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과 규장각 도서의 수난
보스톤코리아  2013-10-07, 12:01:05 
도서관이 미군으로부터 명도가 되어 3년여만에 들어가게되니 감회가 깊었다. 그런데 서고에는 책이 한권도 남아 있지 않고 60만권이나 되는 도서가 열람실과  사무실 그리고 복도에 마구 버려져 있는 것이다.  

그 호화스러운 열람대와 가죽의자는 모두 패서 보일러의 불소시개로 했는지 간데가 없다.  일부 도서는 문리과대학의 지하실(보일러실) 구석에 잔뜩 쌓여 있었다.  이들 도서는 도서관의 동부연구실에 비치해 놓았던 책으로  미군이 연구실을 사용하기 위해서 거기에 가져다 쌓아놓은 것이리라. 

서고의 입구에는 큰 마대자루에 책을 집어 넣고 포장한 다음 “ 평양물보행” 이라는  꼬리표를 달아놓은 것이 여러개가  있었다. 아마도 1.4후퇴후 북한군이 다시 들어와 서울대 도서관의 중요도서를 평양으로 다 가져 가려다가 시간이  촉박하고 운송수단이 탐탁치가 않아 그대로 내팽개치고 간 것같다.   

서고 지하실의 바닥은 물에 흥건히 젖어 있었고 책은 가져가려고 포장하던 새끼와 마대가 너저분하게 깔려 있었다.  내 자랑같아 이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규장각도서의 보존을 말하는 글에서 “공산군과 미군의 점령시기를 겪고도 서고에 남겨둔 규장각 도서는 변동이 없이 잘 보존되었다.” 고 하였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당시의 사정을 모르면 말을 하지 말아야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다 아는체하여 혼란스럽게 하였다.

당시 도서관의 상태는 참으로 참담했다. 일반도서는 도서관과 교내사방에 흩어져 있었고 규장각도서14만권은 신문열람실에 팽개쳐 있었으니 말이다. “서고는 텅비어 있고 난데없이 헛청같은 창고(신문열람실) 속에 문제의 규장각도서를 몇백석 노적가리처럼 쌓여 올려저 있었다.    ---  고서 한권 한권이 마치 돌맹이 팽개치듯이 문전에서 대각선 저쪽까지--- 쌓이고 쌓인것이 천정까지 닿아있으니 말이다. 백린사서가 석탄광부가 무색할 정도로 검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한권한권 빼내고 있었다.”  이 말은 환도 후에 서울대학교 도서관에와서 당시의 사정을 직접 목격한 연세대학교 도서관장 민영규 교수의 말이다. 규장각도서가 왜 그같은 상태로 팽개쳐 있었는지에 대하여는 뒤에서 <이조실록 적상산본> 의 행방을 말할 때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자.

10월초에 어느 날 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최규남 총장님이 아침 일찍이 도서관에 오셨다. 정광현 관장님의 안내를 받아 책으로 온통 쌓여있는 도서관을 둘러보시고 난 다음 정관장님께 도서관을 언제쯤 열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다. 그러자 호기현 사서장이 나서서 “ 2, 3년은 걸려야 하겠읍니다” 라고 대답했다. 총장님이 그러면 그때까지 대학강의를 하지 말자는 것이냐고 화를 내셨다.  내가 옆에 있다가 “일할 수 있는 인부 10명만 주시면 3개월 내에 정리해 놓을 수 있겠습니다” 라고 했다.  그러자 정관장님이 노발대발 하시면서 총장 앞에서당치도 않은 말을 함부로 한다 하면서 이상준 서무과장께 백린의 사표를 받아 당장 처리하라고 하셨다.

   그러자 이상준 서무과장이 말하기를 “이왕 못할 바에야 할 수 있다는 사람에게 한번 시켜보고 난 다음에 사표를 받으면 되지 않겠읍니까?”하고 말씀드려 어려운 장면을 넘기게 하였다. 나는 당장 쫓겨나는 일은 우선 면하게 되었다. 총장님은 아무 말씀없이 본부로 돌아가셨다.  도대체 내 말에 동의하는 분은 한사람도 없었다.  

내가 왜 그렇게 총장 앞에 당돌하게 나서서 함부로 말했는지 나 자신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상관인 사서장을 모독한 처사이었으니 용서가 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기분이 아주 착잡했다.  그 후로 도서관장이하 모든 직원이 나를 멀리하려는 것 같이 보였다. 사실 호기현사서장도 근거 없는 말을 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책 한권을 새로 구입하여 분류하고 목록을 작성한 다음 청구번호를 주어 서가에 배열하는데는 40분의 시간을 요하게되는 것이 공식이다. 그러니 60만권의 도서를 정리해서 이용케하려면 10년도 더 걸려야 한다. 

그러나 문제의 도서들은 이미 다 분류되어 목록작성을 필한 것임으로 주어진 청구번호대로 서가에 배열만 해놓으면 되는 것이다.  나는 6.25전 서양서목록계에서 1년반 동안 천여권의 도서를 분류하고 목록을 작성한 경험이 있고 또 부산 피난당시 서울본관에서 가져간 2만여권의 도서를 서가에 배열해 놓은 경험이 있어서 3개월이면 정리하여 열람시킬수 있게 정리해 놓겠다고 말한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백린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 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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