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새출발, 오바마 시대 개막
보스톤코리아  2009-01-22, 00:41:29 
변화의 물결 기대하는 열기 가득

미국 역사의 새로운 장을 펼칠 제44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 거행을 앞둔 20일, 워싱턴DC는 수많은 인파들이 새벽녘부터 내셔널 몰에 모여들면서 축제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특히 워싱턴 DC로 들어오는 주요 도로와 교량에서 일반 차량에 대한 사실상의 전면 통제가 이뤄짐에 따라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와 메릴랜드 주에서 대중 교통수단으로 도심으로 들어오는 방법은 지하철이 유일했다.

지하철을 타고 워싱턴 입성에 성공한 인파들은 쌀쌀한 날씨 때문에 털모자와 두꺼운 외투, 장갑, 목도리, 귀덮개 등으로 무장했지만 역사적 현장에 직접 참석하게 된 데 따른 흥분과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내셔널 몰과 워싱턴 기념탑 주변을 가득 메운 2백만여 명의 관람객들은 성조기를 들고 ‘오바마’와 ‘Yes We Can’을 연호했다.

오바마, 위기 극복 역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낮 12시 워싱턴 D.C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미국이 직면한 위기는 극복될 것이라며, 미국을 재창조하는 작업이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연설 서두에서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우리는 광범위한 폭력과 증오에 맞서 전쟁을 하고 있으며, 우리의 경제는 일부의 탐욕과 무책임,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우리 모두의 중대한 결정 오류로 심각하게 취약해져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오바마는 “우리는 공포가 아닌 희망, 갈등과 불화가 아닌 단결을 선택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섰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가 살아온 방식을 사과하지 않을 것이며 다시 한 번 세계를 이끌어갈 준비가 돼 있다”고 강력한 미국의 리더십 재건에 나설 것임을 밝혔다.

그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도전은 실질적이고도 심각하며 다양하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단기에 쉽게 극복될 수 없지만 미국은 이를 이겨낼 것”이라고 자신했다.

특히 경제 상황과 관련, 미국 경제는 신속하고도 과감한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고 환기 시킨 뒤, “오늘부터 우리는 스스로를 추스리고, 먼지를 털고 일어나 미국을 재창조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부를 창조하고 자유를 신장시킬 수 있는 자유시장 경제의 능력은 어느 체제보다 뛰어나다”면서도 “현재의 위기는 감독 없이는 시장이 통제불능의 상태로 일탈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줬다”고 강조했다.

21분간에 걸친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이 이어지는 동안 군중들 사이에서는 간간히 “옳소(That's right)”, “아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연설 중간중간에 박수 소리가 이어졌지만 전반적으로 군중들은 차분한 가운데 연설을 경청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re’로 시작되는 단어들을 자주 사용했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위기에 빠진 미국을 향해 다시 일어서자는 메시지를 던지다 보니 자연히 ‘re’가 붙은 말들이 자주 입에 오른 셈이다.

오바마가 취임사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15번 등장한 ‘국가(nation)’이며, ‘미국(America)’은 9번, ‘국민(people)’과 ‘일(work)’은 각 8번씩 등장했다.

세계 각국의 축하 메시지

세계 각국 정부는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취임한 버락 오바마에게 일제히 축하 인사를 건넸다.

미국과 돈독한 우호 관계를 유지해 온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오바마에 대한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사르코지는 “우리는 오바마 대통령이 어서 업무를 시작하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며 “그와 함께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했다.

미국의 맹방인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도 “오바마는 위대한 비전을 가진 사람”이라며 “미국과 세계 역사에 새 장이 열렸다”고 환영의 뜻을 전했다.

하비에르 솔라나 EU 외교정책 대표는 “오바마 정부의 출범은 미국, 유럽 양 대륙에 다자주의 외교 약속을 재확인하는 기회”라며 오바마에게 “미국 등 그 어떤 나라도 혼자 힘으로 모든 문제를 풀 수 없음을 받아들이라”고 충고했다.

아소 다로 일본 총리는 “오바마 대통령과 손잡고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힘쓰겠다”는 축화 담화를 발표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평화를 증진하고 기아, 빈곤에 맞서 싸워 달라”는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최고의 행운이 함께하길 기원한다”면서도 정책 협조에 대해선 냉정히 선을 그었다. 메르켈은 총리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추가 파병 요청을 계속 거부할 것임을 시사하며 “우리는 (미국)대통령이 누구인가 보다 우리의 능력과 경험에 따라 결정한다”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며 다소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베르나르 쿠슈네르 프랑스 외교장관도 “오바마 대통령은 요술 지팡이를 갖고 있지 않다”며 “그가 모든 문제를 일시에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취임식 해프닝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은 사상 최대 인파를 동원하고도 큰 사건 없이 끝났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바마의 취임사도 그의 색깔을 충분히 보여줬다는 평을 듣는다.

하지만 눈에 띄는 두 가지 실수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두 실수는 취임식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취임 선서와 취임사에서 나왔다.

오바마는 관례에 따라 존 로버츠 대법원장 앞에 서서 왼손을 성경 위에 얹은 채 오른손을 들고 대법원장의 선창에 따라 선서문을 낭독했다. 하지만 그 순간 오바마는 잠시 멈칫했다.

첫 구절은 “나, 버락 후세인 오바마는 대통령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한다(I, Barack Hussein Obama, do solemnly swear that I will faithfully execute the Office of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다.

그런데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I will execute the Office of the President ‘to’ the United States ‘faithfully’”라고 읽었다.

대법원장이 ‘faithfully’라는 부사를 맨 뒤로 뺐고, 전치사(of 대신 to)가 잘못 사용됐음을 오바마가 발견한 것이다.

