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10
보스톤코리아  2013-10-28, 12:03:04 
왕건의 칼과 왕소王昭의 붓 - 고려시대는 우리의 무술이 전성기를 이룬 시대이다. 먼저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16) 를 참조하여 고려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자. 9세기 말경 신라 왕실에서는 왕위쟁탈전이 자주 일어났다. 결국 왕실이 안정을 잃고 통치권이 약해지면서 지방의 호족들의 세력이 발호하였다. 

그 중에서 특히 견훤과 궁예는 다른 호족들을 규합하면서 키운 세력으로 견훤은 백제(후대인들이 온조가 세운 백제와 구별하기 위하여 후백제라고 칭한다.)를, 궁예는 고려(이 역시 주몽이 세운 고구려와 구별하기 위하여 후세들이 후고구려고 한다. 고구려는 장수왕 이후 고려라 칭했으며 왕건이 세운 나라도 고려이기에 세나라의 국명이 모두 고려이다.)를 건국하였다. 

그리고, 그 후 궁예의 실정으로 세력의 균형추가 무너진 후삼국시대에서 송악의 호족 왕건이 타 지방 호족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후백제를 복속시키고, 신라 경순왕의 귀순을 받아드리면서 936년에 고려를 건국하고 왕좌에 올랐다. 혼란기의 정권은 조직적이고 강성한 무력武力을 가진 왕건이 각 지방에서 사병私兵들을 소유한 토호들의 지원으로 한반도판 전국시대를 마감하였다. 

그래서 왕건에게는 지방의 호장들이 딸을 바쳐 왕비로 삼게 했고, 또한 왕건 역시 그 호족들을 경계하기 위하여 호장들의 딸을 후비로 삼으며 그들의 세력을 견제하였다. 왕건은 총29명의 부인들을 두었으며 그들 거의 모두가 혼인동맹 내지는 정략결혼이었다. 고려 초기는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와 발해 등의 연방정부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특히 발해는 926년에 요나라(거란)의 침략으로 멸망하면서 왕족을 비롯한 많은 유민들이 대거 고려에 유입하였다. 결과적으로 실질적인 한민족의 대통일 국가가 건국되었다. 건국당시 왕건은 각 지방에서 세력을 떨치던 호족들에게 권력과 영토를 인정하고 충성을 바치게 하여 신생 왕조를 잘 이끌어 나가려고 하였다. 물론 왕건의 세력이 가장 강했지만 만일 지방에서 다수의 세력들이 연합하여 동시에 봉기한다면 판세는 예측할 수 없었다. 이 왕건의 유화정책으로 고려왕조는 기반을 다져갔다. 하지만 29명의 부인들에게서 태어난 자식들의 정쟁등으로 왕조 초기부터 왕궁에는 피비람을 몰고 왔다. 

나라를 무사들의 칼자루만이 아니라 문치文治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문예와 유교 경전을 통한 시험으로 문반관리를 체계적으로 선발하기 위하여 광종(왕소, 고려 제4대 왕, 왕건의 넷째 아들)때 과거제도를 도입하였다. 이 과거제도는 무신들이 주류였던 개국공신들의 자제들을 우선 등용하던 관례를 깨면서 권력의 추가 새로운 세력으로 기울면서 문치주의의 전환을 예고하였다. 

즉 개국시의 무신들이 가졌던 세력이 문신으로 이동되고 공신과 호족들이 제거 되면서 왕권이 강화되었다. 그 때 부터 구성된 지도부의 양반兩班 체제는 사회적으로 신분과 계급을 확고부동하게 갈라 놓았으며 실질적으로 구한말 갑오경장 때 까지 ‘개천에서는 용’이 태어 날 수 없도록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다. 고려의 과거제도는 문반들의 등용문이었으며 무반들은 그 신분이 세습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일어 나는 현상은 세습 받은 무반들은 제구실을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과거제도가 확고히 뿌리를 내리면서 문반의 세력이 확장되고 강해지면서 문무반 사이에서 균형과 견제가 무너져 갔다. 결과적으로 모든 권력이 문반 쪽으로 기울면서 무반들 즉 그들을 받들고 있는 무사들은 점점 천대를 받으며 때로는 멸시를 당하기도 했다. 

결국 이 ‘문벌귀족’이라 불리우던 문반들의 교만과 방자한 언행은 무신들이 난을 일으켜 정권을 잡는 빌미를 제공하였다. ‘정중부의 난’이라고도 불리는 이 무신의 난은 잠시 후에  살펴보자. 지방 호족들의 세력이 약해짐은 왕권이 강화되고 중앙집권적 체제가 확립됨을 뜻한다. 그리고 과거를 통하여 등용된 문신들과 외척 등이 중심이 된 중앙의 새로운 지배층이 형성되었다. 이들이 문벌귀족이며, 그 대표적인 귀족중의 한 명이 이자겸이다.17) 

16) 고려사절요는 김종서 등이1452년에 35권으로 방대한 ‘고려사’를 요약한 것이다. 하지만 고려사에 없는 내용도 많이 있다. 완질은 일본(나고야, 호사문고)에 있다(물론 약탈해 간 것이다). 규장각에 있는 사서는 11책이 낙질돤 것이다. 1968년에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이재호 등이 한 국역판 및 다수의 국역판이 있다. 고려사는 54년간(1392 – 1451년)에 걸쳐 정도전 등이 시작하여 김종서, 정인지 등이 완성한 139권의 고려역사의 결정판이다.

17) 이자겸李資謙(? – 1126) 이름의 뜻과는 반대로 축재를 많이하여 재산이 왕보다도 많았다고 한다. 재물에만 욕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권력에도 눈이 멀어 예종과 인종의 장인인 동시에 인종의 외조부로서 누리는 ‘세도’(이 말은 조선 정조 초 홍국영이 짧은 기간 권력을 남용하면서 생겨난 말로 고려 인종 때는 없었다.)도 모자라 왕좌를 넘보기도 했다. 그 결과 전라남도 영광군으로 유배되었다. 거기서 기거할 당시 법성포 앞바다에서 잘 잡히는 조기맛에 반해 그걸 즐겨 먹었다. 또한  그 조기를 말려서 왕에게 진상하면서도 ‘굴비屈非, 뜻을 굽히지 않겠다’ 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영광굴비’의 어원이 되었다. 연평도 해역에서 나는 조기와 같은 생선이지만 그 후로는 다른 종류로 인식되어 왔다.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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