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104
보스톤코리아  2015-11-02, 11:28:23 
삼국사기에서 김대문에 관하여 언급한 대목은 짤막하지만, 김대문의 저서에서 인용된 글은 몇 군데 있다. '계림잡전'에서 인용한 이차돈의 순교사건 외에도 신라본기에서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의 뜻을 '김대문이 말하기를'이라고 하면서 풀이하였다. 이 대목은 삼국유사에서 그대로 재인용되어 있다.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은 "[삼국사]에서는 왕의 호칭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남겨 놓았다"고 시작하면서 장문을 재인용하였다. 그런데 이 왕의 호칭에 관한 뜻풀이를 김대문의 어느 책에서 인용했는지는 삼국사기에서 언급하고 있지 않다. 물론 삼국유사에도 없다. 다만 후대의 사가들은 '계림잡전'에서 인용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삼국유사'의 기이편, 제2대 남해왕조에 인용된 뜻풀이 내용을 중요한 부분만 줄임표을 넣어서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신라에서 왕을 부를 때 거서간이라고 하는데 그곳 말로 왕이다. 간혹 귀인을 부를 때도 쓰는 칭호라고도 하고, 어떤이는 차차웅을 자충慈充이라고도 한다.…… 김대문은 '차차웅은 이 지방 말로 무당을 일컬으며, 세상 사람들이, 무당이 귀신을 섬기고 제사을 받들므로 이를 두려워 공경하다 보니, 높으신 분을 자충이라 하였다'라고 하였다.…… 간혹 부르는 니사금尼師今은 닛금齒理을 일컫는 말이다. 처음에 남해왕이 죽고 아들 노례왕이 탈해왕에게 임금자리를 물려주자, 탈해가 '내가 듣기에 성인과 지혜로운 이들은 이가 많다'하고, 시험 삼아 떡을 물어 보였다. 예로부터 전하는 말이 이렇다.…… 어떤 이는 마립간麻立干이라고도 한다. 김대문은 '마립이라는 것은 이 지방 말로 말뚝을 이른다. 말뚝을 표지로 자리에 세워두면 왕이니, 말뚝은 주인이 되고 신하는 아래에서 말뚝을 따라 줄을 지었다. 이런 까닭에 붙인 이름이다'라고 하였다."

왕의 호칭인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에 대한 김대문의 뜻풀이는 오늘날 학계에서 중요한 정보로 활용하고 있다. 그의 이런 자세한 뜻풀이가 없었다면 우리는 그것이 왕의 호칭인지 아니면 왜 왕을 그렇게 불렀는지 막연한 생각과 학계에서는 여러 이론異論이 있으리라… 위의 기록이 김대문의 어느 책에서 인용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귀중한 사료의 해석이다. 
또 다른 중요한 기록이 화랑에 관한 기록이다.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편찬하면서 충성스러운 신하와 용감한 장수들의 본보기가 되는 화랑들을 많이 남겨 놓았다. 삼국사기 50권 중 마지막 10권(41 ~ 50권)이 열전인데, 그 중에서 김유신의 열전이 3권이나 차지한다. '화랑세기' 필사본이 금세기에 돌출하면서 새로이 밝혀진 내용이 김유신이 화랑들의 수장인 풍월주(15세)를 지냈음이 확인되었다. 김부식은 삼국사기 편찬 당시에 김대문의 미사여구 몇 줄만 인용하였다. 그래서 후세들에게 모든 화랑은 더 없이 충성스럽고 훌륭한 장수로만 각인되어 있다. 즉 김부식이 전하고 싶어했던 화랑의 '격의의 틀' 속에 후세들의 사고思考는 갇히고 말았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 37년 조에 보면, "김대문은 '화랑세기'에서 말하기를, '어진 재상과 충성스러운 신하가 이로부터 나왔고, 훌륭한 장수와 용맹한 병사가 여기에서 생겨났다'고 하였다"라는 대목이다. 김부식은 유교사상에 입각하여 많은 신하들의 충성심을 집결하려는 의도에서인지는 몰라도 그 구절을 대단히 좋아했음이 분명하다. 그는 같은 구절을 열전 '김흠운'150) 전에 가서도 한 번 더 인용하고 있다. 
삼국사기의 신라본기 진흥왕 37년 조에 인용된 구절은 화랑세기(필사본) 서문序文에서 인용되었다. 이 역시 '필사본'이 나오지 않았다면 '화랑세기' 어느 부분에서 인용되어 있는지 알 수 없었던 일이다.(원문, 於是賢佐忠臣 從此而秀 良將勇卒 由是而生 어시현좌충신 종차이수 양장용졸 유시이생)

화랑세기 필사본을 위서라고 주장하는 사학자들은 아마도 위의 '미사여구' 한 구절만 인용된 것을 보고 전체 화랑세기가 '현좌충신과 양장용졸'로만 가득차 있는 줄 알았는데, 현대인의, 아니면 조선시대 성리학의 이념에 반하는 성性적인 묘사들이 많은 관계로 아마도 받아드리기가 불편한 것으로 보인다.

150) 김흠운金歆運(? ~ 655년,金欽運으로도 기록한다)은 신라의 군인이었다. 내물왕의 8대손으로, 태종무열왕의 사위이며, 신문왕의 장인이다. 아버지는 잡찬 김달복이다. 어려서는 화랑 문노文努(8세 풍월주)의 낭도로 지냈다. 655년 백제와의 전투에서 조천성助川城(현재의 충청북도 영동군의 비봉산성)을 공격하다가 전사하였다(삼국사기).
한편 화랑세기(필사본)에서는 그의 출생에 관하여 자세한 기록이 있다. 신문왕 때의 반역자인 김흠돌金欽突의 동생이며, 어머니는 김유신의 셋째 누이 김정희이다. 부인은 요석공주이며, 두 딸을 두었는데 첫 딸은 문무왕의 장남인 소명태자의 정혼자였으나 혼인 전에 사망하였고, 둘째 딸은 신목왕후(신문왕의 비)로 683년에 계비로 책봉되었다.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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