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칠십이면 청년
보스톤코리아  2015-08-24, 13:22:23 
  처서處暑 근방이다. 서늘한 바람이 불고 이슬이 내리는 절기이다. 곧 일년의 정점인 가을이 다가 설 게다. 모두들 긴 보스톤 여름 잘 보내고 계신지. 오늘은 한창 젊어(??) 인생을 오래 살아보지 못한 내가 별 소리를 한마디 한다. 주제 넘을 테니 용서하시라. 

  어느 소설가가 말했다. 남자에게는 육체적 사춘기가 있을 것인데, 정신적인 사춘기도 따로 있단다. 그가 말한 정신적인 사춘기는 50대 초반이다. 오십이면 지천명知天命인데, 그럼 인생의 절정은 언제인가?

  연극에서는 발단이 있을 것이고, 전개가 있으며, 절정과 결말을 갖는다. 인생이 연속극이나 연극처럼 몇단계를 갖는건 아닐게다. 하지만 인생의 발단과 전개는 길고, 정점은 좁고 갓파르다. 하강과 종결은 짧다고 해야 할게다. 오래전이다. 몇몇이 저녁을 먹고 있었다. 켜진 티비에서 연속극이 방영되는 걸 흘끗 거렸다. 자주 티비를 쳐다 보는 눈길이 못마땅한 한 친구가 말했다. ‘마지막에 다 만나’ 결말이 그저 그런 해피엔딩이란 말이다. 먹으매, 연속극 훔쳐보던 눈길들이 와아 웃음을 터뜨렸다. 언제가는 모두 그저 다 만날 것이고, 결말은 해피엔딩이라고 지레 말해 버렸기 때문이다. 모두 다 아는 결말이라면 연속극은 재미가 덜 하다. 그저 모두 늙고 죽는게 인생이다. 마지막엔 이세상에 보낸 조물주와 재회한다. 이렇게 몇마디로 정리해 버리면 너무 밍밍하고 싱겁다. 

  한창 먹방이 대세다. 먹는 걸 보여주고, 음식을 조리하는 걸 보여준다. 잘한다는 음식점을 찾아다니는 것도 있다. 이런 것도 티비에 나오는데, 음식은 결국 삶거나 튀기거나, 볶거나, 굽는것 아닌가 싶다. 한마디 더한다. 한국음식은 쪄내기도 하고 지지기도 한다. 하긴 날로 먹는 회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회도 손질은 해야 한다. 뼈빼고, 비늘은 걷어내야 한다.) 인생도 삶고, 튀기고, 볶고, 구워가면서 살아가는 것 아니겠나. 하지만 인생도 조리하면서 자주 간을 봐야 할게다. 그냥 섞어두고 끓인다고 음식이 다 되는 건 아닐테니 말이다. 맛은 매울수도 있을게고, 단맛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쓴맛도 날 수 있다. 사족이다. 날로 먹으려 하지 마시라. 인생도 날로 먹으려다가 배탈날 수도 있다.

  7080 세대는 세시봉만 기억하는 건 아니다. 그 시절엔 김형석 교수도 빠질 수 없다. 선생은 크지 않은 체구에 조용한 목소리로 조근조근 들려 주었다. 그가 이제는 연세年歲가 매우 높은데, 이야기한 말씀이 귀에 사뭇 깊었다. 누가 몇자 적어 보내온걸 받았다. 망백望百에 다다른 철학자의 술회인게다. 그대로 옮긴다. 선생은 매운맛, 단맛을 강조 했다. 

‘살아보니..지나고 보니..인생의 가장 절정기는 철없던 청년시기가 아니라..인생의 매운 맛, 쓴 맛 다 보고..
무엇이 참으로 좋고 소중한 지를  진정 음미할 수 있는 시기.. 60대 중반~70대 중반이.. 우리 인생의 절정기다’ 
  받은 글중에서 돌아간 박경리선생의 시詩도 맛이 깊어 오히려 편안하다.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아~편안하다
버릴 것만 남아 있으니
늙으니 이리도 편안한것을~
(박경리, 옛날 그집 중에서)

  가을이 성큼 코앞이라 그런가, 한창 여름이 꺾일 기세라 그런가, 사뭇 마음만 서늘하다. "석양이 지기 전에 황혼을 붉게 물들이겠다" 김종필 전 총리가 자주 입에 올리던 말이다. 그세대 선배님들 모두 황혼을 붉게 물들이시라. 평안하시고 절정기를 즐기시길 빈다. 한국은 광복 70년을 맞았다. 평안하고 한창 절정에 올라선 대한민국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무궁화가 피었다. 여전히 곱다. 

‘바울의 친구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 (사도행전 19:31)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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