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워싱턴행 취임열차를 보며
보스톤코리아  2009-01-23, 16:48:35 
윤희경 박사
정치적 소견을 초월할 수 있다면 우리 모두는 행운아들이다. 흑인 노예들이 채찍질 아래 건설한 백악관의 새 주인이 흑인이 되는 미국 역사의 큰 흐름이 바꾸어지는 현장의 산증인이 되기 때문이다. 대통령당선자 오바마가 120마일의 열차 여행을 하며 워싱턴에 입성함으로써 가시적 "오바마열기" 뿐만 아니라 "변화"를 추구하는 오바마정부의 역사적 의의를 더 한층 고양시키고 있다. 이는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중의 하나인 제16대 대통령 링컨이 1861년 워싱톤에 기차로 입성하였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함이다. 정적들로 부터 "삼류변호사 (서부개척지인 일리노이 주에서 변호사 개업함)’ 혹은 "나무패는 사람" (rail-splitter, 정식교육 없었던 청소년성장시기의 생활을 비하함) 등으로 불리며 조롱을 받던 무명의 링컨대통령이 미합중국의 남북분열과 내전(內戰)등 미국최대의 위기를 직면하였다는 점은 몇 달 전 까지만 하더라도 알려지지 않았던 흑인 초선 상원의원이 악의의 낭설과 비난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으로 선출된 오바마가 최악의 경제공항을 안고 출범하는 점이 너무나도 유사하다 하겠다.
148년 전, 1861년 3월 4일 워싱턴에서 거행될 취임식을 앞두고 링컨은 당시 미국 서부에 속하는 일리노이 주의 스프링필드에서 2월 11일 장남인 Robert 와 같이 12일간의 열차여정을 시작하였다. 이 여행에 앞서 3일에 걸친 90 마일 떨어진 곳에 사는 계모인 사라 (링컨은 9살에 생모 Nancy를 여의고, 계모를 어머니라고 부르며 평생 모셨다)와 선친, Thomas의 묘소를 찾고 작별 인사를 마쳤다. (부인 Mary와 두 아들은 하루 늦게 출발하였으나 곧 동행하였다.) 19세기 당시 가장 빠르고 안전한 교통수단이었던 철도로 단 2, 3일 걸리는 여정을 12일로 (총 거리 1,904 마일), 계획한 것은 정치적인 결정이었다 (여행지도 참조). 1860년 11월 대통령 선거 시 당선에 결정적 지지를 주었던 미국 동북부 여러 주의 공화당 후원자들에 대한 답례와 장차 절대 필요한 이들의 지지를 확보하고자하는 의도였다. 스프링필드 역으로 환송 나온 천명이상의 지지자들에게 링컨은 고별사에서 "25년을 살던 곳, 청년을 거처 노년(당시 만 51세)이 된 곳, 아이들을 낳고, 한 아이는 묻은 곳, 여기를 언제, 혹 돌아올는지도 알 수 없으나, 워싱턴에 놓인 중대한 임무를 맡아 떠납니다. 여러분이 나의 성공을 위하여 기도하여 줄 것을 기대하며, 작별인사를 고합니다." 지지자들과 링컨은 함께 눈물을 나누었고, 링컨이 돌아서 차안으로 들어가자 만세 삼창이 울려 퍼지고, 링컨의 열차는 서서히 출발하였다고 한다. 링컨은 결코 다시 돌아가지 못하였다.
성대한 환송과 화려하게 꾸민 대통령 특별 칸에도 불구하고 링컨이 여행 초에 심한 우울 증세를 보인 것은 직면한 난국에 대한 걱정에 기인하였을 것이다. 건국이후 최대의 위기를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 1월에 상원의원직을 사임한 미시시피 주 출신 제퍼슨 데이비스가 링컨이 출발하던 날 당일 같은 시각에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를 수도로 정한 남부정권(Confederacy)의 대통령에 취임하기 위하여 워싱톤을 떠난 것이라 하겠다. 당시 합중국인 미국은 총 34개 주 중남부 15개 주에서는 합법적인 노예제도의 종식뿐만 아니라 서부 개척과 함께 새로 가입되는 주의 노예 합법화여부로도 극심한 대립을 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천주교도인 독일과 아이리시 백인들의 이민으로 인한 이민법, 서부의 토지 소유, 관세 등으로 국론이 크게 분열되었다. 또한 노예제도 반대 세력 안에서도 남부 주의 노예제도의 종식여부를 놓고도 강온으로 갈라져 있었다. 이미 남부의 6개주는 미국(Union)으로 부터 분리, 독립을 선언하여 나라가 거의 분열 상태였다. 열차 여행이 계속되면서 링컨의 우울증은 점차 나아져서 열차가 머무는 곳곳에서 지지자들에 특유의 웅변으로 우렁찬 연설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링컨은 이 수많은 연설을 의도적으로 짧게 하고 개인 소견 표출을 극히 아끼어, 반대파들에게 트집을 잡히거나 새로운 논쟁으로 인한 분열의 가속화를 방지하려고 하였다.
