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흥망과 발해국의 태조 대조영 2.
보스톤코리아  2008-04-28, 16:37:33 
백린 역사학자

-한중 관계-
중국의 역사서에 기록된 고구려와 발해에 대한 내용이 얼마나 확실한 것이며, 그리고 그 서술이 과연 역사적 사실을 가감없이 성실하게 전해주고 있는가를 신중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전한때의 회남자 (淮南子)라는 책에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얘기가 나온다. 인간만사 새옹지마(人間萬事塞翁之馬)라고 한 고사이다.

구태어 번역하지 않아도 다 아는 얘기다. 말인즉 인간의 화와 복, 행과 불행은 돌고 돈다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국가에 있어서는 일란일치(一난一治)도 순환지리(循環之理)라는 것이다. 이렇게 중국인들은 모든 관점을 상대적으로 보고 그것을 양립시켜 지양(止揚)한다.

이제 모순이라는 말을 한번 들어보자. 창모(矛)자와 방패순(盾)자의 모순 말이다. 말이나 행동에 있어서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말이다. 옛날 초나라에 창과 방패를 파는 상인이 있었다. 그는 먼저 방패를 들고 말하기를 이 방패는 어떤 예리한 창을 가지고도 뚫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창을 들고 말하기를 어떤 강한 방패도 다 뚫을 수 있습니다 라고 떠들어 대는 것이었다. 한사람이 나서서 말하기를 그러면 당신이 그 창을 가지고 그 방패를 뚫어보시요 하니까 말이 막힐수 밖에 없다. 말이 앞뒤가 맞지않아 받아 드릴수 없는 그야말로 모순이다. 그런데 중국의 철학사상인 음양의 원리에서는 이 같은 모순이 얼마든지 허용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중국인의 사고는 음양의 이기론에 근거하여 모든 형상을 상생적인 양립 관계로 본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역사서술에 있어서도 천자와 제후 한족과 이적(夷狄)의 대립관계에서 중화주의에 의한 천하국가로 승화시켜 중국과 병방민족이 역사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제 고구려의 흥망과 관련하여 그간의 형편이 어떠했는가를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중국은 서기 220년에 후한이 망한 후 오,위, 촉, 3국이 중국천하를 놓고 패권을 겨루는 3국시대가 전개된다. 나관중의 삼국지를 읽은 분은 아시겠지만 위나라의 조조와,오나라의 손권, 그리고 촉한의 유비, 이 세나라가 삼파전을 벌리는 흥미진진한 역사의 현장이다. 이 삼국지가 600년을 두고 여러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히고 있는 것은 당시의 역사현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명작이기 때문이다. 삼국지에서 특히 우리 기억에 남는 것은 촉한의 유비가 관우와 장비 두장수를 만나 후한을 재흥하려는 계획에 뜻을 같이하고 형제의 맥약을 맺는 도원의 결의(挑源決義)와 유비가 재상 제갈공명을 얻기 위하여 그의 초막집을 세번 찾이갔다는 삼고초려(三顧草廬) 그리고 제갈공명은 군률을 어기고 패전한 장수 마속을 울면서 그 목을 베었다는 읍참마속(泣斬馬謖)등은 오늘날에도 많이 인용되는 고사성어 이다.

뿐만 아니라 적변전에서 패전하고 도주하는 조조를 보고 패전지장은 불가언병법(不可言兵法) 패전한 장수는 병법을 말하지 못한다는 명언과 그리고 제갈공명이 출전에 앞서서 소열황제의 아들 유선(후주)에게 나라의 정치를 부탁하는 두번에 걸친 출사표는 너무나 유명한 문장이다. 제갈공명은 조조의 위나라와 최후의 결판을 내려는 오장원의 전투에 나섰다가 지병인 폐병으로 군중에서 죽었다. 성낙추풍 오장원(星落秋風五丈原) "별 떨어진 가을바람의 오장원" 제갈공명의 최후를 말해주는 칠언 시 이다. 천문지라와 풍운조화에 정통한 제갈공명도 천시(天時)를 얻지 못하여 3국 통일의 꿈을 실현치 못하고 53세를 일기로 군중에서 그 생을 마쳐야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얘기는 죽은 공명이 산 위나라의 장수 사마이를 패주시켰다는 것이다. 사공명주생중달 (死孔明走生仲達)촉한의 군사가 죽은 공명의 시체를 모시고 나갈때 한승상 제갈공명( 諸葛孔明)이라는 깃발과 공명의 목상을 만들어 앞세우고 행진하는 촉나라의 군사를 보고 위나라의 사마이 중단군대는 대군을 몰아 쳐들어 오는 것으로 착각하고 놀래서 도망쳤다는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촉한의 명장 제갈량을 말할때 조선의 명장 이순신 장군을 말하지 않을 수 없게된다.

수국추광모(水國秋光暮) 수국의 가을빛은 저문데
경한안진고(驚寒雁陳高) 추위에 놀란 기러기 진위를 높이나네
우심전전야(憂心輾轉夜) 나라를 걱정하여 잠못 이루는 밤
잔월조궁도(殘月照弓刀) 새벽달이 달과 칼을 비취는구나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노량해전때에 읊은 5언절구의 한 시이다. 천문지리와 풍운조화 그리고 육도삼약의 병법의 지혜를 다 가춘 이순신장군이 노량해전(1598년)에서 적의 유탄을 맞고 불행하게 전사했다. 그러나 유탄을 맞아 쓸어진 후에도 일본군을 패전으로 몰고간 이순신 장군의 전과야말로 죽은 공명이 위나라의 사마이장군을 패전시켰다는 그 사실과 다름 없는 사건이라고 하겠다. 뿐만 아니라 제갈공명도 53세에 타계하고 이순신장군도 53세에 싸움터에서 그 생을 마쳤다. 이같은 공통점에서 볼때 이순신 장군이야말로 조선의 제갈공명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글을 쓰다보니 얘기가 딴데로 흐른것 같다.유비가 세운 촉한은 제갈공명이 죽은지 30년후 서기 230년에 위나라에 항복하고 망한다. 한편 위나라는 220년에 조조가 죽자 그의 아들 조비가 후한의 헌제를 몰아내고 황제의 위에 올라 위왕조를 세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위황실의 외척이며 권세를 좌우하던 사마염이 265년에 원제(元帝)를 폐위시키고 황제의 옥좌에 올라 국호를 진(晉)이라 하였다. 이이가 진의 무제(武帝)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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