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11
보스톤코리아  2013-11-11, 13:20:58 
14세기 후반까지 원의 지배하에 있던 고려는 공민왕때 원의 세력 약화를 기회로 반원운동을 전개하면서 권문세족을 척결하였다. 하지만 공민왕이 살해된 후 이인임 일파의 권문세족들이 재등장하면서 신진사대부들을 억압하였다. 

최영은 권문세가 출신이지만 청렴하고 강직하였기에 신흥세력인 이성계의 합세로 이인임 일파를 제거하였다. 이 당시 조정에서 대립하고 있던 반원파가 친원파를 제거하면서 최영과 이성계를 중심으로 한 반원파가 득세하였다. 그리고 급진적 개혁파인 정도전, 조준 등이 온건개혁파(이색, 정몽주 등)를 제거하면서 이성계를 왕으로 옹립하는 역성혁명을 주도하였다. 그리고 고려는 역사속으로 살아졌다. 이 때 까지 우리 민족의 새로운 왕조는 백성의 이합집산이나 영토의 변화가 있었지만 조선왕조의 창립은 영토와 백성의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왕조와 왕실의 교체만 있었다. 

이상이 고려사절요를 참고하여 고려시대를 한 눈에 대강 훑어 보았다. 어느 시대나 거의 마찬가지 겠지만 특히 고려시대에는 내외란內外亂이 많았다. 그리고 특히 내란에는 무사들로 집단을 이룬 사병私兵들이 동원되었다. 나라를 지키는 병사들도 기마술, 창술, 검술, 궁술 등 일반 무술의 형태와 크게 다르지 아니하였다. 하지만 역사서 속에는 “의종이 수박희를 즐겼다.” 또는 “이의민이 수박에 능했다.” 라든가 “인종이 이자겸의 난을 겪은 후 무사들이 싫어서 무학재武學齋를19) 폐지하였다.” 라고 무술에 관한 사료들이 단편적으로 여기 저기에 실려 있다. 

구체적인 문헌이나 체계적인 교본이 전하지 않는 이유로는 그것이 특급 군사기밀이었기에 일반 백성에게는 물론 담당자외의 관리들에게는 접근이 불가했었을 가능성이 많으며 다른 사료들과 함께 소실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를 사는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제한되거나 전무한 군사정보를 생각해 보면 좀더 쉽게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그리고 무술과 당시의 병술은 실제로 일대일의 전수가 그 효과를 더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병술부분은 제외하고 무술부분이 많이 남아 전하는 의종시대와 무신의 난을 중심으로 수박도를 좀더 고증해 본다.

의종毅宗은 고려 제18대왕으로 1146 – 1170년 까지 재위하였다. 내시와 환관들과 함께 오락과 유희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았고, 측근들의 말에만 귀를 기우리며 향락의 늪에서 헤메다가 내시 김돈중(김부식의 아들)이 무신들을 멸시하는 사건으로 인하여 무신들이 난을 일으켰으며 그 후 100년 동안이나 계속되는 무신정권시대의 서막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그는 무신의 난으로 축출된 뒤 이의방의 수하 이의민에 의하여 살해되었다. 

그는 정사를 돌보는데는 혼미한 왕이었지만 장점으로는 궁술에 능하였고 격구나 수박 등의 운동을 잘하였으며 경기나 운동에서 잘한 신하들에게는 후한 상을 내렸다. 고려시대 전반에 걸쳐 궁중에서 연무대회나 왕이 임석한 가운데 시합을 하기도 하였지만 특히 의종시대에는 더욱 성행하였다. 많은 무사들이 중앙정부 뿐만 아니라 지방의 호족세력들에 의해서도 길러 지고 있었다. 하지만 과거로 등용된 문반들이 문예文藝를 통한 문치의 기반이 잡혀지면서 무신들, 특히 그들을 떠받치는 무인들은 경시되어 갔다. 또한 이자겸의 난을 겪으면서 인종은 정책적으로 무학재를 폐지하였으며 무신들의 승진 제한으로 그들의 입지를 좁혔고, 문신인 김부식이 제압한 묘청의 난을 겪으면서 무신들의 지위가 더욱 격하되었고 무사들을 경시하는 분위기가 두드러졌다. 

‘경인庚寅의 난’ 이라고도 불리우는 정중부일파의 무신난은 그 외 많은 원인들이 있었지만 결정적인 원인의 불씨를 당긴 사건은 ‘보현원 사건’이다. 이 사건은 겉으로 보기에는 우발적으로 일어났지만, 실은 그 동안 쌓여온 무신들의 불만들이 계속되어 오다가 그 때 폭발하였다. 최초의 무신의 난으로 보는 ‘정중부의 난’에서 빼어 놓을 수 없는 의종과 보현원, 김돈중과 한뢰, 이의방과 이고의 등의 이야기를 고려사절요를 참고하여 풀어가 보자.

김돈중은 김부식의 아들이다. 1144년5월(인종22년)에 과거에 급제하였다. 26명의 급제자 중에서 그는 차석으로 합격하였는데 왕이 김부식을 위안하는 차원에서 수석으로 주게하여 그렇게 하였지만 많은 신하들로 부터 눈총을 받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아버지의 후광과 왕의 총애를 빌미로 교만하고 방자하였으며 안하무인격인 언행을 하였다. 어느 해 섣달 그믐날 밤, 대궐 뜰에서 귀신 쫓기 행사 때 김돈중은 왕의 호위장(경호책임자)인 정중부의 수염을 불사르는 못된 짓을 했다. 정중부는 당시 가장 아름다운 수염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정중부가 화가 나서 주먹으로 치고 욕을 했더니 김부식이 이 구타사건을 왕에게 고했다. 왕은 정중부를 결박하여 매질을 하려다가 도망가라고 하면서 풀어주어 불상사를 모면하였다.

19) 무학재는 무신 양성기관이며 강예재講藝齋라고도 한다.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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