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와 미국의 교차로에서(27) : 나의 체험을 통해 본 일본과 미국의 조선족(1-2)
보스톤코리아  2011-04-25, 13:58:13 
일본속의 조선족
나는 1988년 10월에 일본에 유학가서 처음 1년반을 도쿄 외곽에 있는 쓰쿠바대학에서 연구생으로 지냈다. 그 때 쓰쿠바대학에는 4, 5명 정도의 조선족이 유학하고 있었는데 신기스럽게도 서로 누가 조선족이라는 것을 재빨리 확인하게 되고 같이 어울리면서 사이좋게 지냈다. 해외에 나오게 되면 조선족 사이의 연대감이 강화되어 서로 모르던 사이에도 차츰 친해지는 경향이 있다.

나는 1990년4월부터 도쿄대학교의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도쿄에 이주했는데 거기서 정말이지 많은 조선족들과 접촉하게 되었다. 그해 5월에 도쿄에서 연변대학교 교수출신자들이 중심이 되어《동방학우회》라는 유학생,학자모임이 결성되고 정기적으로 친목적인 활동을 하고 국제학술회의에 참가하고 견학회도 조직하였다. 이 모임은 후에 《재일연변대학교학우회》라고 명칭을 바꾸어 지금까지 활동을 해오고 있다. 나로 말하면 이 모임에서 제일 인상이 깊었던 것이 1990년 여름에 30여명이 같이 한국으로 10여일간의 모국방문을 다녀온 것이다. 고베에서 배를 타고 밤중에 대마도를 지나 아침녘에 부산항에 도착했던 때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대부분의 일행이 그 때 처음 한국을 방문했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부산, 포항, 경주, 서울, 판문점을 방문하고 모국체험을 깊이 했다. 그 때 같이 한모임에서 활동하던 조선족들중에서 중국의 학계에서 활약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고 인구가 그리 많지 않은 조선족에 인재들이 정말 많구나 하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됐다.

나는 1998년부터 도쿄에서 설립된 조선족단체인 《천지협회》(후에《천지협회》로 이름이 바뀌었다)의 활동에도 참가하였다. 이 모임은 1995년에 도쿄의 중국 유학생숙사에서 서로 알게 된 조선족 유학생들이 동족모임으로 발족한 것인데 98년부터 조선족의 공식단체를 지향하면서 도쿄 지역의 조선족들이 많이 모이게 되었다. <교류, 협력, 공동발전>을 슬로건으로 하여 정기적으로 교류회, 포럼, 조선족체육대회, 송년회, 댄스파티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한동안《천지인문》이라는 잡지도 간행했다. 그리고 천지장학금을 설립하여 중국내의 조선족 청소년 지원사업을 진행했다. 이 모임의 초창기에 같이 활동한 조선족들은 중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온 20, 30대의 젊은이들이었는데 다들 꿈이 많고 조선족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대단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나서 그 때 같이 활동하던 멤버들을 보면 대체 사업에서 성공한 사람이 많다.

1999년에 일본에 유학하던 연변대학 교수출신자들이 중심이 되어《중국조선족연구회》를 설립하여 조선족에 대한 연구활동을 진행하다가 2007년에《중국조선족연구학회》로 발전하였고 일본에서 조선족연구단체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2000년대에 들어서서는《쉼터》를 비롯하여 조선족 인터넷사이트가 여러개 개설되고 조선족여성회, 조선족축구동호회 등 단체가 새로 많이 생겨났고, 조선족에 관한 중요한 행사를 할 때는 여러단체가 공동으로 개최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내가 일본에서 20여년 사이에 관찰해본데 의하면, 일본에 중국 조선족이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인데 초기에는 중국정부에서 파견하는 학자나 유학생, 주재원들이었고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다가 90년대 부터 조선족 유학생, 학자가 늘어나기 시작하고 90년부 후반부터 일본어학원에 조선족 어학연수생이 많이 오게되면서 일본에서 조선족의 인구가 급속하게 늘어났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눈에 띄게 보이는 변화가 일본내에서의 조선족의 정착이 가속화되고 영주권이나 일본시민권을 취득하는 조선족이 많이 늘어난 점이다. 90년대까지만도 일본의 조선족은 유학생, 학자가 중심이 되었는데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회사에 취직하고 자체로 사업하는 조선족이 아주 많아졌다. 도쿄에서 나와 같이 어울리던 조선족 중에서 건축설계, IT, 무역업으로 사업에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 적지 않다. 도쿄에는 조선족이 경영하는 식당도 이제는 적지 않고 그런 식당에 가면 조선족들이 모여서 회식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일본의 조선족들이 현재 비교적 많이 경영하는 사업이 미용원이거나 마사지업이라 할 수 있다.

일본에서 조선족이 정착하기 쉬운 점은 우선 일본어의 언어습득이 빨라서 언어장애가 적기때문이다. 거기다 일본이 중국, 한국과 관계가 밀접하기에 중국어, 한국어, 일본어가 다 통하고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기에 일본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는 폭이 넓다. 그 때문에 일본의 조선족은 이주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데도 정착을 빨리하고 있다. 미국에 이주한 중국의 조선족이 대체로 재미한국인들과 교류가 많고 한인사회에 의지하는 경향이 짙은데 비하면 일본의 조선족은 일본사회에서의 자체적인 적응이 가능하기에 재일한국인들과의 교류가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고 상대적으로 독자성을 유지하고 있다.

김광림
Professor, Niigata Sangyo University
Visiting Scholar, Fairbank Center for Chinese Studies, Harvard Univesity
E-mail:guanglinj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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