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478 회
보스톤코리아  2014-12-29, 12:31:40 
누군가, 그 누구인가 시샘이라도 하듯이 '칼바람'은 볼을 얼얼하게 만들더니 '볼의 살점' 한점 도려낸 듯 감각마저 삼켜가 버린다. 그렇게 태백이 마중하던 '칼바람'과 함께 오르고 또 오르며 아리도록 시린 '칼바람'에 볼이 떨어져 가고 마주한 '칼바람'에 힘겨워서 더욱 간절한 그런 오름. 내 가슴에 오롯이 남을 '애틋한 추억'을 또 하나 담아왔다. 눈꽃이라도 활짝 반겨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역시, 태백은 태백!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신의 영역! 높은 산 깊은 골짜기를 휘도른 바람 소리마저 강한 기운을 불러오는 역시, 태백은 태백이었다. 

몇 년 전 눈꽃이 활짝 핀 태백산을 오르는 내내 그 아름다움에 그 황홀함에 그만 할 말을 잊고 말았었다. 그 기억을 잊을 수 없어서 그 고운 추억을 떠올리며 이번 여행에서도 놓치고 싶지 않은 겨울산행이었다. 한국을 방문하면 여느 친구들보다 산 친구들과의 만남이 편안해 좋고 바쁜 일정 중에 한 번이라도 더 만나고 돌아오게 되는 친구들이 산 친구들이다. 이렇게 이번 여행에서도 가깝게 지내는 산 친구들과 눈꽃이 활짝 핀 덕유산과 또 밤 기차를 타고 올랐던 태백산은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에 볼을 내밀며 올랐던 잊을 수 없는 태백산의 또 하나의 추억이 되었다.

태백으로 가는 길
태백으로 가는 길
검은 어둠을 가르고 자정을 향해
많은 인파들 속 흔들리는 열차 안
소리 없는 말을 속으로 삼키며
이미 태백을 오르고 있다
어둠이 채 가시기 전
계사년(癸巳年) 뱀띠해의 새벽은
태백역에서 마중을 하고
태백산아래 당골로 향하는 우리를
칼바람으로 맞이한다
오래전 태백의 정기를 받으려
무녀들이 살았을 당골에 들어서니
시린 뱃속 안 아직 남은 정성이 느껴지고
그 영험한 태백의 기운이
이미 몸 속을 돌고 돌아 휘몰아 친다
당골을 지나 오르기 시작하니
쌓인 눈 속 깊이 고인 샘물이 햇살을 기다리고
산 중턱을 넘어서니
가파른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등엔 흐르는 땀줄기 얼굴엔 서리꽃이 핀다
운무에 덮인 먼 산새를 바라보며
몰아쉰 숨을 고를 새
저 멀리의 문수봉이 눈 앞에 와 있고
정성으로 쌓아올린 돌탑이
너른 가슴으로 우리를 맞아준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산다는 태백산 주목의 상고대
올곧이 맞은 세월이 전설이 되고
정성스레 쌓아올린 천제단의 돌무덤은
하늘과 세상을 잇는 천상의 다리가 되었다

"태백산은 높이 1,567m이다. 설악산•오대산•함백산 등과 함께 태백산맥의 '영산'으로 불린다. 최고봉인 장군봉(將軍峰:1,567m))과 문수봉(文殊峰:1,517m)을 중심으로 비교적 산세가 완만해 경관이 빼어나지는 않지만 웅장하고 장중한 맛이 느껴지는 산이다. 산 정상에는 예로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천제단(天祭壇:중요민속자료 228)이 있어 매년 개천절에 태백제를 열고 천제를 지낸다. 볼거리로는 산 정상의 고산식물과 주목 군락, 6월 초순에 피는 철쭉이 유명하다. 태백산 일출 역시 장관으로 꼽히며, 망경사(望鏡寺) 입구에 있는 용정(龍井)은 천제의 제사용 물로 쓰인다."

산은 언제나처럼 나 자신을 바로 바라보게 한다. 내 걸어온 발자취를 잠시 돌아보게 하고 앞의 방향을 바로 보게 하고 제대로 바라보게 하는 힘(기운)을 내게 준다. 늘 변함없이 언제나처럼 침묵으로 맞아주고 기다림으로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산은 이제 내게 아주 가까운 친구이고 함께 호흡하는 동반자가 되었다. 삶의 희로애락 속에 내 속을 열어 보여줄 수 있는 편안하고 믿을만한 나의 맨토가 된 것이다.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할 12월의 하루를 맞이하며 깊은 내면의 나를 바라보게 하고 그 속에서 요동치며 갈등하던 무수한 것들을 정리하게 하는 시간을 허락하는 것이다. 산과 사람 그 사이에 흐르는 자연의 기운은 표현으로는 어려운 느낌으로밖에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자연과 사람이 함께 호흡하며 느끼는 그 황홀함이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내 깨닫는 것이다. 

그 이전에도 그랬을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그러나 지금에 느끼는 그 황홀함으로 만족한 오늘이기에 더욱 감사한 것이다. 어제가 있어 오늘이 있고 오늘이 있어 또 내일이지 않겠는가. 어제로 인해 오늘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내일로 인해 오늘을 놓치지 않기를 바라며 깊은 호흡으로 나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이다.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오늘의 나의 삶이 이 세상과 더불어 존재함에 감사함이 가득하길 기도한다. 태백산을 오르며 나는 또 생각에 머물렀다. 아니, 그것은 생각이 아닌 나의 기도였다. 저 웅장한 자연 앞에 너무도 작고 나약한 나의 존재를 또 느낀 것이다. 그만 나는 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당신은 창조주 나는 피조물임을 또 고백하고 돌아오는 귀한 시간이었다. 산을 오르는 내내 친구의 발자국을 따르며 침묵으로 올랐다. 자연과 함께 사람인 내가 그리고 친구가 우리로 호흡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족한 것을 이미 안 까닭이다. 산은 그래서 산이다. 그 어떤 각양각색의 모두를 포용하고도 내색하지 않으며 오랜 기다림에도 지치지 않는 큰 산. 역시, 태백은 태백!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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