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대륙 인디언의 역사 : 4.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경쟁 (4)
보스톤코리아  2015-08-10, 12:05:39 
영국과 프랑스의 패권 경쟁으로 갈라선 원주민들 (계속)
1689년부터 1763까지 두 세력 간에 모두 네 차례의 전쟁이 발생하였는데 미국에서는 'French and Indian Wars'라고 부르는 반면 캐나다의 퀘벡 등 옛 프랑스 식민지에서는 '식민지 전쟁 (Intercolonial wars)'이라고 부르고 있다. 여기서  French and Indian War라고 단수로 쓸 경우에는 1754년부터 1763년까지 7년간 계속되었던 마지막 전쟁을 일컫는다. 프랑스는 이 전쟁에서 짐으로써 미시시피 강 동쪽의 모든 땅을 영국에 넘겨주고 미시시피 강 서쪽의 모든 땅은 스페인에게 양보하게 된다. 스페인은 넘겨받은 루이지애나를 1800년에 은밀히 프랑스로 다시 양도하였는데 나폴레옹은 이 땅을 미국에 매각하였다. 이로써 뉴프랑스는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다만 뉴펀들랜드(Newfoundland) 섬 남쪽에 위치한 어업 전진기지인 생피에르 미클롱(Saint-Pierre Miquelon) 섬들(242km², 인구 7천명)은 오늘날까지도 프랑스령으로 남아있다. 네 차례의 전쟁을 시기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688–1697에 있었던 King William's War, 1702–1713에 발생한 Queen Anne's War, 1744–1748에 일어난 King George's War 그리고 1754–1763사이에 발생했던 The French and Indian War이다.

네 번의 전쟁 중 첫 세 개의  전쟁은 유럽에서 시작되어 북미대륙으로 확대되었으나 마지막 전쟁은 북미대륙 자체에서 시작되었다.  프랑스가 이 전쟁에서 패한 요인 중 하나는 프랑스의 점령지역은 영국의 점령지보다 더 넓었으나 인구수는 영국의 정착민이 프랑스 정착민보다 몇 십 배나 많았던 점이다.

영국의 식민지에서  살던 원주민들은 영국 정착민과 비교적 긴밀한 경제적 교류를 해온 탓에 영국 친화적이 되고 반면에 프랑스정착민들과 자주 접촉하던 인디언들은 자연스레 프랑스 친화적 분위기가 만들어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오랫동안 프랑스와의 교역을 활발히 수행해 왔던 메인 주 북쪽의 와바나키연합(Wabanaki Confederacy) 부족들은 프랑스 편에 서고 뉴욕 주 북쪽에 살던 이로쿼이 연합 소속 인디언부족들은 반대로 영국 편에 서서 싸웠다. 모히칸족의 최후(The Last of Mohicans)라는 영화는 영불간의 마지막 식민지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이 영화는  오대호 인근에 살던 휴런부족은 프랑스 편에 서고 뉴욕 중부에 살던 모히칸부족은 영국 편에 서서 서로 싸우는 모습을 잘 그려냈다. 

한편 야마시 전쟁 도중에 영국 편으로 돌아선 이후 계속하여 영국 식민지 세력과 연합해 오던 체로키족은 그간에 쌓였던 영국에 대한 불만 때문에 영불간 식민지 쟁탈 전쟁이 한창이던 1759년에 프랑스와의 동맹과는 아무런 관련 없이 독자적으로 영국에 대하여 전쟁을 일으켰다. 영국 측에서는 체로키족으로부터 받은 충격 때문에 인디언들은 믿기 어려운 종족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고 이러한 편견은 식민지 전쟁이 끝난 후 점령지 안의 인디언들을 다루어 나가는 데에 좋지 못한 영향을 주게 된다.

제5장 조상의 땅을 사수하라
폰티악 전쟁  
사실 북미 원주민의 역사를 정리하다 보면 유럽인과의 접촉 후부터는 줄곳 전쟁에서 지는 이야기만 있을 뿐 흔히 다른 나라 역사에서 볼 수 있는 흥망성쇠의 스토리는 전혀 찾을 수 없다. 전쟁이라야 약자의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 수준이라 자신의 영역으로 파고드는 유럽인들의 대륙진출을 멈추게 할 수는 없고 다만 동부 해안으로부터 서부 내륙으로 진출하려는 유럽인들에게 약간의 대가를 치르게 하는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폰티악 전쟁(Pontiac's War)'으로 흔히 알려져 있는 영국의 부당한 대우에 항거하여 여러 부족이 연합하여 영국군과 싸운 전쟁도 그러한 성격의 전쟁의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이 전쟁은 영국인의 고압적인 통치로부터 해방되려는 독립운동 성격이 내포되어 있기에 수없이 많이 치룬 원주민과 유럽인과의 전쟁 중 비교적 전쟁다운 전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당시 오타와 부족의 전투 추장의 이름이 폰티악이었는데 역사학자 파크만(Francis Parkman)이 그의 이름을 따와서 전쟁의 이름을 붙였다.

수십 년간 지속되었던 북미 대륙에서의 식민지 전쟁에서 영국이 프랑스를 물리치고 그 지역의 지배권을 완전히 장악한 게 1763년이다. 전리품으로  뉴 프랑스 영토 중 미시시피 강 동쪽의 땅 모두를 할양받은 영국은 옛 프랑스 요새를 접수하고 새로운 식민지 개척을 서두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영국인들은 프랑스 식민지 지역에 살던 인디언들에 대하여 지나치게 고압적인 자세를 취했다. 

(다음 호에 계속)


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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