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조기
보스톤코리아  2006-07-07, 23:56:07 
보스톤 북쪽 차로 10여분 거리에 있으며, 두 개의 큰 고속도로(I-93, I-95)가 만나 교통이 편리하고 좋은 교육 시스템으로 알려진 이 곳 레딩에 흑인, 히스패닉, 아시안등의 소수민 주민이 극히 적다는 것을 느끼며 지내게 되었다. 아이를 데리고 동네 공원이나, 타운 도서관을 가면 그곳에 있는 많은 사람들 중에 우리만 아시안 가족일 때가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곳에 우리 교회가 이 지역 역사상 첫번째의 소수민 교회로 지난 해 들어서게 되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마을 주민들은 타운의 한 가운데를 남북으로 걸쳐 놓여있는 28번 도로에 오래 동안 위치해 온 이 낡은 교회 건물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동안 닫혀 있던 이 건물에 새로 들어온 우리 한인교회에 대해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표명한 것도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다. 나 역시 이 마을에 새로 들어온 교회의 새 목사로서 여러가지 일에 의도하지 않게 관련되는 일들이 있어왔다.
지난 5월 30일 월요일은 메모리얼 데이였다. 미국에서 10년을 살았지만 미국의 현충일이라 할 수 있는 이 국경일에 외국인인 내가 명절의 특별한 느낌을 가지고 보냈던 기억은 없었다. 그 전 주에 레딩참전용사 협회의 한 임원으로부터 레딩의 목회자로서 타운 묘역들에서 있을 네번의 기념식 중에서 한 번 시작 기도를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일단  당황했던 까닭도 여기에 있었다. 나의 참석 여부를 나중에 다시 알려 주기로 하였다가 월요일 행사 당일 아침까지 그냥 지나온 것은 여러가지 교회일로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 여전히 행사 참여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메모리얼데이 아침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단 옷을 차려 입고 지정된 타운묘역으로 가면서도 확답을 해주지 않은 나의 기도 순서가 그동안 없어졌기를 바랬다. 가는 길에 지나게 된 타운센터에는 아마 휴일을 맞아 무슨 거리 행사가 있는 듯 수 많은 레딩 주민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모이고 있었다. 그 거리 행사 때문인지 묘역으로 가는 길은 교통이 차단되어 있었고 나는 길을 돌아서 뒤쪽 입구로 조용한 묘역에 들어갈 수 있었다.
커다란 묘역은 조용했고 중앙의 언덕진 곳에 몇 줄의 의자와 연설대가 놓여 있고 할머니들 서너명이 거기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예상한대로 그리 큰 행사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 혹시 내가 하게 될 지 모를 기도에 대해서도 마음이 놓였다. 의자에 앉아 시계를 보며 '시간이 다 되었는데 기념식 진행자도 아직 보이지 않네'하고 생각할 무렵 갑자기 행진 밴드 소리가 들려왔다. 저 아래, 묘역의 입구를 보니 제복을 차려 입은 참전용사들이 깃발을 앞세우고 열을 맞추어 들어 오고 있었다. 그 뒤로는 레딩 경찰대, 레딩 고등학교 밴드부, 참전용사 가족들, 타운 관계자들, 스카웃 단원들에 이어서 방금 전  타운 센터에 나와 있던 수백명의 마을 주민들이 끝없이 들어오는 것이었다. 요즘 말로 "대략난감"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새 내 손에 쥐어 진 기념식 순서지에는 첫 순서인 기도에 내 이름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어느 새 내 이름이 불려 지고 나는 연단앞에 서 있었다.
나는 천천히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저는 새로 시작된 한인교회인 나사렛사람의교회 목사입니다. 제가 처음 이 메모리얼데이 기념식에 순서를 부탁 받았을 때에 망설였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아직 이 나라의 시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곧 한국전쟁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5만여명의 미군들이 한국전쟁을 통하여 죽었습니다. 그러한 유엔군과 또 미군들의 희생으로 우리는 자유와 평화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자리에 와서 감사의 표시를 해야한다는 생각에 여기에 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동시에 전쟁의 비극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국전쟁 중에 저의 큰 아버지 한 분은 인민군으로 끌려가서 북한을 위해 싸워야 했습니다. 동시에 저의 또 다른 큰 아버지는  경찰토벌대로 남한을 위해 싸웠습니다. 이제 제가 기도할 때에 저의 기도언어인 한국말로 기도하는 것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 나라와 이 나라를 위해 싸웠던 사람들 그리고 그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저는 또한 세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다음 날 지역 신문에 기념식 관련기사에 나의 기도에 대한 이야기도 실려있었다. 독자투고란에 어떤 주민이 기념식의 모든 순서가 뜻 깊었다고 실었다. 그런데 다음 날 레딩 목회자연합회 모임에서 회장목사가 자신이 받은 전화 한통을 소개해 주었다. 어떤 주민이 전화하여 어떻게 미국 메모리얼데이에 외국인이 나와서 그것도 외국어로 기도할 수 있으며 심지어 북한을 위해 싸운 가족 이야기를 할 수 있냐고 항의하였다는 내용이었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나의 발언을 지지해 주고 그 항의 내용을 비판했다.
몇 주가 지나 타운미팅에서 시작 기도를 해 줄것을 다시 부탁 받았을 때 이번에는 주저함 없이 가서 기도하고 왔다. 두 번의 모임에서 나는 미국국가를 들으며 어색하지만 성조기에 예를 표했다. 80년대 말 대학을 다닐 때 교문 입구에는 불타는 성조기가 바닥에 그려 있어서 학생들은 그것을 밟고 다녔다. 소위 운동권은 아니었지만 당시의 많은 학생들처럼 특별한 집회에 참석하면 '양키고홈'을 외치며 희열을 느끼곤 했다. 그리고는 역설적이게도 이곳 미국에 내가 먼저 와서 양키의 본 고장 뉴잉글랜드에서 공부하고 목회하게 되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 로 이 썩어질 세상에서 정의를 외치며 두려움없이 살아야 하지만 또한 내가 있는 곳에서 빛과 소금으로 책임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그 역설적 신분에 대해 미국 독립기념일을 다시 외국인으로 보내며 그리고 지난 달의 두 모임을 돌아보며 또 다시 생각하게 된다.                  

유경렬 목사 (나사렛사람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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