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7
보스톤코리아  2013-10-07, 11:53:34 
무예를 관장하는 자를 조의라 하였으니 바른 행동을 거듭하여 규율을 만들고 공동을 위하여 몸을 바친다. 일찍히 무리들에게 말하기를 <신시이화神市理化의 세상은 백성들의 지혜가 열림에 따라서 날로 지극한 다스림에 이르게 되었다. 이에 만세에 걸쳐서 바꿀 수 없는 표준이 되는 이유가 된다. 때문에 참전에 계가 있으니 신의 계시에 따라 무리를 교화하고, 한맹寒盟(동맹)에 율律이 있으니 하늘을 대신하여 공功을 행한다. 모두가 스스로 마음을 써서 힘을 모아 뒤에 공이 이루어 지기를 바란다.>라고 하였다. 조의선인은 모두 선택되었으니 국인國人이 그 선출됨을 긍지로 여기는 바였다.” 라고 기록 되어 있다.

9) ‘바보’ 온달은 3월에 개최된 사냥대회에서 우승하여 선인이 되었다. 
10)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이 선배(선비)제도가 일본으로 전래되어 사무라이가 되었다고 한다. 
11) 이 맥(李 陌, 1455 – 1528, 본관은 고성固城이며 호는 일십당 자는 정부井夫이다. ‘단군세기’의 저자인 행촌杏村 이암의 5세손이다. 이암은 고려 공민왕 때 문하시중을 지냈다. 그리고 이맥은 조선 세종때 좌의정을 지낸 이원의 손자이다. 그는 20세에(1474년)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학문에만 힘쓰다가 1498년(연산군5년, 44세)에 식년과 문과에 급제하였다. 사헌부 장령때인 1504년 장녹수가 연산군의 은총을 기화로 호화주택을 짓고 축재에 광분함에 수차례 탄핵하다가 연산군의 미움을 받아 외방에 유배되었다. 중종반정 후 다시 관계로 돌아 왔으며 성품이 매우 강직하였고 매사에 공정하였다. 

‘태백일사’는 삼신오제본기부터 고려국본기 까지 우리나라의 고대사 전체를 서술한 사서인데 이암이 저술한 단군조선 부분만 빠져있다. 그래서 혹시 가문의 유훈같은 것이 있어서 후손인 이맥이 우리나라의 역사서를 완성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1911년 ‘한단고기’가 계연수에 의해서 편찬되었을 때 그 책의 감수를 맡았고 당시 ‘태백일사’의 소장자였던 사람도 고성이씨 해학 이기 인 것을 보면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민족적 소명, 즉 잃어버린 우리의 역사를 후손에게 반드시 알려야 한다는 지대한 사명이 있었다고 보여진다. 

그 당시 배경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예종실록(예종 기축 9월 – 1469년9월) 에 보면 “상기 고대 서적을 집안에 간직하고 있는 자로서 서울에 있는 자는 시월 그믐까지 승정원에 바치고, 바깥 지방으로서 도道에 가까이 있는 자는 11월 그믐까지, 그리고 멀리 있는 자는 12월 그믐까지 살고 있는 고을에 바치게 하라. 바친자는 두 계급을 올려 주고 바치지 않는 자는 다른 사람을 시켜 고발하게 할 것이다. 고발한 자는 위의 조항에 의거해 상을 주고, 숨긴 자는 참형에 처할 것이니 속히 안팎에 알리도록 하라.”는 기록이 있다. 소지하는 것 만으로도 참형에 처해지는데 그런 책을 저술한다는 것은 강심장을 초월하여 목숨을 담보로 한 민족적 신념과 의절의 정신으로만 가능하다.(참고: 디지털 한국학 – 역대 인물 사전, 고성이씨)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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