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담한설客談閑說: 밥에 대한 단상
보스톤코리아  2014-11-03, 15:45:21 
2014-07-18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귀에 익지 않는 한국말이 꽤 많아졌다.  ‘간지’나는 말이라 할텐가. 아니면 재치있는 말이라 할겐가. 하긴 말은 생겨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가, 한국어를 듣는 귀는 점점 얇아만 간다. 그렇다고 영어가 귀에 익숙해졌다는 말은 아니다. 여전히 한국어는 나와 내 아내의 모국어이며, 귀와 입에 편하다. 

  아직 이메일이 생기기 훨씬 전이다. 물론 카톡도 없었다. 인쇄된 종이메모를 받았다. 신입생 환영회를 학과 후 공원에서 연다는 내용이었다. 아내와 나는 혼란스러웠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글귀 하나에 괴로워 했던 거다. ‘Bring your own dishes.’   아내와 나는 배운대로 해석했다. ‘접시는 네것을 가져와라.’  아내가 물었다. “ 왜 접시만 갖고 오라는 거지. 포크와 수저 소리는 없잖아. 물컵도 갖고 가야 돼?” 내가 자신없이 대답했다.  “아마 그럴껄.” 아내는 종이 접시 몇 개를 물컵과 같이 챙겼다. 플라스틱 포크도 화장지에 곱게 쌌다. 저녁을 손으로 집어서 먹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록키산맥 산악지대 초가을 저녁은 이르다. 햇살은 쉽게 떨어졌다. 얇은 겉옷을 걸친 나와 아내는 당연히 추웠다. 우리 입술은 말려 들었고, 몸은 떨렸던 거다. 식탁 위에 음식들이 펼쳐져 있었다. 소주는 없었고, 짜장면이나 전골도 없었으며, 누구도 우리더러 노래를 부르라 시키지도 않았다. 크고 작은 플라스틱 음식용기들 모습만 생경했다. 이미 식은 내용물들은 우리 입맛을 당기지 못했던 터. 식탁 위에는 우리 저녁밥은 없었기에 더 춥고 배고팠다. 우린 우리가 먹을 저녁으로 빈 접시만 달랑 들고 갔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가 들고간 빈 접시와 포크도 사용하지 않았다. 우린 차가운 콜라를 한잔씩 얻어 마셨다. 우리 부부의 추운 저녁이었고, 배고픈 모임이었다. 디쉬와 프레이트의 차이를 어렵게 알게 된 날이다. 내 목을 타고 넘어가는 밥만이 내 밥이라는 걸 알았다.

‘네가 일용할 양식은 네가 가져와라.’

  그날 밤, 아내는 라면을 끓였다. 달걀도 풀었다. 맛은 꿀맛이었고, 안경에 김 서려가면서 훌훌 마셔댔다. 초가을밤의 충만한 야식이었던 거다. 찬밥은 말아 먹었던가?  아내가 라면발을 입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제 디쉬는 제가 알아서 챙겨야 한다.’  그리고 한마디 더 붙였다. “역시 라면은 김치랑 먹어야 해. 이제야 살것 같군.”

  이 문장은 내것이 아니다. 소설가 김훈의 것이다. 밥에 대해 이만큼 숙연케 하는 글을 아직 읽지 못했다. 허락없이 그대로 옮긴다. 

‘밥은 누구나 다 먹어야 하는 것이지만, 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밥만이 각자의 고픈 배를 채워줄 수가 있다. 밥은 개별적이면서도 보편적이다. 시위현장의 점심시간은 문득 고요하고 평화롭다.  황사바람 부는 거리에서 시위군중의 밥과 전경의 밥과 기자記者의 밥은 다르지 않았다. 그 거리에서, 밥의 개별성과 밥의 보편성은 같은 것이었다. 아마도 세상의 모든 밥이 그러할 것이다.’ (김훈, 밥에 대한 단상, 한겨레)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마태 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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