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28
보스톤코리아  2014-03-31, 13:32:52 
인조의 항복으로 병자호란이 끝나면서 수십만여 명의 조선의 아녀자들이 잡혀갔다가 돌아 왔다. 그 당시에 생긴 ‘환향녀’나 ‘호로자식’은 몇 백년이 흐른 지금도 우리사회에서 특정적인 의미로 통용되며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양대 호란으로 인하여 조선땅에는 수 많은 유린이 있었고 유교의 성리학 사상이 통치이념이었던 그 당시에 당했던 비통함은 필설로 다할 수 없는 일이 무수하다. 

연려실기술에 실려 있는 한 대목을 통하여 당시 사대부들의 자존심이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졌던 상황을 상상해 본다. “정묘호란 때(1627년1월17일) 후금의 군사들이 능한산성을 함락시켰다. 그러자 곽산군수 박유건과 정주목사 김진이 집안식구들과 함께 머리를 깎고 항복하면서 살려 달라고 애걸하였다. 적은 그들의 처첩을 간음하고 장막 속에 두었다가 행군을 할 때는 박유건과 김진에게 각각 그들의 처첩이 탄 말고삐를 잡게 했다. 박유건이 아내의 부정을 책망하자 처첩들은 남편의 불충을 꾸짖었다.” 이 얼마나 감당하기 어려운 참혹한 광경인가! 그 외 ‘강도몽유록’ 같은 작품은 강화도에서 죽은 15명의 양반가 여인들의 혼령이 한 자리에 모여 ‘찌질이’ 같은 남편들을 한탄하는 꿈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 시대의 사회상과 백성들의 정신을 대표하는 ‘박씨전’이나 ‘임경업전’ 같은 문학작품도 있다.

청에 잡혀간 우리 조상들은 민초들 뿐만 아니라 소현세자와 봉림대군(후에 효종, 인조는 청에 굴욕적인 항복을 하고 나서도 망해가는 명나라에 대한 사대주의 노선을 한층 더 강화하는 정책을 폈으며, 청의 문물을 가지고 돌아온 소현세자를 후궁 조소용의 이간질에 말려 독살하였다. 그리고 봉림대군이 왕위 오르면서 효종이 되었고, 김자점은 조소용 소생의 옹주를 손자 며느리로 맞으면서 격동의 정변을 예고하였다.) 그리고 청과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한 주전론자들인 홍익한, 오달제, 윤집 등과 그들의 수장 김상헌도 처음에는 버티다가 나중에 압송되었다. 44) 김상헌(1570 – 1652년)45)은 청의 심양에서 4년간 볼모생활을 할때 아주 희귀한 그림 한폭을 얻었다. 그리고 물론 그가 돌아올 때 가지고 왔다. 

이 그림을 본 김상헌은 깜짝 놀랐다. 이 그림은 명나라 황제 신종神宗의 인장이 찍힌 황제가 아끼던 궁중 소장품이었기 때문이다. ‘문희별자도文姬別子圖’라고 불리는 이 그림은 원나라의 유명한 화가 조맹부(1254 – 1322년)가 350여년 전에 그린 아주 귀한 작품이었다. ‘문희별자도’는 문자 그대로 문희가 아들과 헤어지는 것을 그린 그림으로 후한後漢 시대의 학자 채옹蔡邕(132 – 192년)의 여식으로 뛰어난 음악가이고 문학가인 채문희가 흉노에게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오는 내용을 그린 그림이다. 문희는 194 - 195년에 침입한 흉노족에게 끌려가 흉노의 좌현왕 부인이 되어 12년간 두 아들을 낳고 살았는데, 아버지 채옹에게 후사가 없는 것을 애석하게 여긴 조조曹操가 사신을 보내 금은보화로 속량을 하여 채옹에게 돌아오게 하였다. 꿈에만 그리던 아버지와 고향으로 돌아 오게 되었지만 두 아들과 헤어짐에 괴롭고 비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아들이 옷에 메달려 떨어지지 않으려 하고, 남편인 좌현왕도 기분 좋은 기색은 아니다.” 라는 기록이 성해응成海應(1760 – 1837)에 의한 그림의 평으로 전한다. 이 그림은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전하지 않는다. 우리 역사에 등장한 연유는 김상헌의 손자인 김수증이 당시 정국을 주도하던 노론의 영수 송시열에게 그림의 발문을 의뢰하면서 이 그림의 존재가 사대부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현재까지 역사속에 살아서 전한다. 현재 스미쓰(Smith) 대학교 미술관에 소장된 이 그림이 어떠한 경로를 거쳐서 그곳 까지 왔는지는 상세하지 않으나 조맹부의 전칭작(해당 작가가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작품)으로 전해지며, 김상헌이 가져온 그림도 전칭작으로 평가되었다. 현존하는 스미쓰대학의 작품과 우리나라의 기록을 대조해 보면 김상헌이 가져온 그림과 거의 동일하다. 하지만 동일 작품이란 근거는 희박하다. 다만 동일 그림이건 아니건 이 그림의 내용인 문희가 겪은 아픔과 조선의 환향녀들이 겪은 고통의 역사가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유사 이래로 수 많은 전쟁을 치루면서 그 때마다 ‘문희’도 탄생하였고, ‘환향녀’도 탄생하였다. 다만 천신만고 끝에 귀환한 그들이 순결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화냥년’으로 버리면서도 스스로 나라를 지키지 못한 ‘찌질이’ 사대부들의 모습이 곤혹스러울 뿐이다.

44) 김상헌은 항복 문서를 찢고 자결도 시도하였다. 그리고 안동의 학가산鶴駕山에 들어가 명과의 의리를 유지해야 된다는 상소를 올리고 두문불출하였다. 
45) 김상헌이 청나라로 잡혀가면서 남긴 유명한 시조 한 수;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만은/ 시절이 하 수상殊常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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