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후/기 : Mt. Cardigan: 2010년 단풍맞이산행
보스톤코리아  2010-10-18, 13:28:34 
혹시 단풍을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 아세요? 제가 예전에 다니던 학교에 청송대라고 하는 작은 숲이 하나 있었습니다. 처음 이 이름을 들었을 때는 당연히 푸를 靑, 소나무 松을 쓰는 거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청송대의 청은 푸를 靑이 아니라 들을 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단지 이 숲은 푸른 소나무들이 있는 곳들이 아니라,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 번잡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만히 귀기울여 소나무의 소리를 듣는 곳이라는 거죠. 아마도 그 때였던 것 같아요, 제가 학교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던 것은. 그래서 단풍을 한자로 어떻게 쓰나 찾으면서 기대가 무척 컸습니다.

붉을 丹일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풍은 무슨 풍일까? 사전을 찾아보니 결국 단풍의 풍은 단풍나무 楓이어서 좀 실망했습니다. 실은 단풍의 풍이 바람 風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었거든요. 丹風. 붉은 바람. 회원 여러분들, 적어도 이 후기를 읽는 동안 만큼은 단풍의 풍을 바람 風으로 읽어주세요. 숨차는 산행 끝에 정상에 올라 세상을 내려다 보니 시뻘건 바람이 우리의 눈에, 우리의 가슴에 기어이 흔적을 남기고야 말겠다고 다짐한 듯 몰아치고 있다는 상상으로 읽어주세요.

2010년 10월 9일 보스턴산악회가 특별히 마련한 Mt. Cardigan으로의 단풍맞이산행은 총 80명의 인원이 참석하였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많은 인원 자체가 아니라 참석한 분들의 연령이 3세부터 71세까지 골고루 섞이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산이 주는 매력이 아니고서는, 단풍이 주는 아름다움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다양한 연령층이 하나로 묶인다는 것이 어찌 가능하겠습니까? 뉴햄프셔까지 2시간 정도 18대의 차에 나눠 타고 올라가는 동안 노랗게 또 붉게 물든 길가의 나뭇잎들을 보며 산행에 대한 기대는 점점 커져, 심장이 아니 마음이 두근두근 두근두근.

반 이상의 회원분들이 신입회원이라서 평소 5-6시간의 산행과는 달리 2-3시간의 짧은 산행을 택하였습니다. 대신 6개의 조로 나누어 산행 도중 조원 이름 외우기, 멋진 배경을 뒤로 단체사진 찍기 등의 과제들로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정상을 찍고 내려와서는 조별'내'의 인사를 넘어, 조별'간'의 인사를 위해서 조 대항으로 게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0개나 되는 풍성한 상품도 나눠가졌구요. 하지만, 사람은 역시 밥을 나눠 먹으며 친해지는 법! 오드리님과 버드와이저님의 헌신적인 노력과 다른 회원님들의 소소하지만 정성된 노력들이 함께 모여 80명이나 되는 인원이 배불리, 맛있게, 또 즐겁게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일단 배낭을 챙겨 집을 나왔어도, 숨을 헐떡거리며 산을 올라가는 동안에, 또 삐걱거리는 무릎을 걱정하며 산을 내려오는 동안에 가끔식 ‘내가 왜 오늘 또 산에 왔나?’ 하는 생각을 하고는 하지만, 그 누구도 산 정상에서 세상을 내려다 보며 왜 산에 왔느냐는 물음표를 던지지는 않습니다. 이번 Mt. Cardigan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살을 에는 듯 휘몰아치는 바람에 옷깃을 여미기는 했어도, 온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붉음에 어느 하나 서둘러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으시더군요.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카메라에는 잡히지 않을 진한 감동을 조금이라도 더 붙잡으려는 듯 말이죠.

며칠 전 친한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다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인생을 잘 사는 방법 같은 것은 이미 오래 전에 다 나와 있다고, 단지 사람들이 실천하지 못할 뿐이라고. 오늘 여러분이 느끼셨던 붉고도 강한 바람이 여러분을 흔들어 깨워, 그간 하고자 했으나 하지 못했던 작은 일 하나라도 행할 수 있게 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끝내 부끄러워 건네지 못했던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든, 끝내 자존심 때문에 하지 못했던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든. 잠깐 멈추어 서서 주변을 둘러보세요. 주변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든 아름다운 가을이지 않습니까!

보스턴산악회원 노까제(박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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