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과 규장각 도서의 수난
보스톤코리아  2013-08-19, 13:35:04 
영도섬 부둣가에는 미군부대에서 내오는 짠빵(먹다 남은 음식)을 받아서 국밥(일명 꿀꿀이 죽)을 끓여 파는 장사치가 있었다. 간혹 담배 꽁추나 파리가 빠져 있는 돼지죽 같은 국밥을,  기갈이 감식이라고, 더러운 줄도 모르고 하루를 살기 위해 그대로 훌훌 마시고는 영도다리를 단숨에 뛰어 넘어 부산역 관장으로 달려 갔다. 그때는 슬픈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

우리가 일하는 곳은 아가사끼(적기)에 있는 미군 192 병기대대가 있는 곳이었다. 아가사끼는 일본식 명칭으로 일제때에 일본 해군의 공착장이었던 것 같다. 아가사끼까지 가는데는 초량을 지나서 서면을 거쳐가야 하기에 트럭으로 30분이상을 달려가야 했다. 노무자들은 아침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일을 끝내고 저녁에 돌아 올 때는 차에 올라 타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일제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미군부대의 한국 노무자들은 대개가 피난민이었다. 이북에 가족을 남겨 두거나 혹은 피난길에 서로 헤어져서 홀로 남하한 사람도 많았다. 그 보다도 어려웠던 것은 종착지인 부산에서의 피난생활이었다. 그것은 외롭다기보다 오히려 가련하고 비참한 생활이었다. 그래서인지 노래가 왜 그리도 슬펐는지 “아~ 으악새 슬피우니”,“어머니의 손을 놓고” 잘 모르지만 이 모두가 그때에 유행된 노래가 아니었는가 생각된다.

우리가 하는 일은 아주 단순한 일이 었다. 전선에서 실어오는 탄피를 받아서 쌓아 놓는 일이 었다. 마침 서울대 영문과 학생이 나와 같이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사실 그 학생이나 나나 영어가 능통해서 미군부대에서 일한 것이 아니다. 미군 부대에서 일하게 되면 영어를 배울 수 있고 또 미국에 유학 갈 기회가 있을 것 같아 모험을 해 본 것이다. 그런데 미군병사는 우리를 작업장에 데리고 가서 일을 시켜 놓고는 어디로 가서 종일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영어를 배울 기회도 없었다.

얼마 후 나는 군용트럭을 수리하는 가라지로 보내졌다. 자동차 수리공의 조수로 일을 도우라는 것이다.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데 자동차 수리에 사용되는 물품과 툴의 이름을 알 수가 있었겠는가. 갓뎀 소리를 연방 들어가며 그해 11월 까지는 힘들게 일했다. 그런데 대학에서 대학강의가  시작되니 곧 도서관 사무실로 나오라는 통지를 받았다. 나는 이제 살았다고 미군부대에서 하던 일을 집어 치우고 부산 구덕산 아래에 있는 도서관을 찾아 갔다. 정부가 전쟁중이라도 국가의 장래발전을 위하여 교육을 멈출 수 없다고 각급학교에 교육을 지시하였다는  것이다. 그렇지않아도 그 해 여름에 전시연합대학이 시작된다고 하는 말을 들었고 또 이호규가 와서 전시연합대학의 일로 광주에 출장간다고 알려 주기에 조만간 대학이 다시 시작 될 것이라고 짐작은 했었다.



백린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 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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