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출어람 (靑出於藍)
보스톤코리아  2013-03-04, 16:59:40 
보스톤엔 눈이 왔다. 한국엔 둥근 달이 동편하늘에서 떠올랐다 했다. 대보름 날인데, 부럼을 깨고 씹으며 새해의 무병을 기원했을 것이다. 쥐불을 놓으며 악귀를 물리치고 만복을 빌었을지도 모른다. 헌데 이날은 새로운 한국 대통령이 취임하는 날이기도 했다. 보스톤은 하루 전날 밤이었는데, 취임식을 졸린 눈을 비비며 보고자 했던 건 무슨 심사였던가. 원인 遠因은 꼭 집어 낼 수 없다만, 새 대통령의 만수무강을 빈 것은 아니었다.

= 전직 한국대통령은 ‘박통’이었다. 새 대통령도 ‘박통’인데, 박대통령이라 하면 전임 박대통령이 먼저 떠오른다. 전임과 새 박대통령 사이의 세월은 사반세기를 훌쩍 넘어섰다. 그런데도 내게는 전임 박대통령의 인상이 더 깊다는 말이다. 하긴 오십대와 육십 초반 여늬 장년長年들 처럼, 나도 유년기와 청년 시절은 전직 박대통령의 예사롭지 않게 긴 재임기간과 같이 했다. 그러니 그럴 만도 할거라 스스로 고개만 주억인다. 아직 신임 박대통령에 익숙치 않아 그렇기도 하다만 말이다.

= 그가 말한 ‘한강의 기적’이란 말이 새삼스럽다. ‘다시한번 잘 살아 보세’가 우렁차다. 내게는 뜻도 모르던 혁명공약이 먼저 온다. 제일의 국시는 반공이라 했는데, 내 선배는 제일의 국시를 짜장면이라 했다 해서, 심하게 맞았단다. 경상도에서는 국수가 국시라더라. 라면이 아직 나오지 않았을 때인데, 어린 나이에 국시란 말은 짜장면보다 훨씬 어렵다. 유신이란 단어도 매우 어럽고 무거운 말일 것이며, 최루탄 냄새만 진동한다. 크지 않은 키에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라고 전임 박대통령이 말했고, 새 대통령의 연설에서 그의 아버지 목소리가 겹쳤다면 내가 너무 앞섰는가.

= 세종대왕이 우리 민족에게 더 없는 홍복임은 더 말해 무엇하랴. 지금 끌적이는 이 글도 한글인데야 무슨 말을 덧 붙이겠냐는 말이다. 하지만, 충녕대군을 자신의 후임으로 택한 이는 태종임금이다. 충녕대군이 선거를 통해 용상에 앉았을 리는 없을 것인데, 태종임금의 탁월한 선구안選球眼이 더없이 빛난다. 그렇다고 세종대왕의 찬란한 업적에 흠이 된다는 말은 아니다.
전임 박대통령은 이런 날이 올줄은 꿈에나 생각 했을까. 자신의 딸이 삼십여 년 후 새 박대통령이 될 줄을 짐작이나 했을 것인가 말이다. 그래서 그는 그의 딸을 대통령 감으로 훈련을 시켰던가? 허망한 내 공상이 한국 인터넷 속도 마냥 빠르다.

= 하지만 내가 아무 근거 없이 말할 수 있는 건, 새 박대통령은 중장년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그를 향한 애잔한 감정이 그를 키우지 않았나 싶다. 그의 어머니의 인상과 헤어 스타일이 비슷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의 대권을 향한 노력을 폄하하는 건 아닌데, 얇팍한 젊은 날의 향수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동시대감感과 공명共鳴 하며, 중장년中長年의 감성을 자극했는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세시봉도 중장년을 한곳으로 몰아 넣은 적이 있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다. 전임 박대통령보다 나은 박대통령이 되길 빈다. 태종임금과 세종임금의 시대적 임무가 같지 않았듯, 신구新舊 박대통령에게 부여된 ‘역사적 사명(?)’은 다를 것이다만 말이다. 태종의 선구안과 세종대왕의 현명함이 버무려져 진 것과 같은 증명할 수 없고, 확인할 수 없는 막연한 기대감이라 해도 좋다. 아니면, 어차피 이래도 욕먹고, 저래도 칭찬이 박薄한 자리인데, 오년후에 욕을 덜 먹고 대통령 관저를 떠나기를 빈다. 보스톤 코리아 편집자도 그런 걱정을 하긴 했다.

=태종임금의 이름이 무엇인가 물었다. ‘용의 눈물’이란 텔레비전 연속극이 한창일 적이다. ‘유동근’이라고 자신감 넘치는 대답이 돌아왔다. 틀리지 않은 답일 진대, 할 말을 이을 수는 없었다.


김화옥 (보스톤 코리아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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