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126
보스톤코리아  2016-04-17, 17:33:34 
그럼 법흥왕은 왜 박영실을 ‘용양군龍陽君’으로 삼았을까? 왕으로서 충복의 신하인 그를 총애하여 단순히 지위를 부여한 것인가? 아니면 둘이서 남색을 했기에 후일 김대문이 용양龍陽의 고사를 인용하여 부쳐진 명칭인가? 

먼저 법흥왕과 박영실의 사적인 관계를 보자. 법흥왕은 박영실의 부인이었던 옥진궁주를 후궁으로 데려와서 극진히 사랑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정비인 보도부인에게서 태어난 딸 지소태후(진흥왕의 어머니)를 박영실과 결혼시켰다. 지소는 박영실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냥 부왕 법흥의 명에 따랐다. 이 때는 진흥왕의 생부 입종갈문왕은 죽고 없었다. 이렇게 박영실은 법흥왕의 사위가 되며 한 여인을 주거니 받거니 하였다. 그리고 ‘용양군’이라는 남색男色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화랑세기에서는 세차례 용양군 또는 용양신이란 용어가 등장한다.(바로 이 법흥왕과 박영실의 관계, 5세 풍월주 사다함전에서 그의 아버지 구리지와 설성의 관계, 그리고 7세 풍월주 설화랑전에 같은 사람들인 구리지와 설성의 용양관계) 앞뒤의 문맥으로 보아 충분히 남색을 상상케 하지만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의 심복이나 대리인 정도로도 쓰이고 있다.

다음은 춘추전국시대의 7웅 중의 하나인 위魏나라의 용양이란 인물에 대해 살펴본다. 용양은 안리왕 때의 총신으로, 총애의 원천은 바로 남색이었다. 그래서 이후로는 용양군 또는 용양신은 남색으로 주인이나 상관을 받드는 인물의 대명사로 쓰여 왔다. 이 용양에 관한 이야기는 중국 전한시대의 학자인 유향이 전국시대의 유명한 책사나 모사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모아 편찬한 ‘전국책’ 가운데서 위나라에 관한 위책에 나온다. 

내용을 간단히 보면, <어느날 위나라의 안리왕과 함께 낚시를 한던 용양군이 고기 십여마리를 낚더니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왕이 이상하게 여겨 무슨일이냐고 물으니, 용양군이 “제가 낚은 고기가 꼭 저를 닮은 듯해서 그만 울음이 나왔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하고 왕이 재차 물으니, “제가 처음 고기를 잡았을 때는 그 기쁜 마음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컸습니다. 하지만 점점 더 큰 고기들을 잡자, 그만 앞서 잡은 고기를 아끼는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잘 생기지도 않은 저 같은 이가 총애를 입어 임금님 잠자리를 돌볼 수 있었습니다만, 앞으로 천하의 미인들이 줄을 이어 모이면 저는 낚시에 걸린 저 물고기처럼 음식으로 요리될 날만 기다리게 될 것이 아니옵니까? 그런 생각에 그만 눈믈이 앞을 가렸습니다”> 

위의 용양이 여자라고 생각되기 십상이지만 그는 분명 남자였다. 그리고 안리왕 역시 남자였다. 이 이야기로 비롯하여 어떤 남자를 용양군(또는 용양신)이라고 하면 그가 곧 남자를 위해 성적으로 봉사하는 인물의 대명사로 쓰이게 된 것이다.

이어지는 화랑세기 대역본, [그러므로 준정이 영실공을 부지런히 섬겨, 남모가 원화가 되는 것을 막으려 하였다. 태후는 비록 유명으로 영실을 계부繼夫로 삼았으나 실제로는 좋아하지 않았다. 이에 공에게 명하여 준정이 물러나게 했다. 태후는 또 남모에게 낭도가 부족한 것을 염려하여, 위화랑공의 낭도를 속하게 하여 늘려주었다. 준정이 투기를 했다. 이에 술로 유혹하여 물에서 죽였는데, 남모의 낭도들이 그것을 폭로했다. 태후가 이에 원화를 폐지하고 선화仙花를 화랑으로 삼았다. 그 무리를 일러 풍월風月이라 했고, 그 우두머리를 이러 풍월주風月主라 했다. 위화공이 풍월주가 되고, 미진부공이 부제副弟가 되었다. 얼마 안있어 공이 풍월주가 되었다. 공은 남모를 잃은 이후부터 아내를 맞지 않았다. 공은 외손으로 일찍이 법흥대왕을 모셨는데, 궁중에서 후궁인 묘도부인과 사통을 했으나, 감히 말하지 못했다. 태후가 알고 허락했다. 공은 이에 묘도를 아내로 맞이하여 미실낭주美室娘主와 미생랑美生郞을 낳았다.]

화랑세기에도 준정이 투기하여 남모에게 술을 먹여 죽인 기록이 위와 같이 간단히 나온다. 남모가 공주였지만 화랑세기에는 낭도들이 준정을 더 따랐음을 볼 수 있다. 즉 남모공주 휘하에 있던 낭도들이 준정에게로 많이 갔고 그래서 위화랑에게 속해있던 낭도들을 남모에게 주었다. 그리고 지소태후는 남편이지만 박영실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그를 섬기는 준정 또한 미워한 것이다. 그래서 준정을 물러나게 한것이고 이에 준정이 남모를 죽였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보다 더 정치적인 냄새가 풍기는 장면이다. 남모공주는 미진부공의 정처正妻였는데 그가 죽은 후 미진부공은 재혼을 하지 않고 혼자 지내다가, 전에 궁에서 법흥왕을 모실때 사통한 후궁 묘도부인을 지소태후의 허락으로 부인으로 맞아서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여인 중의 한 명인 미실을 낳았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삼국사절요,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신라속의 사랑 사랑속의 신라(김덕원과 신라사학회, 경인문화사)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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