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영화 다른 생각 -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보스톤코리아  2008-02-10, 12:04:18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2006년 작
감독 : 박찬욱
주연 : 임수정, 정지훈


자기 자신을 사이보그라고 믿으며 존재의 목적을 알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영군이가 있습니다. 점으로 소멸되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훔치는 일순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만의 문제들을 다양한 병명으로 진단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을 우리는 정신 이상자라고 부릅니다.

사이보그는 밥을 먹지 않습니다. 대신에 건전지로 에너지를 충전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밥을 먹어야 살지요. 그렇다면 영군이는 밥을 먹지 않고 살 수 있을까요? 사람이 밥을 먹는다는 것은 살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란 것을 사이보그라고 믿고 있는 영군이가 알 리가 없겠죠. 결국 죽음을 맞을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돼서야 밥을 먹게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밥을 먹는다는 것이 살기 위한 최대한의 노력이 되는 순간입니다.  

일순이는 영군이에게 “희망을 버려. 그리고 힘내.” 이렇게 말합니다. 희망을 버리고서 무슨 힘을 내라는 건지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우선 들지요.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이 또한 살아가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더군요. 사람들은 희망에 너무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희망이 없다는 것은 곧 존재의 끝이라고 믿으면서 말이죠. 그런데 막상 그 희망이란 것이 삶을 더 곤혹스럽게 한다면 가끔은 그 희망을 버리는 것도 삶의 한 방편이 될 수 있겠다 싶은 거죠. 그렇다면 힘내라고 하는 건 또 무슨 의미일까요? 희망을 버렸다고 삶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 기운 차리고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가자는 뜻이겠죠. 오늘 하루를 무사히 잘 지냈으면 내일 하루도 별 일 없이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서 말이죠. 그런데 사람들은 참 이상하지요? 마치 죽을 것처럼 절망하다가도 그 고비가 지나고 나면 새로운 희망을 찾아내니까요.

희망이 숨어버리면 찾아내고 또 힘들면 희망을 버린 채 숨어버리고, 그러다 희망이 다시 숨어버리면 또 찾아내려고 애씁니다. 희망과 함께 끝없는 숨바꼭질을 하는 것이 인생이란 생각이 듭니다. ‘못 찾겠다, 꾀꼬리’하고 항복하는 순간 우리는 희망을 버리는 걸까요? 글쎄요, 일종의 신세한탄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냥 아프다고,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겁니다. 숨바꼭질 한 판 졌다고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니까요. 다음 판에는 이기면 되잖아요.

그런데 그 희망이란 것이, 지나친 욕심을 희망이란 이름으로 예쁘게 포장한 것이라면 어떨까요? 이럴 땐 차라리 ‘못 찾겠다, 꾀꼬리’하고 크게 한 번 외치고 깨끗이 항복하는 편이 훨씬 희망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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