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코리아  2011-08-15, 13:38:58 
불러주는 사람 드물고, 갈 데는 많은 은퇴자의 삶이 요사이 조금 풍성해졌습니다.

뒷 뜰에 손바닥만한 땅을 올 봄에 뒤집고 거름 주고, 풀 뽑고, 오이, 고추, 가지, 토마토, 호박을 심어 놓았더니 심심치 않게 수확을 안겨줘서 재미가 쏠쏠해요. 벌써 오이는 3,40개, 가지는 4,5개, 토마토도 3,4개, 호박 역시 1개를 땄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면서 잎사귀를 뒤집으면 숨어 있는 놈이 발견되고, 한밤 자고 나면 한 뼘씩 자라있는 생명력을 볼 때마다 흐믓하죠. 호박의 경우, 꽃만 요란하게 피는데 요 며칠 벌과 나비가 뜸해서 그런지 열매를 맺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흙은 따스한 어머님의 품처럼 모든 걸 안아줍니다. 생명의 뿌리인 동시에 보금자리이지요. 우리는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어요. 흙은 속이지 않습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고 하지요. 그 풍만한 여유, 속 깊은 배려가 눈에 보입니다.

다 내어주고 아무런 불평 없이 키워주고, 억지로가 아닌 자연스런 마음 씀씀이가 그 속에 있는 한 인류는 멸망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몇 포기 심어놓고 아침 저녁으로 물주고, 풀 뽑고 하다 보니 정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말도 걸어 봅니다. “잘 잤니?” 잎이 누래지면 “어디가 아프니?”하고요.

특별히 오이란 놈은 건축설계(?)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요. 잎과 가지 사이에서 실타래처럼 가는 끈이 나와서 주위에 있는 물건에 감기는데 얼마나 단단한지 그 무거운 오이가 달려도 끄덕이 없어요. 대견합니다.

최근에 미국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해봤습니다. 재정적자 메우기 상한선을 높여놓고 팔장을 낀 채 쳐다보고 있어요. 이건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죠. 수입도 없는데 남에게 돈을 꾸는 액수만 높여 놓는다고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습니다.

흙에서 배워야겠다고 저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가난과 베품이라고.
낭비를 하던 사람이 줄여 쓴다는 게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동안 미국은 지나치게 커졌고 분수에 맞지 않게 호화스럽게 살아온 것도 사실입니다. 정부기관이 너무 비대하고 개인과 기업체도 부풀어 있어요. 전쟁도 없는데 막대한 군비지출, 의료비 과대부과, 실업률 증가, 생산성 낙하…까지

지난번 실업 급여 신청자중에 4,000명 이상이 백만장자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건 분명히 미국 사회 내 개인 사고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예요. 남에게 베풀 줄을 모르고, 돈만 벌려고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이런 건 부패하게 되어 있지요.

그럼에도 아직 미국이 강대국인 것은 병, 노약자에게 돌아가는 의료 및 지원이 다른 나라보다 높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믿습니다. 현 지도층의 현명한 판단 및 결단이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거라고 말입니다.
흙은 조용합니다. 불평도 없고, 있는 그대로 겸손합니다. 제 이름을 영어로 풀어보니 SOIL이 되더군요(제가 원한 것도 아닌데) 미국 친구들이 놀려요. 그러나 저는 흐믓합니다. 흙처럼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라는 메시지로 여기기 때문이지요.

가끔은 제가 키우는 식물들이 꽃을 피워 웃고 있으면 기분이 아주 좋아져요. 지난 겨울에 집 안에서 정성 들여 키운 무궁화가 지금도 한껏 자태를 뽐내고 있네요. 뒷 뜰엔 우람한 단풍나무 두 그루가 울창한 잎으로 새들의 보금자리와 그늘을 만들어주어 고맙습니다. 새모이 주위에서 각종 새들이 조잘대며 식사를 하는 모습이 보기 좋고, 제게는 그 새 울음소리가 교향악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다람쥐라는 놈이 숫자가 늘더니 새들을 모아대서 그게 좀 미워지네요.

서일
(뉴햄프셔한인회장,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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