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카 백제 문화를 찾아서 : 9. 백제가 일본에 불교를 전해주다
보스톤코리아  2011-08-08, 14:40:58 
서기 552년에 백제 성왕이 왜국의 긴메이( 欽明) 왕에게 불교를 전해 주었다. 왜 그랬을까? 그 당시의 한반도 사정을 알아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서기 475년에 고구려 장수왕 이 한성 백제를 쳐들어 와서 백제 개로왕을 살해하고 한강유역을 차지한 것은 이미 말한 바 있다.

 고구려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신라와 백제를 압박하여 죽령과 아산만을 연결하는 남쪽까지 쳐 내려오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백제와 신라는 나제 동맹을 맺어 100여년 동안 고구려의 남침을 저지하게 되었다.

백제 성왕 29년(551)에는 신라의 진흥왕과 연합하여 고구려를 격파하여 백제는 한강 하류 지역을 신라는 한강 상류 지역을 수복하게 되었다.

그러나 신라의 배신으로 성왕은 한강 하류 지방을 신라에게 또 빼앗기게 됨으로써 고구려와 신라 두 적국을 상대 하여야만 하였다. 다행히 백제는 4세기경부터 규슈와 일본 열도에 진출해서 일본에 근거지가 있었다. 유사시에 왜국을 백제의 후방 기지로 하려는 의도로 어려운 사정 속에서도 일본에 불교를 전래하게 된 것이다. 

위 도표에서 보는 것처럼 일본의 긴메이 왕은 백제 성왕의 생질이 되고 왜국의 대신 소아도목 은 백제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목만치 장군의 증손자가 되기 때문에 불교를 전해주는 접촉 채널이 마련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노리사치계가 불상을 모시고 일본으로 간 배. 일본의 학자들이 고증을 거쳐 만들었다.
노리사치계가 불상을 모시고 일본으로 간 배. 일본의 학자들이 고증을 거쳐 만들었다.
 일본 서기에 적혀 있기를 긴메이 13년 10월에 백제의 성명왕(聖明王)은 달솔 노리사치계를 보내면서 승려, 금동석가불 1구, 경론, 불구 등을 보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때 한일 간의 항로는 지금의 부산에서 대마도, 일기도를 거쳐 하까다(밖다) 에 머무른 다음 세토 내해를 거쳐 난파(오오사카)에 가는 것이 정석이었다.

대마도는 한일 해협에 남북으로 길게 가로누운 섬이다. 부산에서 일본을 가려면 대마도 서쪽 바다에서 동쪽 바다쪽으로 이동 하여야 하는데 대마도 남쪽이나 북쪽 끝에서 긴섬을 돌아 나가야만 하였다.

그런 불편을 덜기 위해 두섬의 연결 부분에 개미 허리처럼 잘룩한 부분(폭이 100m 미만)이 있는데 이곳에서 배를 육지를 통하여 반대쪽 바다로 나르는 방법을 택하였다. 그래서 이 곳의 지명이 오후나코시(大船越 )와 고후나 코시( 小船越 )이다. 말 그대로 배를 넘기는 곳이라는 뜻이다.

고후나 코시의 매림사
고후나 코시의 매림사
 고후나코시(小船越)에는 매림사(梅林寺)라는 일본에서 제일 오래된 절이 있다. 성왕이 불상을 보낼 때 여러 날을 이곳에 머물렀는데 그 불상을 모시기 위해 임시로 마련한 절이라는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이다.

지금 까지 이절이 남아 있는 이유는 한반도와 관련이 있다. 원래가 고후나 코시는 한반도로 가는 배가 뜨는 곳이었다. 대마도의 생계는 전적으로 한반도 와의 무역에 목을 매고 있었는데 조선 정부는 일본에서 아무 배나 들어오는 것을 허락 하지 않았다.

반드시 대마도주의 허가서가 있어야만 했는데 이 허가서를 떼어주는 기관이 매림사였고, 그 대가를 매림사가 일일이 챙긴 것은 물론이었다.

매림사에서 전해 내려오는 얘기로는 당시 북대마도는 신라군이, 남대마도는 가야계 사람들이 장악하고 있어서 불상을 운반하던 배는 고후나 코시에서 육지를 넘어가야만 했다고 한다.

어찌 되었든 우여곡절 끝에 노리사치계 일행은 긴메이 왜왕에게 불상과 경전을 전해 주게 되었다. 그 때 전해준 금동 불상은 크기가 30cm 정도의 작은 호신불이었다.

성왕은 따로 글을 써서 불법을 받들 것을 권유하였다. 그 때의 상황이 일본 서기에 적혀 있다. 불상을 받은 긴메이 천황은 “내가 예부터 이제까지 이렇게 미묘한 법을 들은 일이 없다.” 고 환호하며 배석한 신하들에게 불법(佛法 ) 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소아도목 대신은 “서쪽의 여러 나라가 다 같이 예배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어찌 혼자 배반할 수 있습니까?. “ 라고 불교를 받아 들이는 데 찬성하였다.

저자의 왼쪽 팔꿈치 옆에 놓인 유리상자 속에 성왕이 보내준 불상이 보인다.
저자의 왼쪽 팔꿈치 옆에 놓인 유리상자 속에 성왕이 보내준 불상이 보인다.
 그러나 신도를 믿고, 또 신도를 관장하는 대련 벼슬에 있던 물부 대련은 “우리나라가 천하에 왕노릇하게 된 것은 항상 천지사직의 180신을 춘하추동에 제사 지내는 것을 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것을 고쳐서 번신을 예배한다면 국신의 노여움을 살 것입니다.” 라고 반대 하였다.

원래 물부 집안은 가야계 출신으로 신도를 모시는 집안이다. 신도를 관장하는 대련이라는 벼슬을 대를 이어가면서 세습하고 있었는데 부처님을 모시라니 반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조정 신하들의 의견이 둘로 갈라지자 긴메이 왕은 불상을 소아도목 대신에게 주면서 시험 삼아 불도를 믿으라고 하니 그는 기뻐하며 자기집을 깨끗이 하고 불상을 모시고 향원사(向原寺)로 이름 지었다고 한다.

원래가 불교가 전해지기 전부터 백제 사람인 소가씨와 신도를 신봉하는 가야 사람 물부씨 간에는 권력 다툼이 있었는데 불교가 전래 되고 난 다음에는 두 가문은 물론이고 조야가 둘로 갈라져서 47년간에 걸친 끝 없는 종교전쟁을 하게 되었다.

전쟁의 시작은 물부 대련이 소아도목 대신의 향원사를 습격하여 절을 불태우고 성왕이 전해 준 불상을 난파(지금의 오오사카) 의 굴강에 던져 버리면서 시작 되었다.
왜 나라(奈良)에 있던 불상을 구태여 멀리 떨어진 난파까지 가서 강에 던졌을까? 그 이유는 백제에서 왜국에 오는 물건은 모두 난파를 거쳐서 오기 때문에불상을 백제로 되돌려 보낸다는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남북 대마도가 만나는 지점에서 고후나코시와 매림사를 확인할 수 있다.
남북 대마도가 만나는 지점에서 고후나코시와 매림사를 확인할 수 있다.
 


• 저자 주: 매림사에 관한 기록은 홍하상 교수가 전해준 자료에 의한 것입니다. 본 컬럼은 27회, 또는 28회까지 계속됩니다.

김은한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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