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38
보스톤코리아  2014-06-16, 11:48:57 
조선의 제 19대 왕 숙종은 왕비를 셋이나 맞아 들였지만 적자가 한명도 없다. 20세에 죽은 첫 왕비 인경왕후 김씨는 공주 셋을 낳았지만 유아 때 모두 죽었다. 계비 인현왕후 김씨는 자식 없이 35세를 일기로 죽었고, 그 후 맞이한 인원왕후 김씨도 자식이 없이 70세까지 장수하였다. 그래서 숙종의 장남인 후궁 희빈 장씨의 소생이 20대 왕으로 오르니 그가 경종이다. 경종의 첫째 왕비 단의왕후 심씨는 자식 없이 경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죽었고, 그 후 맞이한 선의왕후 어씨 역시 자식이 없다. 

21대 왕 영조는 숙종의 차남으로 경종의 이복동생이며 후궁 숙빈 최씨의 자식이다. 영조 또한 정성왕후 서씨와 그가 죽은 후 맞이한 정순왕후 김씨 등 두 왕후에게서는 자식들이 전무하다. 두 아들이 모두 후궁으로 부터 태어났는데 장남은 후궁 정빈 이씨의 소생 효장세자(후에 진종으로 추숭)이며 10세의 나이로 요절하였고, 차남은 영빈 이씨의 소생인 장헌세자(사도세자, 후에 장조로 추숭)이다. 이 장헌세자가 ‘무예신보’를 엮었으며 영조의 손에 의하여 뒤주에 갇혀서 굶어 죽었다. 왕이 되지 못하고 죽은 사도세자는 아들과 후손들이 왕이 되는 관계로 후일 장조로 추존되었다. 

22대 왕인 정조는 사도세자의 차남으로 왕위에 올랐으며, 정비인 효의왕후와는 자식이 없고 후궁인 의빈 성씨의 소생인 문효세자는 5세에 요절하였고(홍역을 앓다 죽었지만 독살설이 유력하다), 후궁 수빈 박씨의 소생이 23대 왕 순조가 되었다. 순조는 순원왕후 김씨와의 사이에서 외아들 효명세자(후에 익종으로 추숭)를 얻었다. 하지만 효명세자는 22세의 나이로 죽으면서 그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니 그가 24대 왕 헌종이다. 그리고 헌종이 아무런 후사 없이 죽으면서 적자나 서자뿐만 없는 것이 아니고 왕족의 씨가 말라가고 있었다. 

25대 왕인 철종 이원범은 영조의 현손이다.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의 후손이다. 사도세자는 정비인 혜경궁 홍씨와 첫 아들 의소세자를 낳았는데 그는 2살때 요절하였고, 그 다음이 정조이다. 그리고 후궁 숙빈 임씨가 은언군과 은신군을 생산하였고, 후궁 경빈 박씨가 은전군을 낳았다. 사도세자가 철종의 증조부이며, 그의 맏아들 은언군이 철종의 할아버지, 그리고 은언군의 3남 전계군(전계대원군)이 철종의 아버지이며, 철종은 전계군의 3남이다. 

철종은 정비인 철인왕후와 7명의 후궁들을 두었지만, 숙의 범씨 소생의 영혜옹주 한 명만이 있다. 영혜옹주마저 박영효와 결혼한지 3개월만에 죽었다. 또 왕족이 점점 더 고갈이 되어 가고 있었다. 26대 왕인 고종은 혈통면으로 볼때는 인조의 9대손이다. 그러니까 선조의 11대손이며, 중종의 13대손으로 중종의 후궁 창빈 안씨와의 ‘서얼 왕족’이다. 이 정도면 그냥 전주 이씨 방계 왕족 정도인데 왕손들이 너무나 귀하다 보니 왕좌에 오르는 ‘용꿈’을 꾸었다. 고종의 법적 가계보는 조금 다르다. 그의 아버지는 흥선대원군이고 할아버지 남연군은 인평대군(인조의 셋째아들)의 6대손이지만 은신군의 아들로 양자 입적되었다. 

은신군은 사도세자(숙빈 임씨 소생)의 아들로 1769년 김귀주(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의 오라비)의 탄핵으로 제주도에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병사하였기에 후사가 없다. 그래서 남연군이 양자 입적되었으며 계보적으로 볼때 고종은 사도세자의 현손이다. 사도세자는 자신은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임을 당했지만 아들 정조와 증손자 철종 그리고 고손자 고종과 그의 아들 순종이 왕이 되었다. 조선의 마지막 27대 왕인 순종은 고종의 맏아들로 명성황후 민씨의 소생이며 두명의 부인(순명효황후가 죽은 후 순정효황후와 가례) 이 있었지만 자식들이 없다. 조선의 마지막 황후 순정효황후는 1910년 국권이 강탈 당할 때 옥새를 치마속에 넣고 친일파에 저항한 여장부이며 망국의 경험과 해방, 6.25까지 겪으며 살다가 1966년에 사망하였다.

무학대사의 풍수지리설에 의한 예언이 정확하듯 장자나 외아들이 계승한 왕좌는 46여년간 재위한 숙종을 제외하고는 변변히 그 자리를 지키지도 못하였다. 명종을 마지막으로 적자가 끊어 지면서 선조 부터는 서자의 혈통이 이어 받았으며 그나마도 적통이 아닌 서자가 훨씬 많았고 후기로 와서는 서자 뿐만 아니라 왕족의 씨가 말라가고 있었다. 사도세자의 후손들이 조선의 왕조를 이어가지 못하고 국권을 강탈당했지만 무학대사의 주장대로 궁궐을 동향으로 지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사도세자를 비롯한 차기 왕위를 보장 받은 수 많은 세자들이 불귀의 객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계속해서 사도세자가 엮은 ‘무예신보’의 기技를 살펴보자.

넷째로는 ‘왜검倭劍’이다. 왜검은 일반적인 일본도를 말한다. 왜검의 크기에는 크게 천유류, 류피류, 토유류, 운광류로 나뉘며 기법 자체가 모두 전진만으로 구성되어있다. 우리나라의 왜검은 군교軍校 김체건金體乾이 숙종때 일본으로 가서 검보劍譜를 얻어 그 기예를 배웠다. 검과 무예에 민첩하고 절묘하여 버금할 자가 없었다.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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