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5
보스톤코리아  2013-09-23, 15:48:44 
기원전후 1,2세기 동안 한반도를 포함한 아시아지역에서는 민족의 대이동이 있었다. 그리고 수 많은 민족들이 부족국가나 고대국가를 형성하였다. 신라를 비롯한 고구려, 백제 등 삼국이 한반도에서 패자가 되면서 한반도를 지배하였다.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를 보면 “국선화랑國仙花郞은 진흥대왕이 고구려의 선비제도를 모방한 것으로 선비를 신두수 단壇앞의 경기에서 뽑아 학문을 힘쓰고 수박, 격검, 사예, 기마, 택견, 깨끔질, 씨름 등 여러가지 기예를 익히고 난시에는 전장에 나아가 죽음을 영광으로 알아서 공익을 위해 한몸을 희생하는 것이 선비와 같으니, 국선이라 함은 고구려의 선인과 구별하기 위해 국國자를 더하게 지은 이름이고 화랑이라 함은 고구려의 선비가 조백早帛을 입어 조의라 일컫는 것이니 또한 조의와 구별한 이름이다.”라고 적혀있다. 

화랑의 설치 내력이 화랑세기와는 판이하지만 중요한 점은 숭무적 기풍이 많은 고구려에도 신라의 화랑과 비슷한 조직이 있었음이다. 신라의 화랑도花郞道는 신라가 형성된 후 약 5세기를 거치면서 화랑이라는 조직적인 단체을 수련시킨 무술이다. 물론 그 전에도 비슷한 형태의 조직이나 수련의 방법이 있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성문화된 사료가 없기 때문에 근거가 희박하다. 

하지만 아주 먼 후일에 쓴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 보면 상고사회에서는 화랑花郞과 여랑女郞이 있어 나라의 기둥역할을 하였다고 하며 이들을 국수國粹라고 하였으며 국수가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하였다. 그들은 특수한 옷을 입고 환웅의 신상에 경배를 했고 살생유택의 계율등 후일 원광이 화랑들에게 준 세속오계와 같은 계율을 따르며 생활하였다고 하였다. 여자는 여랑 또는 원화, 남자는 화랑 또는 천왕랑天王郞이라고 하였으며 임금으로 부터 까마귀 깃털이 달린 모자를 하사받았다. 그것을 쓰는데는 의식이 있었으며 큰 나무를 모시어 환웅의 신상이라 하고 경배하였다.7)  

그리고 어떤 형태의 조직, 특히 공방의 격술은 어느날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닌것은 자명하다. 또한 그들이 따르며 지키고 훈련한 세속오계 역시 어느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그 이전 환국과 신시 그리고 단국시대 부터 있어 왔다고 봄이 타당하다. 즉 화랑에서 보듯 수 많은 훌륭한 장수와 용감한 병사들을 배출하기엔 체계적인 조직의 활성화와 수련의 지속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랑의 혼과 얼은 세계사에 보기드문 천년의 왕조를 지탱하는 데도 많은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다. 비록 신라의 천년왕조는 포석정에 흐르던 술잔과 함께 사라졌지만, 화랑도의 가치, 그 무술의 본질은 국선, 풍월등의 이름으로 고려시대에도 계속 남아서 왕조를 지탱해 온 무인들은 물론 많은 백성들도 수련하였다. 그리고 천년이 더 지난 지금은 천부경의 예언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들의 후예들이 전세계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가 우렁찬 태권도의 기합氣合소리로 세계의 무도계를 지배하고 있다. 

신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게 전해지는 사료이지만 고구려인의 숭무적인 기상은 당시의 많은 고분(동수묘,삼실총,각저총,무용총등)의 벽화를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고분의 벽화는 고인들의 생전 생활환경을 재현하려는 의도에서 그려지기 때문에 벽화속의 겨루기 자세는 당시에 수박이나 택견이 지배자의 삶에 상당한 부분을 차지했다고 본다. 나라가 다르다고 반드시 무술의 형태나 종류가 다랐다고 볼 수는 없다. 같은 조상으로 뿌리를 같이 한 삼국은 물론 부여 그리고 훗날의 발해가 같은 무술을 연마하면서 변형되게 전수되었을 수도 있고, 반대로 다른 형태의 무술을 가지고 서로 교류를 하였거나 공식적인 교류는 없었을지라도 지역간에 자연적으로 빈번한 교류가 있었으리라 믿는다. 한반도 뿐만아니라 중국 대륙의 각기 다른 무술들과도 교류가 있었음이 확실하다. 

신채호는 ‘조선상고사’ 에서 우리나라의 태껸이 중국으로 가서 권법이 되었고 일본으로 건너가서 가라데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의 사료나 다른 문헌들로 보았을 때 설득력이 부족하며 우리민족 고유무술의 우월성과 자부심의 표현이 아닌가 보여진다. 이 벽화로만 전해지는 무용총의 겨루기 자세는 일명 수박희手搏戱라고 부른다. 하지만 반드시 무술의 동작이라고 단정하기가 쉽지 않다. 무술의 동작 표현은 많은 시간적과 공간적인 제한을 받기 때문에 단순히 한 장면의 벽화로서는 여러가지 해석이 나올 수도 있다. 

즉 일격필살을 할 수 있는 무술 특성의 동작인지 어떤 예술적 형태의 유희의 동작인지 명확하게 분간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아마 무술과 놀이의 결합명인 수박희라고 명명했다고 본다. 또한 문화라는 것은 자연의 현상과 시대적 요구에 따라 변하며 외래의 여타 문화도 섭취하고 그들과도 융화되면서 그 어떤 고유문화를 창달하기 때문이다. 벽화의 경우 먼저 회화繪畵의 관점에서 봐야한다. 회화 역시 고유의 스타일도 있지만 타국이나 타지역의 영향을 받고 서로 교류하면서 우리고유 스타일의 그림이 그려진다. 또 고분벽화라는 문화가 서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도입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래서 그런지 삼실총의 벽화(역사도力士圖)는 서역풍의 복장이 있고, 각저총의 왼쪽 인물은 서양인을 닮은 메부리코로 그려져 있다.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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