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쓰라고요?
보스톤코리아  2013-05-20, 11:22:48 
봄이면, 대학시절 오교시 수업이 아련하다. 그 해 대학국어를 듣는데, 시인 박두진 교수의 과목이었다. 그의 문명文名은 익히 알고 있던 바, 수업을 기대했다. 선생은 시詩만 강의한 것은 아니었다. 대학국어 시간이었으니 국어강의를 기다렸다는 말이다.  헌데, 오교시라는게 걸렸다. 오교시는 점심시간을 지난 후 오후 1시에 시작한다. 한참 졸린 시간이다. 젊은 나이에 밥을 먹고 나면 나른하다. 게다가 봄볕이 창을 통해 들어 서면 영락없다. 

시인 교수님의 목소리는 너무 낮아 잔잔했다. 차가운 강의실 바닥을 타고 흘렀고, 먼지마냥 조용히 떠다녔다. 따사로운 봄볕과 저으기 화해했고, 조화로웠으며 매우 잘 어울렸다는 말이다.  서로 격렬히 충돌하여 선생의 목소리가 졸음을 쫓아 내기를 바랬는데, 소망은 허망해졌다. 밀려 내려오는 눈꺼풀에 봄날 아지랑이가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선생의 목소리는 멀리 마포쪽 한강으로 흘러들었다. 거기 높은 강의실에서 창을 통해 보는 한강이 희미하게 가물거렸다.  밀려오는 졸음과 격렬한 격투에서 번번히 고개 떨구고 패했다는 말인데, 시인에게 한학기 강의를 들은 건 내게는 평생 자랑이다. 게다가 당당히 에이를 받았다. 아주 드문 경우다.

김용택시인의 시詩이다. 그가 담임했던 초등학교 2학년아이의 이야기인 모양이다. 동시童詩같기도 하다. 하지만 슬며시 웃게 한다. (이 시는 보스톤 한인교회 이영길 목사님의 설교에서 예화로 인용되었다. 그때 듣고 다시 찾았다. 전문을 옮기는데, 시인의 허락을 받지는 않았다.)

뭘써요. 뭘 쓰라구요.
시 써라
뭘써요
시 쓰라고
뭘써요
시 써서 내라고
네. 제목은 뭘써요
니 맘대로 해야지
아 뭘 쓰라고요
한번만 더 하면 죽는다

아내가 고백아닌 고백을 한 적이 있다. 중고등학교 미술시간이었단다. 왼손 주먹을 그리라는 과제였는데, 주먹 그리기 과제는 그 시절 공통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아내에게는 매우 어려웠단다. 그리기는 그려야 할 것인데, 도대체 무얼 그리라는 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니 말이다. 남들은 쓰윽쓰윽 잘도 그리는데, 한 시간 내내 끙끙 앓다가 종내 끝내지 못했다 했다. 도대체 뭘 그려야 하는지 알지 못했던 거다. 뭘 그리라고요?

뭘해요. 어떻게 하라고요/기도해라/뭘 하라고요/기도하라고/뭘 하라고요/사랑하라고/네. 근데 뭘 사랑해요/니 맘대로 해라/뭘 하라고요/한번만 더하면 죽는다.

사랑하기는 사랑해야 할 것인데, 뭘 사랑해야 하는지 희미하다. 뭘하긴 해야 하는데, 그건 막연하다. 간절히 기도 하기는 해야 할 것인데,  기도가 나오지 않는다.  기도의 제목은 많기도 한데,  무슨 고백부터 해야 할지 그걸 잡아 낼수 없다.  빈말처럼 허공을 맴돈다.

그래도 사랑하라. 돌아간 김수환추기경님이 말씀이다. 그래도 기도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라고요?  뭘하라고요?
쉬지말고 기도하라. 데살로니카 전서: 5:17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객원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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