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꽃 그늘 아래서
보스톤코리아  2014-05-12, 12:10:15 
봄을 보기도 하고, 냄새를 맡기도 한다. 꽃을 읽기도 하고 듣기도 한다. 문설주에 귀대고 봄오는 소리듣듯, 꽃이 피고 지는것도 들린다는 말이다. 베르테르 편지를 읽는 게 롯데였던가. 오월에 사월의 노래를 듣고 편지를 읽는다. 흰목련 피는 소리를 듣는다. 올해는 봄을 너무 오래 기다렸다. 보스톤 봄이 자지러진다.

장롱 밑에 남겨져 있던 먼지 앉은 동전을 찾을 때 기쁨이라 해야 할까. 이사 가는 날이면, 항상 눈독을 들였다. 반드시 장롱 밑에는 동전이 몇개 있었으니 말이다. 지난 겨울동안 이화와 벚꽃과 진달래와 철쭉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잊었던건 아닌데,  갑작스런 떼봄이 기억을 일깨웠다. 장롱구석에 박혀 있던 베르테르의 편지를 찾아 냈고, 먼지 냄새와 뒤섞였던 목련의 향기가 되살아났던 거다. 비누냄새보다 은은하다. 목련의 자태와 향기에 강퍅한 마음이 흐물 풀어진다. 

보스톤엔 흰목련이 드물던가. 렉싱톤 배틀그린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나무 한그루가 서있다. 크지 않은 나무인데, 목련이다. 흰목련은 내눈에 쉽게 띄지 않았던 터. 지나치며 보는 순간, 입이 먼저 벌어졌다. 고개를 돌렸고, 눈을 뗄수 없었다. 덕분에 사고 날뻔했는데, 잎사귀가 없었으니 꽃은 나무가지에 그냥 매달려 있었다. 차라리 조화처럼 보였고 자태가 그윽하고 단아했다. 올해에도 목련이 피었다. 작년엔 이화梨花에 흠뻑 빠져 있었다. 
목월이 읊펐던 ‘사월의 노래’ 다. 김순애 작곡이라 했다. 보스톤에서는 ‘오월의 노래’라 고쳐야 할까보다. 올해 목련은 보스톤에선 오월에 만개했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박목월, 사월의 노래)

극히 맑은 건 차라리 차갑다. 하지만 목련은 맑다만, 오히려 가냘프고, 따습다. 시골 안방 아랫목 따뜻함과는 다른 따슨 냄새다. 목월이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으면, 난 수십년 후에 이제야 목련을 보고 가냘퍼 가슴 저민다. 목련은 흰목련이라야 한다. 내 고집이고 편견이다. 

이 문장은 내것이 아니다. 한달 전 신문에서 읽었다. 차라리 명랑하다만, 뜻이 깊어 그대로 옮긴다. 
‘곁가지 얘기 하나. 도량에서 겹겹이 붉은 꽃잎을 발견했다. 희한하다는 그 홍매다. 비구니 스님이 말간 얼굴로 지나갔다. 내가 물었다. “이 매화, 만첩홍매가 맞지요?” 스님의 답이 수줍다. “저는 꽃을 잊은 지 오래됐답니다.” (손철주, 중앙일보 4-5-2014)

스님께 결례가 아닐까 저어하다. 피는 홍매를 잊었어도, 지는 목련에서 스님이 기억을 되살릴지도 모른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으로 가져간 게 목련이라 했는데, 이 또한 뜻이 깊다. 그가 덧붙였다.  ‘이 목련은 아름다움을 뜻하고 또 봄마다 새로 피는 부활을 의미한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한 11:25)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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