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쟁 기념탑 (Korean War Veterans Memorial)을 둘러본 감회(感檜)
보스톤코리아  2006-06-03, 01:04:41 
김월정 (뉴욕 거주 )

얼마 전에 워싱턴에 갈 기회가 있었다.
예정되고 계획된 길이 아니었기에 빠듯한 일정 속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하는 막내는 스미소니안 현대 미술관을 경속보로 둘러보며 아쉬워서 발을 구르고, 링컨 기념관을 들러 가족증명사진도 찍고, 베트남 전쟁기념공원과 한국 전쟁기념탑 공원을 둘러보게 되었다.
그때는 이미 해가 기울고 가로등만이 희미하게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먼지도 미끄러질 듯 빤짝빤짝 윤이 나도록 잘 닦아 놓은 새까만 화강암을 병풍처럼 길게 펼쳐놓은 베트남 전쟁 기념비에 5만명이 넘는 (58,226) 미군 전사자들의 이름이 깨알같은 글씨로 새겨져 있었다.
드문드문 두 사람 또는 한가족이 촛불로 혹은 라이터를 켜들고 그 깨알같은 이름들 속에서 연고자의 이름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찾고 있는 모습은, 말소리는 커녕 숨소리조차 내는 것이 송구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숙연한 분위기였다.
사전 지식 전혀 없이, 공원을 산책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가 놀라서 옷깃을 여미고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착찹한 기분으로 발소리를 죽이고 그 곳을 떠났다. 매캐한 슬픔 같은 잔잔한 충격에 썩 마음이 안 내켰지만, 우리는 링컨 기념관 옆에 6.25전쟁에 참전한 미군을 기리기 위해 1995년 7월에 설립한 한국전쟁기념탑공원 쪽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Hello! 한국 사람이군요" 금방 입 벌려 말이라도 건내며 성큼성큼 걸어나올 듯이, S.O.S. 를 보내는 무전기를 든 군인의 다급한 목소리가 귓전에 들리는듯이, 판쵸위로 금새 빗물이 굴러 떨어질 듯이, 진흙에 파묻힌 군화에선 우리나라 산골 황토색 흙 냄새가 묻어나는 듯이...
너무나 실감나게 조각된, 실물보다 조금 커 보이는 (7'3"-7'6'')군인들의 동상을 보면서 중압감에 나는 신음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입숙을 깨물어야 했다.
"미안해요, 고마워요, 정말 미안해요, ... ... 미안해요, 미안해요... ..."
미군 장갑차에 두명의 여중생이 희생 되었을 때 일이다. TV나 신문에 계속되는 촛불 시위의 물결을 보지 않았더라면, 내 마음은 미안해서 부끄러워서 이리도 쓰리고 아프지는 않았을 것이다. 육군 14명, 해병 2명, 해군 의무병 1명, 공군 정찰병1명, 섬유광학 조명기. 모두 19개 동상. 채색한 스탠레스 스틸로 된 동상 하나의 무게가 거의 1000파운드라니... 과연 미국답다 싶었다.
가슴이 너무 떨려서 잘 떼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동상이 되어 서 있는 군인들에게 일일이 미안함과 고마움을 진심으로 전하며 정면 앞까지 걸어왔을때, 거기 화강암 들판에는 "알지도 못하고 만난 적도 없는 한국을 위해 죽어간 젊은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라는 글이 새겨있었다. 나는 그 글을 읽으면서 다리에 힘이 쭉 빠져 주저앉고 말았다.
"알지도 못하고 만난 적도 없는 한국을 위해"죽어간 그들의 아들들에게 지금 한국에서 자행하고 있는 짓거리를 생각하며, 나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미군 사망자만 54,246명, 부상자, 실종자까지 합하면 13만 명이나 희생되었다.  U.N. 에서는 모두 22개 나라가 "알지도 못하고 만난 적도 없는" 한국전에 동참했다. 그들의 희생자 수도 십만이 넘었다. 어둠이 차라리 다행스럽고 고마웠다. 혹 그 곳에 온 저들의 연고자들이 우리가 바로 그 한국사람들인 것을 알면 무어라 할까.
"자유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트루만 대통령은 자유수호를 위해 미국민 13만 명을 희생하는 참전을 결정해야했고, 어찌됐건 지금 우리는 자유를 누리고 살고 있다. 한국전 이후 50년이라는 세월을 보내며, 미국이 한국의 안보와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없어서는 안될 동맹우방국임을 부정할 수 없고, 부정해서도 안 된다.
88올림픽으로, 월드컵 4강으로, 현대 자동차로, 삼성 디지털로 이제는 더 이상 "알지 못하는 나라"가 아니라 전 세계에 "너무나 잘 알려진 나라"가 되었다고, 차마 옛날 일을 다 잊었노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도 한국의 안위를 위해 파병되고 이런 저런 사고로 희생되고 있는 뉴스를 접할 때 나는 그 희생된 미군들을 위해 촛불하나 밝혀 명복을 빌어 준 일이 있었던가? 미군장갑차 사고로 "살인자"로까지 매도하며 연일 시끄러웠던 한국에서 한국사람인 것을 저들이 눈치채면 어쩌나.
미국 생활 20여년, 내가 한국사람인 것이 이렇게 부끄러워 보기는 처음이다. 대통령의 결정을, 정부의 정책을 자기 코 앞의 이익에 부합되지 않으면 사사건건 트집잡고, 물고 늘어지고, 시위하고, 데모하고, 조그만 땅덩어리가 조용할 날이 없는 대한민국 내 조국, "알지도 못하고 만난적도 없는 한국"전에 참전이 부당하다고 화염병을 던지지도 않았고, 사랑하는 남편과 아버지와 아들과 형제를 못 보낸다고 데모를 하지도 않았고, 죽은 사람 살려내라고 촛불시위도 하지 않았다. 아들을 잃고 정부에서 보내온 훈장을 "아들을 잃은 나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전쟁이었다"고 되돌려 주고, 슬픔과 회한을 혼자 조용히 삭히며 살다간 미국의 어버이들에게!
대통령의 결정이기 때문에, 국익을 위해서, 자유수호를 위해서 묵묵히 불행한 현실을 숙명처럼, 남의 일을 자기 일처럼 받아들이고, 피붙이와의 사별의 슬픔을 가슴속으로 눈물 흘렸던 미국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를!
"God Bless America! May God Bless America!"
나도 모르게 자꾸자꾸 입 속에서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김월정 씨는 <파초>의 시인 김동명 선생님의 따님이십니다.

* 칼럼의 내용은 보스톤 코리안의 편집방향과 틀릴 수도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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