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15
보스톤코리아  2013-12-09, 11:37:48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고려가 망한 이유가 타락한 불교의 영향이라고 믿은 신진사대부들이 숭유억불 정책을 펴면서 승려를 ‘중’으로 격하하여 천민으로 취급하였다. 중들은 소위 노비, 기생, 백정, 광대, 무당, 공장, 상여꾼과 함께 ‘팔천’의 하나로 천시를 받았다. 

하지만 ‘조선불교통사’의 저자인 이능화는 승려의 팔천설은 일본인 불교학자 다카하시 도오루(高橋亨, 1878 – 1967)가 쓴 ‘이조불교’에 나오는 설인데 이것은 “역사를 모르는 몰상식”이라고 통박하였다. 이능화에 의하면 조선시대 승려의 도성 출입은 17세기까지 자유롭다가 18세기 말에 전면 규제되었고 19세기에 들어 불교가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쇠락한 것은 사실이지만 말엽의 현상을 조선시대 전체에 투영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라고 했다. 

또한 한국고전번역 연구원인 손성필은 “팔천은 조선시대 어느 문헌에도 등장하지 않는 용어로 당시 승려층은 단일 신분층이 아니라 하층에서 상층에 이르기까지 여러 신분층이 포함된 복합적 특수계층이었다. 천인신분설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했다.22) 휴정 서산대사에게 선조가 내린 벼슬은 정2품(國一都 大禪師 禪敎都總攝 扶宗樹敎 普濟登階尊者 국일도 대선사 선교도총섭 부종수교 보제등계존자)를 비록하여 많은 승려들에게 역대왕들은 벼슬을 제수하였다.

세종실록(1419년, 세종 즉위년)에 보면 해연이라는 중이 수박희를 잘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6월20일에 세종이 거의 온 종일 한 일과를 보면 “노상왕이 모화루로 피서하니, 상왕과 임금이 나아가 문안하였다.

미리 장사壯士를 뽑아 모화루 아래에 수박희手搏戱를 시키고 관람하였는데, 해연海衍이라는 중이 힘이 세어 여러사람에 뛰어나니, 명하여 머리를 길러 환속還俗하게 하고 목면木綿1필을 하사하였다. 진무鎭撫 김윤수金允壽가 8인을 이기니, 또한 상을 주고 이에 잔치하니, 대군大君과 2품이상은 시연侍宴하고, 임금이 노상왕에 헌수獻壽하니, 상왕이 말하기를, <형제가 이와 같이 있으니, 주상은 다른 염려에 수고하지 말라.> 하고, 각각 차례로 술잔을 드려 극진히 즐겨하고, 날이 저문 뒤에 환궁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왕이 모화루로 가기 전에 수박희를 잘하는 장사들은 오래 전 부터 대기하여 연습을 했고, 승려 해인의 무예 실력이 대단했으며, 상을 받고 또한 환속의 성은이 베풀어 졌다. 즉 당시에 승려는 도성에 살았거나 출입을 할 수 있었으며 또 면천이 아닌 환속을 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김윤수의 무예 실력은 가히 필적할 상대가 없을 정도로 신출귀몰한 것 같다. 세종을 비롯하여 상왕과 노상왕 그리고 대군 등과 거의 모든 고관들이 다 나아가서 길고 긴 여름날 하루종일 수박희를 관람하고 찬치를 했으며 어두운 뒤에 환궁하였다. 이것으로 보면 당시에는 수박희가 병술뿐만이 아니라 왕들이 자주 즐겨 관람하는 대단히 격조가 높은 유희였음이 확실하다. 

이렇게 세종대의 치적은 정치, 경제, 학문, 문화, 과학뿐만 아니라 국방도 튼튼하여 영토를 확장하였고 무예는 궁중행사에서 항시 등장하는 문화예술이었으며 더불어 백성들도 많이 즐기고 수련하였다. 단지 아쉬움이 있다면 맏아들(문종)이 병약하여 일찍 죽었다. 그로 인하여 왕실과 조정은 조선왕조 오백년 동안 가장 비극 중의 하나인 정난의 길로 가게 되었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성군이라고 추앙받는 세종은 맏며느리를 셋이나 보아야 했다. 

첫째로 맞은 휘빈 김씨는 결혼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자(후에 문종)가 자신을 찾지 않자 ‘압승술’을 썼다. 압승술이란 남편이 좋아하는 여자의 신발 뒷굽을 태워 가루를 내어 술에 타서 마시게 하면 자신에게 돌아 온다는 민간의 미신적인 비방이다. 결국 그는 그 요망한 짓을 하다가 발각되어 폐비가 되었다. 

두번째의 순빈 봉씨는 휘빈의 폐비 후 간택되어 입궁하였다. 봉씨는 단종의 모후 현덕왕후(당시에는 세자의 후궁인 양원 권씨)가 임신을 하자 자신도 회임을 했다고 거짓말을 하였으며, 임신한 양원 권씨를 투기하면서 심한 매질를 하였기에 세자는 순빈을 싫어 했다. 나중에는 거짓 임신이 들통날까봐 유산하였다고 또 거짓말을 하였다. 그리고 1437년에 궁녀 소쌍과의 동성애 관계가 발각되었다. 그러니 세종과 소헌왕후의 노기는 대단하였고, 더욱 놀라운 건 사실여부를 문초할 때 조금도 부끄러움 없이 자기 소행이 당연한 듯 왕과 왕후 앞에서 소상하게 밝히면서 모두를 경악케했다. 그 결과 그는 폐출되어 친가로 돌아갔다. 친가의 부친 봉려가 자진을 할 것을 요구했지만 듣지 않자 그의 손에 교살되었다.23) 그리고 양원 권씨를 세번째로 맞이하여 단종을 출산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단종을 출산한 다음날 죽었다. 단종의 앞날의 검은 그림자는 과연 태어나면서 부터 어른거렸는가?! 

22) 서울 법련사에서 개최한 제102차 월례학술대회(2013년3월16일)
23) 김별아의 소설 ‘채홍’ (해냄출판사)은 비운의 생을 산 그녀, 순빈 봉씨의 일생을 정사正史와 다른 각도에서 다루었다. 채홍彩虹은 무지개란 뜻이다.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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