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왜곡과 동북공정
보스톤코리아  2007-04-15, 21:56:11 
▲ 중국의 다양한 종족의 모습 왼쪽 맨 하단이 조선족의 모습이다.

백린 (역사학자)

천명(天命)을 받아 천하를 다스린다 는 중국황제의 몰락 과정을 보자.
중국은 역사이래 중국외에는 달리 국가가 없고, 중국문화외에는 다른문화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자부해왔다. 그리고 천하의 모든민족 국가들은 중국황제의 신하로서 복종하여야 한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중국의 청왕조 인종(仁宗) 21 (1816)년에 영국의 사신 마케토니 백작이 열하의 별궁에 머무르고 있는 인종황제를 배알하러 갔다. 영국사신을 맞는 인종황제는 마케토니경에게 삼궤구고두 (三궤九叩頭) 를 즉 세번 엎드려 절하면서 아홉번 머리를 조아리라는 신하로서의 예를 가추라고 하였다. 그러나 마케토니경은 이에 불응하고 돌아서고 말았다. 영국은 청나라에 대하여 공항 (公行) 무역의 제도 즉 조공형식의 관무역 제도의 철폐를 요구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받아드려지지 않자 결국 전쟁을 일으키고 말았다. 이른바 아편전쟁 (1840년) 이라는 것이다. 중국은 이 아편전쟁에서 영국에 패배하고 1842년 굴욕의 남경조약을 체결하였다. 여기서 조공책봉정책은 종지부를 찍게 돼었고, 사양에 접어든 청 왕조는 1850년의 태평천국난으로 재기불능의 궁이에 몰린다. 1858년의 청진조약, 1860년의 북경조약 등 이렇게 서구열강에 밀리면서 100여년간 반 식민지적인 수모를 받아야했다. 뿐만 아니라 1912년 청왕조가 망한후 중국은 다시 서구열강의 침투와 일본제국주의 의 침략으로 오랫동안 힘겹게 전쟁을 치렸다. 1945년 8월 세계 제2차대전의 종말로 중국은 재기할수 있게 되었다. 신중국은 당, 송, 명 의 명맥을 잇는 한족전통의 역사를 이어받는 듯이 보였다. 중국에는 1949년 10월 사회주의국가 가 탄생하였다. 그런데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 최후의 정복왕조인 청왕족을 계승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얘기는 많이 달라질수 있다. 동쪽의 오랑케 라고 하는 여진족의 청왕조는 260 년간 (1644-1912) 중국을 통치 하여왔다. 이 여진족의 청왕조가 한국의 고대국가인 발해의 후신이다. 그러므로 사회주의국가인 신 중죽은 아무래도 그 역사적인 정통성을 한족의 한, 당, 송, 명에서 근원을 찾아야 했을 것이다. 이같은 실정에서 역사왜곡이 불가피 했던 것이 아닌가 추축된다. 여기서 우리는 중국이 안고있는 소수민족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수 없게_거다. 현제로 중국에는 한족 외에 56개의 다른종족이 살고 있다. 중국의 고대사 왜곡의 동기를 차라리 소수민족 문제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1980년의 중국의 인구통계에 의하면 56개 의 소수민족 중 18개의 민죽은 언어와 풍속이 다를뿐 아니라 중국인에 동화되기를 거부하며 조상전래의 특정지역에서 집단을 이루어 살고 있다. 이들 소수민족 중에는 세력이 강할 뿐 아니라 자기의 역사와 문화전통을 고수하면서 독립의 의지를 강하게 보이는 종족이 한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중 서장족, 몽고족, 위그루족, 조선족, 만주족, 회족 등은 특히 주목 되고 있다. 이들중 가장 두려운 존재가 조선족과 만주족이다.

l 중국이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6대 소수민족의 인구는 다음과 같다.
l 1)서장족: 387만   2)몽고족: 341만   3)조선족: 177만    4)회족: 722만    5)위그루족:596만

l 이들 소수민족은 중국전체 인구의 8% 에 지나지 않지만 그들이 차지하는 영역은 전 중국영토의 60%나 된다고 한다. 이같이 광대한 지역을 차지하고 건재하는 소수민족들을 여하에 위무하여 그들의 열망을 어떻게 잠재우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닐수 없다. 그리하여 중국은 일찍이 서장족등 5대 소수민족에게 자치국을 허용하였다. 하지만 각기 특정지역에서 집단을 이루어 살고있는 소수민족들은 강렬한 민족정신을 발휘하여 언젠가는 독립운동을 전개할 것이라는 개연성을 전혀 배제할수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위에서 말한 서장족등 5대 소수민족외에도 50여개의 여타 소수민족들을 어떻게 한데묶어 하나의 중국인으로 만드느냐 하는것이 현 중국인의 당면한 과제일수도 있다. 중국은 1970년 이후로 시장경제 원리를 도입하여 경제발전을 이룩한 다음 이들 소수민죽의 역사와 그 문화전통을 완전히 흡수하여 다민족국가로서의 정통을 세우고 인민통일의 기반을 확고히 하려는데서 역사왜곡이 선행되었던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다민족국가인 미국인의 형성과 같이 중국에 있어서도 모든 소수민족을 한데로 섞어서 하나의 중국인으로 만들려는 계획이 엿보이기도 한다. 들리는말에 의하면 중국의 젊은 학자들이 고구려인과 발해인이 중국의 한족(漢族)과 같은 종족이 었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상식에도 미치지 못하는 말이다. 민족이나 종족의 다름은 신체의 조건과 그 문화 그리고 의식주 등의 차이로 구별할수 있지만 그보다도 그 민족이 사용하는 언어에서 그 특성을 발견할수 있다는 것이다. 고구려와 발해어는 고조선 전래의 언어로서 그것은 중국의 한어(漢語)와는 분명히 다른 말이다. 중국어는 글자 하나가 단어의 단어를 형성하는 다음절 언어이다. 중국어와 같은 단자(單字)어는 서장어, 태국어, 버마어 등 동남아의 언어가 같은 계열에 속한다. 고구려와 발해는 다음절 언어 이면서 말소리도 다르거니와 상황에 따라서 어미의 변화를 일으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옛고구려와 발해어는 옛조선어로서 부여, 고구려, 말갈, 백제, 등이 이에속하며 이를 알타이어족에 속한다는 것은 이미 통설로 되어있다. 동양사의 기본사료 라고 평가되는 외인 흥망사 (외人 興亡史)에 보면 "고구려는 투르크족 (터키)의 말을 발전시켜 주어, 객어, 술어의 순서와 8모음의 특징을 완성시켰다" 라는 분명한 구절이었다. 예를 들면 "동생이 집으로 돌아 갔다." 라는 말이 중국에서는 제귀가 (弟歸家) 라하여 주어, 술어, 객어의 순으로 되어 객어가 술어의 뒤에 오게된다. 이것이 중국어와 고구려의 다른 점이다. 고구려어에 대하여는 광개토 호태왕의 비문을 참고할때 다시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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