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4회 홍하상의 일본상인 탐구
보스톤코리아  2013-07-22, 13:43:20 
교토에는 다섯 개의 요정 거리가 있다. 기온 고후(甲部) 거리, 기온동(東) 거리, 이야가와초, 혼토초, 가미시치켄(上七軒) 등이 그것이다.

기온고후(甲部)는 에도 초기인 1600년대 야사카 신사의 문전에서 영업을 하던 오차 가게들이 기생 거리로 변한 것이 시작이다. 그 후 기생 거리가 정부로부터 공인받으면서 약 500개의 요정이 번성하기 시작했다. 에도 말기인 1800년대 중기에는 거기서 근무하는 예기(게이샤), 무기(마이코:새끼기생), 창기(노래) 등 약 1000명 이상이 있었다고 한다.
 1950~60년대가 되면 이러한 기생집이 150개로 줄고 거기에서 근무하던 게이샤도 600명으로 줄어들게 된다. 근래에는 훨씬 더 줄어들어 기생이 100명 이하로 떨어졌으나 최근 다시 회복되어 약 7-80명 정도가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오늘날 기온 고후는 과거에 비해 많이 쇠퇴하기는 하였으나 지금도 여전히 일본 최고의 기생 거리로서 명성을 날리고 있다. 그 수많은 요정 중에서 최고는 단연 이치리키 다옥이다.

3백년 역사의 이치리키
이치키키는 1700년초기에 개업한 요정이다.
이 요정이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것은 1863년 이른바 메이지 유신의 중심인사들이 여기서 모여 도쿠가와 막부를 토벌하는 모의를 하면서부터이다.

당시 이 요정에는 당대의 지사들이 모여 막부 타도를 모의하곤 했었는데, 아보 이 요정의 9대 당주인 마쓰우라시로미기에몬이 그들과 뜻을 같이하는 존왕양이(尊王攘夷)파였기 때문이다. 존왕양이파란 말 그대로 하면 일본천왕을 숭상하고 서양오랑케를 무찌르는 파벌이라는 뜻이다. 당시 도쿠가와 막부는 1854년 미국의 페리제독에게 일본이 지금까지의 쇄국정책을 버리고 문호를 개방한다는 <일미수호통상조약>에 서명했다. 이어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에도 문호를 개방하게 된다. 이후 일본에는 서양의 관리나 장사꾼들이 물밀 듯이 밀려들어왔고,그들은 일본에서 각종 사업을 벌이게 된다.

메이지 유신의 지사들은 이러한 도쿠가와 막부의 정책에 반대,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고 지금까지 천왕어소(궁)에서 식물인간처럼 지내던 천왕에게 실권을 주자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대개 하급사무라이들이었으나 그중에는 이미 서양의 문물을 접해본 경험이 있는 인사들도 있었다.

결국 이들은 1868년 사실상 쿠데타인 메이지 유신을 일으켜 도쿠가와 막부의 마지막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1837-1913)를 끌어내리고 메이지 천왕을 새 시대의 실권자로 추대, 새 시대를 열었다. 이후 이 요정에 출입하던 인사들은 거의 전부 메이지 정부의 고관대작들이 된다. 

이처럼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이 모이던 요정이었던 만큼 그 자존심은 하늘을 찔렀다.
이치리키의 9대 당주는 그들에게 새 시대를 맞아 근대식 아동교육의 필요성을 주장, 일본최초의 초등학교가 그의 손에 의해서 설립하는 한편,이치리키도 고관대작들의 출입으로 문전성시, 전성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이처럼 전통있는 요정이므로 이 요정은 메이지 유신이후 1백30년이 지난 1990년대초반까지 일본 정재계의 실력자들이 자주 찾았다.

본래 이 요정에서는 손님이 손님인만큼 요리 값과 공연비, 화대 등 그날의 유흥비를 모두 요정에서 손님대신 치루고 나중에 손님이 지불하는 시스템을 하고 있다.

1백년 이상 이어온 전통이다.
그날 유흥을 대접하는 사람은 손님이 보는 앞에서 계산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날의 술값은 1-2개월 후 우편으로 통지 되고 그때 접대비를 계산한다. 이 시스템은 손님과 업소간의 신용을 담보로 한다. 따라서 이치리키의 손님이 되려면 재력은 물론 신용이라는 자격이 필요했다.

실제로 이치리키는 철저한 멤버쉽(회원제)으로 운영됐었다. 회원이 되려면 회원 중 최소한 한사람의 추천이 필요하고, 회원의 자격도 대학에서는 총장급, 대기업은 사장급 이상, 공무원은 장차관급 이상, 정치가는 3선 국회의원 이상, 예술가는 노벨상 수상자 등이었다. 실제로 과거 일본의 총리대신치고 이 요정에 안와본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은 일본의 거품경제가 깨지면서 바뀌게 된다. 우선 손님에 대한 문호의 개방이다.

과거에 고관대작이나 유명인 등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었던 이 요정은 이제는 일반인들게도 대문이 열렸다. 여전히 누군가의 소개가 있어야 출입이 가능한 것은 유지하고 있지만, 과거처럼 높은 신분의 고객만이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가격도 과거 1인당 30만엔 수준이었던 것이 지금은 10만엔선으로 대폭 낮추어졌다. 바뀐 것은 가격 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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