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죽도록 일하랴?
보스톤코리아  2014-12-08, 11:59:13 
  비와 눈이 섞였다. 비에 젖었으니 눈은 무거웠다. 엷지만 굳은 눈은 치우지 않아도 자연히 녹을게다. 하지만 성급한 마음에 삽을 들었다. 아이가 나왔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장갑을 끼고 나왔던 거다. 눈 치우는 일을 거들 눈치였다. 아이가 이젠 머리가 클만큼 컸다.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눈 치우는 일에 프로가 된 내게 든든한 조수가 생겼기 때문이다. 물기 먹은 눈도 더 이상 무겁지 않았다. 눈 피해는 없으셨는지?

  며칠 전, 한국일간지에 실린 책품평 기사다. 영국인이 본 한국인의 모습이다. 한국인은 뭐든 '죽도록' 한단다. 사랑도 죽도록. 일도 죽도록. 공부도 죽도록. 심지어 술을 마셔도 죽도록 마셔댄다는 게다. 노는 것도 죽도록 하는지 그건 모르겠다. 책 저자는 한국인의 모습을 제대로 본 듯 싶다. 꽤 오래전 프로바둑 기사 조치훈이 말했다. '목숨 걸고 둔다.'  치열하게 바둑에 임한다는 말일게다. 포항제철 박태준 회장은 ‘제철공장을 만들지 못하면, 영일만 바다에 빠져 죽겠다’고 했던가. 한국인은 뭐든 목숨까지 담보한다. 그저 즐기려고 하는 건 아마추어가 하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한국인은 모두 프로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한국 사업 상대들에게서 듣던 말이고 언약이다. 아닌게 아니라 참 열심히들 일한다. 그건 내가 옆에서 봐서 안다. ‘죽도록 일하겠습니다.’ 일이 주어지면 열과 성을 다해 일하겠다는 말이다. 뭐 나라고 다른게 없었다. 헌데, 이 정신도 일제 식민지문화의 잔재 아닌가? 우리에게는 죽음을 담보하는 하는 것보다 신바람이 먼저 아니었던가 말이다. 말을 바꾼다. ‘신나게 일하겠습니다.’ ‘대신 멍석만 깔아 주십시요.’

  견위수명見危授命이란 말이 있다. 논어에 나온다. (조국이) 위험에 처하면 목숨을 바친다는 말이다. 안중근의사의 말씀이기도 하다. 견불의수명見不義授命이라 말을 바꾼다면, 우리 선조들의 드높은 기개에 합당하지 싶다. 불의不義를 보면 참지 못한다는 말이다. 목숨은 오직 대의大義를 위해, 나라를 위해서만 바친다. 

  인도에 출장중, 심부름을 하던 게스트하우스 집사가 있었다. 이 친구 크리켓 게임을 이삼일에 걸쳐 열광하면서 본다. 하루 종일토록 보는데, 소리에 탄성을 섞어 삼매경에 빠지는 거다. 그것도 티비 삼탕 재방송을 말이다. 이 사람들 우리네 일하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죽도록 일하는 건 아니다. 신명나게 일하는 것도 아닌 듯하다. 대신 크리켓 게임은 죽도록 사랑하는 것 처럼 보였다. 그런 이 사람들 차茶에도 크림을 넣어 마시더라. 영국이 인도에 남긴 식민지 유산이라던가.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요한계시록 2:10)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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