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 테러 2주 후
보스톤코리아  2013-05-08, 11:55:17 
바쁘고 힘들었던 지난 두주가 지나갔다. 보스톤 주민과 많은 피해자들에게는 더욱 끔찍했던 마라톤 테러 이후 대부분의 환자들도 퇴원을 한 상태다. 한가지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오늘 밤도 나는 당직을 서면서 총상과 자상 환자들을 맞이한다.  도시는 Boston Strong을 외치며 치유와 단합을 추구하는데 아직도 서로에게 치명상을 가하는 사람들이 왠지 정말 미워지는 밤이다. 오늘 밤에는 젊은 청년이 가슴에 총을 맞아 심장에 구멍이 두군데 뚫려서 들어왔다. 혈압이 없는 상태에서 가슴과 배를 열어 심장 좌심실에 난 두 구멍을 꿰맸다. 기적적으로 환자는 살아났고 아마 이 환자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지만 여러 테러 피해자들과는 다르게 정상적으로 병원에서 걸어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이러니한 것은 보통 이런 관통상을 입고 들어오는 환자들은 하나같이 본인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어디선가 총알이 날라왔다고 말한다. 혼수 상태로 들어온 사람들도 호전되면 모두 이런 변명을 한다… 하지만  4월15일은 달랐다.  정말 아무런 잘못도 없고 이유도 모른 채 5살 된 어린아이부터 60이 넘은 노인까지 피투성이가 되어서 응급실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의 당혹한 얼굴과 상처에서 테러의 악랄함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셀 수 없이 많은 파편이 얼굴에서 발끝까지 박힌 환자부터, 폭발과 열에 의해 폐 기능이 손실된 아이, 심한 출혈로 쇼크 상태인 환자들, 그리고 무엇보다 폭발과 동시에 다리가 이미 절단된 환자 또는 절단이 불가피한 환자들… 7년 차 외과 레지던트인 나도 속이 뭉클할 정도로 부상들이 심각했다.  병원은 이미 비상 대책 모드로 들어가 있었고 모든 외과 의사들이 병원으로 소환됐다. 이날만큼은 각자의 업무와 전공을 떠나 모두 하나가 되어 각 외과 의사들이 위급한 순서대로 응급대책수술에 들어갔다.   

그 후 지난 두주동안 수술실, 병동, 그리고 중환자실을 다니며 정밀 진단 및 재수술에 집중하였다. X-ray 에도 보이지 않는 고무, 시멘트, 플라스틱 등 파편들을 찾아 다니며 CT 촬영도 하고 가능한 부위는 수술로 제거하였다. 혈관이나 장이 파열되어서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도 있었고, 인공 호흡기에 의존한 환자 등 여러 다양한 부상들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사지가 절단된 환자들을 볼 때 마음이 제일 아팠다. 그 어떤 의술로도 잃어버린 다리를 되찾을 수 없기에 단 하루 아침에 인생이 바뀐 이들의 고통이 가슴 깊이 다가왔다. 몇몇 환자는 양다리를 잃고 더욱 큰 충격에 빠져 있었다. 처음에는 회진을 돌면서 환자들의 다리 쪽을 내려다 보기가 무안했지만 특별 대우도 애처로움도 이 환자들의 치료에 있어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난 그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침마다 붕대를 풀며 상처가 잘 아물어 가는지 살피며 환자들에게 말을 건넨다. 별로 아프지 않을 거라는 거짓말을 하면서.

테러 환자들을 치료하는 기간 동안 병원의 분위기는 예사롭지 않았다. 범인을 목격하고 몽타주를 확인한 환자가 있었는데 병동이나 수술실에서도 FBI의 보호를 받았고 병원 밖에는 완전 무장을 한 군인과 경찰이 코너마다 배치되었다. 전시용인지는 모르지만 장갑차와 이동지휘소까지 병원에 배치되어서 확실한 효과를 이루어 냈다. 

이렇듯 병원 안팎으로는 테러의 비극 후 수사와 추격전으로 도시와 미디어가 떠들썩 했고 아직 충격과 불안에 떨고 있는 주민들도 많았다. 그러나 환자들은 놀랍게도 밝고 활기찬 얼굴로 우리를 늘 반겨 주었고 항상 감사를 아끼지 않았다. 함께 병치레를 하는 가족들의 헌신 또한 화려한 장식이나 꽃 향기 보다 더 아름다웠다. 여러 유명 인사가 병문안을 왔지만 특히 배우 Bradley Cooper가 방문, 어린 여학생에게 키스해 모든 여자들에게 부러움을 샀다. 자신들도 폭탄에 뛰어 들겠다며… 다른 때 보다 더 많은 주변 사람들의 관심은 보기 좋았지만 역시 환자들에게는 휴식이 필요했다. 수면제를 쭉 돌렸더니 다음날 아침 환자들의 얼굴이 모두 좋아졌다. 한국 옛말 대로 잠이 보약인가 보다.  

짧은 외과 의사 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준비된 자가 일을 할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다. 이번 보스톤 마라톤 테러 사건은 더욱 뼈저리게 그 깨달음을 일깨워줬다. 보스톤이 만약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면 도시로서 이 난국에 대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선 폭발 직후 큰 혼란 가운데서도 환자들을 텐트에서 임시 치료를 시도하지 않고 신속히 병원으로 옮겼기 때문에 많은 환자들이 살수 있었다.  또 보스톤에는 외상 전문 치료센터가 5곳이나 있는데 응급 의료진이 여러 병원으로 일관성 있게 200명이 넘는 환자를 골고루 분배한 것도 사상자를 줄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 만약 병원에 너무 많은 환자가 배분되어서 대규모 재해 프로토콜이 실행되면 생존율이 희박한 환자는 치료대상에서 제외 될 수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상자가 늘어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1시간 안팎으로 그 많은 환자들이 모두 병원으로 수송된 것은 시민과 경찰, 그리고 의료진이 이루어낸 정말 큰 기적이다. 

이제 대부분의 환자들은 집으로, 가족에게로, 또 사회로 돌아 갔지만 그들의 정신적 육체적인 완전한 치유와 회복은 아직 길고 먼 자신들과의 싸움이다.  소신껏 치료는 했지만 앞으로의 삶은 그들의 강한 의지와 용기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의 헌신이 치료할 것이다. 난 그들의 긍지와 혼을 가지고 가슴 뿌듯이 살아가길 바란다. 우리 모두가 보스톤 주민으로서 이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고 이겨나가야 할 것이다. 이럴 때 보스톤은 더욱 강한 도시가 될 것이다. 오늘밤 가슴에 총을 맞고 들어온 이 환자 또한 새로운 마음으로 퇴원하길 바란다.      



서현석 (보스톤 대학 외과 레지던트)
초등학교 때 미국으로 건너왔으나 여전히 한국어 말하기 쓰기가 뛰어난 
서현석 레지던트는 마라톤 테러 참상을 경험하고 글을 보내왔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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