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과 점(占) : 토정비결
보스톤코리아  2011-02-14, 14:19:30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지만 전에는 정월 초 하룻날 아침 일찍이 차례를 지내고 동네 어른들을 찾아 세배를 올린 다음 저녁에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 토정비결을 놓고 돌아가면서 가족의 행운을 알아보는 것이 한 즐거움이기도 했다.

아시다시피 유교를 신봉하던 조선사회에 있어서 효는 백행지원(百行之源)이라고 하면서 조상 숭배 사상이 강하던 당시에 인간의 행복이나 장래 희망에 대해서는 아주 냉담했다.

그래서 부녀자들은 산간에 있는 절을 찾아가 불공을 드리거나 아니면 용한 점쟁이를 찾아 가족의 운세와 평안을 물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라가 있어야 국운을 걱정하고 자유가 있어야 출세도 생각해 보는 법.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 백성에게 무슨 희망이 있었겠는가!

조선에서 나는 양곡과 한우는 다 일본이 가져가고 그것도 부족해서 나중에는 밥그릇까지 빼앗아 간 처지에 무슨 희망이나 기대가 있었겠는가!

“노자노자 젊어서 놀자 늙어지는 못 노나니…”라는 노래가 있었는데, 우리는 어려서 잘 알지 못했지만 집에서 농사짓던 젊은이들의 허탈한 심정을 토로하는 노래가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그러나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일본 선생의 조롱 섞인 멸시에 분개하여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공부하였던 것이 당시 조선고 학생들이었다. 그러나 면 사무소 서기 한 자리를 얻어 하려고 해도 일본인의 천거가 있어야 했으니 당시 조선 학생들에게 출세의 길이 있었으면 어떤 것이겠느냐는 말이다.

그래도 상급학교에 갈수나 있으려나, 하는 것이 희망이었으며, 행여나 취직자리가 있을까 하고 점쟁이를 찾아 새해의 운세를 알아보는 일도 있었지만 정초에 「토정비결」을 가지고 새해의 운수를 알아보는 것은 정초의 풍습이지 그것을 점이라고는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근세 조선시대의 풍속을 말한 「경도잡기」에도 정초에 사람들은 5행점을 보면서 새해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해가 바뀌면 모든 것이 다 새롭게 보이고 따라서 새해에는 무슨 좋은 일이 있지나 않을까 하고 희망을 가져보게 된다.

공자님이 말하기를 “일생지계는 재유하고 일년지계는 재춘하며, 일일지계는 재인”이라고 하였다. 봄은 그 해의 시작이다. 한 해의 준비는 그 해의 봄 정초에서부터 시작된다. 지금은 어떠한지 모르지만 전에는 해가 바뀌어 정월 달에 들어서면 점쟁이들이 돌아다니면서 새해의 운수를 점치라고 권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점쟁이에게 점을 부탁하면 많은 복채를 주어야 한다. 돈 없는 사람은 감히 생각지 못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조 명종 때의 유학자 이지함이라는 분이 토정비결을 지어 서민들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의 운수를 알아보게 하였다. 얼마나 훌륭한 일인가.

이 「토정비결」이 일반에게 널리 유포된 것은 이씨 조선의 영,정조 때이다. 먼 옛날 일은 잘 알지 못하지만 일제의 식민지 정치 하에서 억압과 착취를 철저히 받아왔던 당시의 한국 사람에게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게 한 것은「토정비결」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토정비결」은 주역의 원리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점 책이다. 그런데 역술가 중에는 「토정비결」을 잡술이라고 하여 무시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학술적인 가치가 전혀 없는 위서라고 비난하는 학자도 없지 않다. 그러나 「토정비결」은「정감록」, 「도선비결」, 「남사고 비결」 등과 같은 술수의 예언서가 아니다. 그것은 주역의 음양론에 근거하여 사람의 생년월일을 따져 그 운수를 알아보게 한 유일한 점 책이이다.

백린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 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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