁에서 지소의 침신으로 있던 이화랑이 추대되어 4세 풍월주가 되었다. 

드디어 세종의 6세 풍월주의 취임으로 미실의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예고한다. 미실은 세종의 부인으로 입궁하였지만 후일 진흥왕과 그의 아들 진지왕, 손자 진평왕에게까지 색공을 하며 화랑도 뿐만 아니라 왕실에서 막강한 권력을 전횡하였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삼국사절요,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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