대법원장이 실수를 깨닫고 다시 읽으려 했으나 말이 엉켰고, 오바마 대통령은 웃으며 대법원장처럼 ‘faithfully’를 맨 뒤에 넣은 채 낭독했다. 연방대법원장이 주관하는 자리임을 존중한 것. 다만 전치사 ‘to’는 ‘of’로 바꿔 읽었다.

취임식 후 오찬에서 로버츠 대법원장이 사과하려는 듯한 순간 오바마 대통령은 악수를 청함으로써 대법원장의 실수를 감싸줬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밤 있었던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그가 나를 도와주려고 했으며, 전체적으로는 무사히 끝난 점에 대해 그에게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두 번째 실수는 취임사를 시작하자마자 나왔다. 취임 선서를 마친 오바마는 취임사 두 번째 단락에서 “지금까지 44명의 미국인이 취임 선서를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선서를 한 대통령은 44대 대통령인 자신을 포함해 43명이다. 22대와 24대 대통령인 그로버 클리블랜드는 동일인이기 때문이다. 취임사를 작성한 27세의 존 파브로가 너무 젊어 이 사실을 몰랐을 것이라는 것이 주요 언론사의 추측이다.

국토안보부와 FBI는 취임식 전에 잠재적 테러 정보를 입수, 대통령 취임식 경비 체제를 일시 변경하고 지상과 공중, 해상에서 입체적인 철통 경비를 벌였다. 기존의 경비와 보안 작전 등급이 상향 조정되지는 않았다. 다행히 취임식이 진행되는 동안 별다른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다만 악성 뇌종양으로 투병 중인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이 이날 의사당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 축하 오찬 도중 갑자기 쓰러져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케네디 의원은 즉시 휠체어로 의사당 건물을 나와 구급차로 옮겨졌으나 이후 의식을 곧바로 회복하고 상태도 호전됐다.

퍼스트 레이디, 미셸 오바마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장에 미셸 오바마가 모습을 드러내자 언론은 찬사를 쏟아냈다. 또 마지막까지 비밀에 부쳐졌던 무도회 드레스가 공개되자 관심은 더 뜨거워졌다. 그녀의 최종 선택은 그 동안 일반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젊은 미국 디자이너들의 작품.

무도회 드레스는 대만 출신 26세 디자이너 제이슨 우의 작품이다. 한쪽 어깨가 드러나는 아이보리 색 시폰 드레스는 은실 자수와 얇은 헝겊 장식, 스와로브스키의 크리스탈로 장식돼 있다. 보석 디자이너로 유명한 로리 로드킨 씨가 만든 다이아몬드 귀걸이로 화려함을 더했다.

미셸이 평소 심플한 드레스 라인을 선호해온 점에 비춰 이날 선택은 의외라는 반응도 있었지만 ‘신선한 파격’이라는 평가가 더 많았다. 드레스는 관례에 따라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기증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무도회장에서 마이크를 잡자마자 “여러분, 내 아내가 얼마나 예쁩니까”라고 물으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취임식에서 그녀가 선택한 노랑 재킷 정장은 쿠바 출신 이사벨 톨레도의 작품. ‘레몬 그래스’로 불리는 황금빛 색깔의 옷감과 모직 레이스, 실크 장식 등으로 구성됐다. 가격은 2000~3000달러라고 톨레도는 밝혔다.
미셸은 추위를 피하기 위해 소매 없는 원피스 위에 카디건을 입었고 연두색 가죽 장갑을 착용했다. 코트에 두른 녹색 리본과 카디건에 달린 보석 장식 깃, 다이아몬드가 박힌 귀걸이는 미셸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톨레도는 유명 디자이너 앤 클라인 밑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작은 개인 부티크를 운영해온 25년 경력의 디자이너. 그는 “대통령 부인들이 전통적으로 선택해온 파랑, 빨강 대신 희망과 변화를 의미하는 밝은 색깔을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즈는 “(미셸의 선택은)패션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요즘 현대 여성들이 갖고 있는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평했다.

숨가쁜 대통령 첫날

취임식을 치른 오바마의 20일 일정은 오전 8시47분 백악관을 떠나, 성 요한 교회로 향하며 시작됐다. 10시에 백악관으로 돌아와, 조지 부시 대통령 부부와 함께 커피를 마시며 환담을 나눴다. 10시47분, 오바마 부부는 취임식이 열리는 의사당으로 향했다. 11시30분 공식행사 시작 30여분 뒤, 오바마는 역사적 취임 선서로 대통령에 공식 취임했다.

취임 연설을 한 뒤, 오바마는 헬기를 타고 떠나는 부시 대통령을 배웅했다. 의사당 대통령실로 향한 오바마는 정권 인수에 관한 3개 문서에 서명하고, 대통령으로서 공식 첫 업무를 시작했다.

특히 취임 직후 관타나모 기지의 군사재판을 120일간 전면 중단하도록 군 검찰에 전격 지시했다. 미국 일방주의의 상징, 관타나모 수용소를 공약대로 폐지할 것이라는 신호다.

의사당에서 마련된 오찬이 끝나자, 오바마 부부는 축하 퍼레이드 장소로 향했다. 오바마와 미셸은 ‘USA 1’ 번호판을 단 리무진을 타고 퍼레이드를 따라가다 15분 정도 뒤 리무진에서 내려, 환호하는 국민들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특히 취임식 뒤 지역, 연령별로 참석 인사를 차별화한 대통령 고향 축하 무도회, 청소년 축하 무도회, 남부 축하 무도회 등 10개 무도회에 밤늦게까지 잇따라 참석했다.

정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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