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Constitution) 의 탄생 (2)
보스톤코리아  2015-10-12, 12:04:08 
3/5 타협  
제헌의회에서 벌어진 이 논쟁은 흑인들에게 투표권을 줄것인지 말 것인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남부주들과 북부주들 간에 벌어진 논쟁은 과세목적의, 그리고 대표자를 선출하기 위한 목적의 “인구 수”를 산출할 때, 흑인 노예의 인구 수를 그 인구에 포함시킬 것인지 말 것인지의 문제였다. 노예들은 재산으로 간주되었기에, 논리적으로 비시민이었다. 비시민의 이해관계를 대리하지도 않는 대표자를 선출하기 위해 혹은 과세의 기준으로 삼기 위해 그들의 ‘머릿수’가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는 건 어쩐지 부자연스러웠지만, 이만큼 남부와 북부간의 이해 관계가 확연히 갈리는 사안도 드물었을게다. 

어쨌거나 제헌의회를 관통하는 “논쟁과 타협”은 이 문제에서도 계속된다. 남부와 북부주들은 치열하게 논쟁했고, 그리고 타협을 일궈냈다. 노예 한명은 과세의 표준 혹은 의원수를 산출하기 위한 인구수 계산이 필요할 때 3/5명의 자유인으로 취급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타협은 3/5 타협으로 불린다. 첨예하게 이해관계가 갈리는 양측이, 국가의 화합을 위하여 조금씩 양보하여 타협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글로 건조하게 쓰면 참으로 훈훈하게 들리지만, 각 주의 엘리트들로서 어느정도의 사회적 위상과 경제적 조건을 갖춘 건국의 아버지들 입장에서야 손해볼 것은 아무것도 없는 타협이었을게다. 

헌법이 인정한 노예제
3/5 타협을 통해 미국 헌법은 노예의 존재를 인정했다고 봐야한다. 그런데, 노예제를 헌법적으로 인정한 또 다른 타협이 있는데, 무역 및 주간 통상 타협 (International and Interstate Commerce Compromise)의 예외조항이 그것이다. 연합 헌장 (Articles of Confederation)이 가진 가장 큰 한계이자 필라델피아의 제헌의회가 있게 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한가지는 바로 서로 다른 주간의 통상에 관한 문제였다. 연합헌장 하에서는 각 주 (State)의 독립과 자치의 성격이 강했고, 연방이 주의 권한을 넘어설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일부 주들은 타주와의 통상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기도 했고, 주와 주간의 서로 다른 법이 상호 교역시 마찰로 이어지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필라델피아의 제헌의회에서는 외국과의 교역, 주간의 통상에 대한 관할은 연방 의회에 있다는 조항을 채택하게 된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각 주가 별다른 이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문제는 노예의 수입에 대한 것이었다. 남부의 주들은 연방 의회가 노예 수입이라고 하는 특수한 종류의 무역에 대해 감시,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질 경우 주의 권리가 침해될 여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대한 타협은 어렵지 않게 이루어졌다. 즉, 해외 무역 및 주간 통상에 관한 권한은 연방 의회가 갖되, 노예 무역의 경우 “20년 동안은 노예 무역에 대해 의회가 간섭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예외조항으로 추가했던 것이다. 노예 수입은 그로부터 약 20년 뒤 1808년에 이르러 금지된다. (물론 노예제가 폐지된 것은 그것으로부터 다시 반세기가 흐른 뒤의 일이었지만.)
노예를 인구수로 계산할 것인지의 여부를 둘러싼 이 논쟁, 그리고 무역 및 통상에 관한 논쟁과 타협은 사실 독립혁명의 한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조물주로부터 생명, 행복추구, 자유와 같은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다”는 독립 헌장의 대명제에 비추어 노예제의 존재 자체는 모순이었기때문이다. 

헌법, 독립혁명의 한계를 드러내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별다른 논쟁없이 통과시킨 사안 중에 대통령 선출과 상원의원 선출에 관한 것을 꼽을 수 있다. 대통령은 일반 시민들의 투표가 아니라 선거인단 (Electoral College)에 의해 결정된다. 또한 상원 의원 역시 초창기 헌법에 따르면 간접 선거로, 주당 두 명씩의 상원의원을 각주의 의회가 선출하여 중앙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초기 헌법의 대통령 선거 혹은 상원의원 선출과 관련된 조항은 건국의 아버지들이 가진 엘리트주의를 다시 한 번 드러낸다. 대부분의 대중을 정치 과정에 참여하기에는 우매한 존재로 못박고 있었고, 이 때문에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정치를 좌우하는 중우정치 (Mobocracy)를 우려한” 장치를 마련했다.  
독립 혁명은 분명 왕정을 대의 민주주의에 기반한 공화주의로 바꾸었지만, 그 민주주의는 여전히 불완전했다.  그리고 그 한계는 초기 헌법의 또 다른 측면에서도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사실 여성들의 투표권과 관련된 문제는 논쟁조차 되지 않았다. 흑인들과 마찬가지로 재산이 없는 백인들 역시 투표권을 부여받지 못하는데, 대부분의 시민들이 시민으로서의 온전한 정치적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한, 건국기의 민주주의는 불완전한 민주주의였다. 
1787년 쓰여진 헌법의 흥미로운 한가지 측면은 정당에 대한 조항이 없다는 것이다. 1780년대의 정치지도자들은 정치적 이견이 고착화된 정당이라는 시스템을 우려했다. 물론 1790년대 들어 해밀튼의 재정 정책 등에 대한 제퍼슨 지지자들의 조직적인 반대가 결국 연방주의자당과 민주공화당이라고 하는 정당의 시스템으로 분화되기는 하지만.
(다음 호에 계속)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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