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회 산토리 위스키의 벽돌한장
보스톤코리아  2012-08-06, 13:59:39 
산토리라고 하면 우선 우리의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산토리(Suntory) 위스키죠. 오늘날 산토리는 위스키 외에 맥주, 소주, 와인, 식품, 의약, 외식산업 등 다방면에서 진출한 대기업이죠. 산토리 역시 그 출발은 오사카입니다.

1899년 오사카에서 출발한 산토리 그룹은 처음에는 위스키를 수입, 판매하던 회사였죠. 창업주였던 도리이(鳥井信治郞)는 본래 약품 도매상이었습니다. 그는 약품 도매를 하면서 처음에 위스키를 수입, 판매했죠.

일본의 근대화가 시작되었던 때였습니다. 그러다가 1907년에는 단맛이 나는 포도주를 생산해서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붉은 구슬(赤玉) 포도 와인>이라는 상품이었죠.

여기서 적옥은 태양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산토리의 산은 ‘산이 아니라 선(Sun)’의 의미죠. 이 상품은 일본의 하이칼라 세대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끌게됩니다. 여기에 힘입어 도리이는 1921년에 국산 위스키를 만들어 팔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해에 위스키 증류소를 만듭니다. 그러나 위스키 증류소의 건설은 쉽지 않았죠.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는데, 그 반대 이유는 위스키 제조는 스코틀랜드가 아니면 어렵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더구나 위스키 증류소 건설은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어 회사의 전 자본을 투입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업이었죠.

그러나 도리이 사장은 붉은 구슬 와인의 성공에 상당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던 터라 이 일을 밀어붙입니다. 리스크가 크다고 해도 언젠가 일본인도 국산 위스키를 만들어 마셔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죠.

그는 마침 서양에서 양조학을 배운 기사가 귀국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도리이 사장은 그 젊은 기사를 찾아가 자신의 회사에 입사해 줄 것을 부탁했죠. 당시 대졸자에 초임은 월 40-50엔이었는데, 도리이 사장은 그에게 연봉 4000엔을 제시해서 그를 스카웃합니다.

돈 한푼을 아까워하며 사치를 극도로 경계하는 오사카 상인들은 사업의 투자에 있어서만큼은 그 반대로 누구보다도 과감하죠.

증류소 건설은 일사천리로 진행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위스키 생산에 적절한 양질의 지하수를 확보하는 것이었죠. 그 적지로 교토와 야마자키(山崎)가 결정됩니다.

야마자키는 예부터 물이 좋기로 소문난 곳이어서 일본의 다성(茶聖) 센노리큐(千利休)가 만든 다실인 대암(待庵)이 있었던 좋은 물의 본고장이죠. 물론 이 물은 지금도 일본의 <전국명수 100선>에 들어갑니다. 그 물이 예부터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일본 최고의 시가집인 만엽집에도 그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노래가 실려있을 정도죠.

1924년 드디어 도리이가 그토록 염원하던 증류 공장이 완성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첫 해에 생산된 위스키가 술통에 담겨지고 저장소에 보관되죠. 그러나 위스키는 상당 기간의 숙성을 거쳐야 시장에 출하될 수 있는 상품입니다.
그들은 위스키가 숙성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5년간 기다린 끝에 일본 최초의 본격 위스키인 산토리 위스키 히로후다(白札)가 발매되었죠. 산토리 위스키는 이미 발매된 붉은 구슬 포도 와인의 호평에 힘입어 상당한 인기를 끕니다. 그러나 가격이 너무 비쌌죠.

한 병에 4엔 50전이었는데 이는 대졸 초임의 10분의 1에 해당되는 고액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산토리 위스키는 고가격 때문에 판매가 부진하게 되었고, 이미 생산된 위스키들은 저장고에서 오랜동안 판매되기를 기다려야만 했죠.

그 사이 산토리 위스키의 기술자들은 일본인들의 입맛에 맞는 위스키의 맛을 찾는데 노력을 경주했죠.

일본인들은 미각이 섬세한 민족이죠. 그들의 섬세한 입맛에 맞는 위스키의 맛을 개발해내기 위해 그들은 불철주야 밤을 새웠습니다.

1937년 드디어 산토리사의 야심작 <가쿠빙(角甁)>이 출하됩니다.

현재 가쿠빙은 대만이나 태국 등지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는 위스키죠. 산토리 위스키 가쿠빙의 생산으로 일본은 위스키 자체 생산의 시대를 맞았습니다.

이후 산토리 위스키는 선토리 월드, 선토리 로얄 등 일본의 선토리 위스키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특히 일본의 위스키를 대표하는 <히비키(響)>은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는 제품입니다. 이 후 산토리사는 포도주 생산에도 주력하여 야마나시(山梨)현의 등미(登美) 언덕에서 포도를 길러 제조되고 있죠.

산토리사는 문화사업으로도 명성이 자자한 회사입니다.

<위스키 한병을 팔 때마다 우리는 이 사회의 어디선가 벽돌 한 장을 쌓고 있습니다>
산토리의 슬로건입니다.
바로 그 슬로건으로 지은 것이 산토리 홀과 산토리 미술관입니다. 산토리 홀은 1969년 산토리사 창업 70주년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일본 음악계의 주요한 공연장 중의 하나입니다.산토리 미술관 역시 일본 고대 미술, 공예품, 회화, 도자기, 염색, 유리 그릇 등 약 2,000여점의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의 명소입니다.

산토리 미술관은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타다오가 설계한 것으로도 유명하죠.

이처럼 산토리는 상인으로서 부를 축척했을 때 그 부를 어떻게 사회에 환원해야 하는가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산토리사는 지금도 위스키 한병의 이익으로 또 다른 미술관의 벽돌 하나를 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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