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화랑세기花郞世紀, 원화源花 미실美室(27)
보스톤코리아  2024-05-06, 11:27:18 
588년 24세의 나이로 11세 풍월주에 오른 하종은 부모가 세종전군世宗殿君과 미실美室이다. 그들은 561년 경에 결혼하였다. 그런데 미실의 미모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미녀’ 라는 걸 안 진흥왕은 사도왕후에게 “너의 조카는 어찌 너의 잉첩이 되지 못하고 다른 데로 시집갔는가?” 라고 물었다. 즉, 가장 으뜸의 미녀를 왕의 후궁으로 들이지 않고 어찌 (세종)전군殿君의 부인으로 시집보냈냐고 말했다. 곧이어 진흥왕은 6세 풍월주의 위位에 있던 세종을 변방으로 내보내 국토확장의 중책을 맡겼다. 동시에 사도왕후는 미실을 진흥왕에게로 데리고 갔다. 그 무렵 미실은 태자 동륜과 사통을 하고 있었고, 왕의 후궁으로 입궁하던 날은 이미 동륜의 아이를 잉태하고 있었다(물론 진흥왕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562년 어느날, 미실은 자신을 닮은 예쁜 공주(동륜태자의 아이)를 출산하였다. 진흥왕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공주의 이름을 애송艾松이라고 봉했다. 그리고 미실의 3살(만 2세)이 겨우 된 아들 하종에게는 사지舍知(13등급)의 위를 내렸다. 또한 하종에게는 매일 왕궁에 들어가 놀 수 있는 특전도 내려졌다. 얼마후 진흥왕은 미실로 부터 반야般若공주를 얻자, 하종의 관위를 대사大舍(12등급)로 올렸다. 이어서 난야蘭若공주가 태어나자 하종의 관위가 또 올라 대나마大奈麻(10등급)가 되었다. 드디어 아들 수종壽宗이 태어나자 희열이 극에 달한 왕은 수종의 출생 77일을 맞이하여, 하종을 가자假子로 삼아 수종과 함께 두 아들을 전군殿君으로 봉하였다. 그 봉행의식은 신궁에서 성대하게 치루어졌다. 그러자 미실은 왕의 품에 안기면서 “하루에 두 전군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라고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며 매우 감격하였다. 그때가 대략 571년 말에서 572년 초 무렵이었다. 
572년3월 어느날, 평소에 부왕의 후궁 보명궁주를 연모하던 동륜태자는 그녀를 찾아가 수작을 걸었지만 궁주는 허락하지 않았다. 다음날 동륜은 장사壯士 몇명을 데리고 궁주의 담장을 넘었다. 보명은 미실과 더불어 왕의 총애를 다툴 수 없음을 알고 태자를 힘써 거부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동륜은 매일 밤 궁주의 담을 넘었다. 칠일 째 밤에 홀로 담장을 넘다가 궁주가 기르고 있던 큰 개에게 물렸다. 보명궁주가 내실로 데려가 응급처치를 하였지만, 새날이 밝아오는 동틀 무렵에 동륜은 사망하였다. 그러자 왕성이 발칵 뒤집혔다. 태자의 죽음 뿐만아니라 왕의 후궁과 사통한 사건마저 밝혀지자 진흥왕은 태자의 종인들을 심문하였다. 종인들의 입으로 부터 미실의 추행도 함께 흘러나왔다. 결국 왕의 문초는 큰 옥사로 이어졌다. 이에 미실은 자신에게 밀어닥칠 화를 두려워하여 목 놓아 울며 자진 출궁하였다. 하종도 전군의 위를 스스로 내려 놓고 미실의 뒤를 따랐다. 사건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자, 사도왕후는 왕에게 간하였다. “어찌 천한 무리들의 어지러운 말로 총첩의 은혜를 빼앗고 죽은 아들의 영혼을 아프게 하려 합니까?” 라고 하자, 진흥왕은 모든 일을 불문에 부치라는 조칙을 내렸다. 창졸간에 발생한 태자의 죽음과 미실의 출궁 등으로 왕은 공허한 나날을 보내다 보니 미실이 그리워졌다. 왕은 친히 미실의 사가로 거둥하였다. 미실은 울며 자신의 과오를 사죄하였다. 
한편 미실의 남편 세종이 변방으로부터 귀환하였다. 왕이 미실을 다시 전주로 삼고 싶었지만 세종의 믿음을 잃을까 염려하여 부부가 함께 살게 하였다. 이에 미실은 남편 세종과 아들 하종, 그리고 어린 수종을 데리고 해궁海宮으로 피하여 가 살았다. 그곳에서 미실은 조용하게 하종의 무병장수를 해신海神에게 기도하며 살았다.479) 
미실을 떠나 보낸 왕은 너무나도 허전하였다. 그래서 아들 수종이 보고싶다는 핑계로 여러 번 미실을 불렀다. 그러나 미실은 글을 올려 자신의 죄를 늘어놓고 거절하였다. 결국 왕은 직접 해궁으로 거둥하여 미실과 아들 수종을 껴안고 재회의 기쁨을 눈물로 대신했다. 왕은 그들을 모두 왕궁으로 데려와 세종을 병부우령兵部右令480) 에 임명하여 위로하였고, 다시 미실을 전주로 삼아 곁에 있게 하였다. 

479) 해궁인 어디인지 알 수 없다. 실제로 포항이나 울산 지역의 바닷가일 수도 있다. 또한 해신의 존재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즉 미실의 두 아들 하종과 수종이 전군에 봉해진 신궁에는 많은 조상신들이 모셔진 곳이었다. 후일 이사부, 문노, 김유신 등도 신궁에 신으로 모셔졌다. 한편 해궁의 위치가 바닷가가 아니라면 왕경 안에 있는 저택에 큰 연못이 있어서, 그 저택을 해궁이라고 불렀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480) 병부령은 516년(법흥왕3년)에 설치하였다. 544년(진흥왕5년)에 1인을 더했으며, 659년(태종왕6년)에 또 1인을 더했다. 그러니 세종이 병부우령에 임명될 당시에는 병부령이 2인이었던 시기로 좌령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에도 병부령을 역임한 인물들이 모두 기록되어 있지 않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병부령을 역임한 인물은 다음과 같다. 김이사부(세종의 아버지, 541 ~?), 김후직(580 ~?), 김법민(제30대 문무왕, 654 ~?), 김진주(659 ~?), 김군관(23세 풍월주, ?~ 681년, 김흠돌의 역모를 알고도 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형되었다), 김옹(?~ 771~?), 김충렴(785 ~?), 김준옹(제39대 소성왕, 792 ~ 796?), 김언승(제41대 헌덕왕, 796 ~ 801?), 김헌정(제43대 희강왕의 아버지, ? ~ 813 ~?), 김양(알천의 홍수로 제38대 원성왕에게 왕위를 빼앗긴 김주원의 증손자, 839 ~?), 김위홍(제43대 희강왕의 손자, 제48대 경문왕의 동생, 제49대 헌강왕, 제50대 정강왕, 제51대 진성여왕의 숙부, 진성여왕의 남편/사통?, 871/872 ~?) 등이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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