2월 22일 미국의 독립을 선언한 필라델피아의 독립관에서의 연설에서 " 이는 (남부 주의 탈퇴) 단지 조국으로 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뿐 아니라, 독립선언문에서 제시한 전 세계가 장래에 가질 희망으로 부터 분리하는 것을 말한다. 이 희망은 바로 때가 되면 모든 인류에 지워진 멍에가 벗겨지고, 모두가 동등한 기회를 갖는 다는 것이다. 만약 미국이 이 기초위에서 구출된다면, 나는 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의 하나가 될 것이다. 만약 이 원칙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생존할 수 없다면, 나는 굴복하기 보다는 오히려 여기서 암살되기를 원한다."
이 연설에서 암살을 언급한 것은 바로 전날 자신의 암살계획이 있다는 보고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철도회사의 운행 구간연결 상 벌티모어에서 다른 철도회사의 열차로 바꾸어 타야하며, 따라서 링컨 일행이 약 1마일의 좁은 길을 마차로 지나야만 한다는 기회를 이용한 계획이었다. 더욱이 남부추종자들이 벌티모어시를 장악하고 있어 벌티모어 경찰당국으로 하여금 일부러 느슨한 경호를 하도록 모의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정보는 원래 여행 초에 경호책임자인 Pinkerton 에게 전달되었으나 링컨에게는 여행 중 미리 알리지 않기로 합의를 보았다. Pinkerton은 정보를 보고하면서 당일 오후 해리스버그에서 하기로 한 연설 계획을 취소하고 당장 필라델피아들 출발하여 워싱톤으로 직행하기를 권고하였다. 그러나 링컨은 지지자들에 대한 선약이 있음을 이유로 이를 거부하였다. 마침 같은 정보를 입수한 국무장관으로 임명된 Seward가 아들을 링컨에게 보내어 이를 보고하도록 하였다. 두 다른 출처로 부터 같은 정보를 받은 링컨은 마음을 바꾸었다. 그러나 해리스버그의 연설은 예정대로 행하였다. 연설 후 Pinkerton은 즉시 해리스버그와 필라델피아간의 모든 열차운행을 중지시키고, 해리스버그로 통하는 전보 선을 모두 절단시키는 조치를 취하여 링컨을 필라델피아로 안전하게 돌아가도록 하였다. 다음 날인 23일 아침에 출발하기로 하였던 당초 계획을 바꾸어 22 일 밤 11시 필라델피아를 떠난 열차는 벌티모어에 새벽 3시30 분에 도착하였다. 마차로 이동하여 다른 철도회사의 열차로 옮겨 타는 것을 바꾸어 링컨이 탄 차량만을 분리한 후 벌티모어시 전차궤도를 이용하여 워싱톤행 열차에 연결하고 벌티모어를 빠져 나와 23일 아침 6시에 워싱턴에 무사히 그러나 몰래 조용히 입성하였다. 이것이 오늘날의 대통령당선자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악 여건 속을 헤맨 신임 대통령 링컨의 불우한 시작이었다. 취임한지 40일 도 채 못 되어 남북전쟁의 첫 총성이 울렸다.
오바마의 취임식은 외양으로는 화려하고 축제무드로 가득 차있다. 취임 다음 날부터 닥치는 현실은 링컨과 다를 바 없다. 대통령 오바마의 책상 위에 놓여진 긴급 처리 안건은 매달 50만 명의 새 실업자를 창출하는 사상최악의 경제공황,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가자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들을 둘러싼 실패한 외교국방정책, 미국의 인도적 민주 양식의 치부를 노출한 관타나모의 고문형무소, 불 보듯한 파산에 직면할 소시알시큐리티와 메디케어, 배움의 기회를 고루 주지 못하는 교육정책과 노후한 교육시설, 하늘을 찌르는 의료비와 과중한 의료보험, 배만큼 큰 배꼽인 2조억불의 재정적자, ……. 오바마 정부는 링컨을 부러워하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바마 팀은 링컨의 취임열차가 단지 시작이었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을 것이다. 임기 2년 안에 남북전쟁을 실질적인 승리로 이끈 링컨이 목표일 것이다. 양식 있는 미국시민의 희생과 협동정신이 더 없는 후원자이다. 한민족이 뿌리인 미국시민도 변화를 추구하는 이 열차에 동승하여야 함은 그들의 권리이고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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