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대륙 인디언의 역사 : 9. 레드 클라우드의 빛나는 승리 (4)
보스톤코리아  2016-01-04, 11:36:28 
라라미조약 체결(1868년)
이 사건 이후에도 인디언들은 보즈만 도로상에 있는 세 개의 요새를 끈질기게 공격하고 도로를 통행하는 마차를 습격하는 등 백인들이 자기네 영역에서 물러날 때까지 한 치의 양보도 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정부 입장에서 가장 심각하게 생각했던 사건은 파우더강 지역과는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동안 안전하다고 여겼던 네브래스카 주에서 1867년 8월 7일에 발생한 열차 습격사건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정부는 또다시 화친 조약 체결을 시도하여 그 해 9월 19일 셔먼(William Tecumseh Sherman) 지역 사령관을 대표로 하는 협상단을 열차편으로 네브래스카 주의 플래트 시로 보내 인디언 추장들과 회담을 열도록 했다. 이 회담장에 붉은 구름은 나타나지 아니하였다. 미국정부 측은 수우족으로 하여금 파우더 강 유역을 떠나서 미주리 강 상류지역으로 이동해 갈 것을 제의했다. 인디언들은 이 제안은 말도 안 되는 것이라서 논의할 가치조차 없다고 일축해 버렸다. 다른 추장들로부터  소식을 전해들은 붉은 구름은 셔먼의 건방진 태도와 터무니없는 제안에 크게 실망하였다. 또 다른 정부 대표단이 11월 9일 인디언 추장들과 화친조약을 맺기 위하여 라라미 요새로 왔다. 붉은 구름은 정부대표들과 직접 만나지 않고 전령을 보내서 백인들이 인디언들의 사냥터 중 마지막 남은 파우더강 유역에서 물러날 때까지 전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백히 하였다. 이로써 이번 회담도 결렸되었다. 

1868년 봄에 셔먼을 포함한 정부대표단이 라라미요새를 다시 찾아 왔다. 그들은 워싱턴으로부터 보즈만 도로상에 있는 요새들을 철수시키고 붉은 구름과의 평화협정을 타결시키라는 지시를 받고 있었다. 미국 정부의 셈법으로는 이 지역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2만 명의 병력이 필요한데 현재 동원할 수 있는 자원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보즈만 도로를 포기하고 대신 대륙횡단철도를 지키는 게 실익이 있다고 보았다. 대표단은 붉은 구름에게 특사까지 보내어 라라미 요새 회담장에 나와 줄 것을 정중하게 요청하였으나 붉은 구름은 동맹군들과 협의하는 데에 시간이 걸리니까 그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다. 며칠 후 인편으로 대표단에게 짤막한 그의 입장을 전달했다. 내용인즉, 보즈만 도로상의 요새와 군인들을 철수시키면 회담장으로 가겠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붉은 구름의 단호한 태도는 셔먼 일행에게 상당한 모욕감과 함께 충격을 주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번에도 협상대표단은 빈손으로 동쪽으로 돌아갔다.

결국 미국 정부가 두 손을 들었다. 그해 7월 29일 가장 북쪽에 있던 스미스 요새부터 철수시켰다. 이튿날 아침에 붉은 구름은 전사들을 이끌고 요새의 시설들을 불태웠다. 한 달 뒤에는 필 커니 요새가 폐쇄되었는데 이번에는 샤이엔족이 와서 요새의 건물들을 불태웠다. 또 며칠 뒤에는 리노 요새에 남아 있던 마지막 군인들마저 떠남으로써 보즈만 도로는 공식적으로 폐쇄되었다. 붉은 구름의 빛나는 승리였다. 2년에 걸친 끈질긴 투쟁 끝에 얻어낸 값진 성과였다. 드디어 11월 6일 전사들과 함께 말을 타고 라라미 요새에 나타나 승전국의 대표자격으로 조약에 서명하였다. 조약에 의거 수우족은 그들의 성산인 블랙힐즈를 포함한 사우스 다코타 주 일대를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지정받고 파우더강유역의 사냥터도 인디언의 땅으로 유지될 뿐만 아니라 서부 캔사스와 동부 콜로라도에서도 사냥할 수 있도록 인정받았다.

붉은 구름의 위대한 승리
이로써 2년간에 걸친 라코타 인디언과 미군과의 전쟁은 인디언 측의 완승으로 끝났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등 공로자는 역시 붉은 구름, 곧 Red Cloud이었다. 붉은 구름은 1868년의 조약 체결후 자진해서 미국정부가 마련해준 인디언보호구역으로 들어갔다. 1870년에는 워싱턴을 방문하여 인디언 출신의 인디언담당국장인  파커(Ely S. Parker)와 그랜트(Ulysses S. Grant) 대통령도 만났다. 그는 백인들의 문명을 어쩔 수 없는 대세로 받아 들여 무력을 사용한 투쟁을 버리고 연방정부 기구인 이민국(Bureau of Indian Affairs)과 접촉하여 인디언을 위한 인디언정책이 시행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노력하였다. 그는 1860년대 말부터 라코타 인디언들이 평원에서의 수렵을 중심으로 한 생활방식으로부터 인디언보호구역내에서의 정착생활방식으로 전환하는 데에 많은 역할을 하였다. 1874년부터 블랙힐즈 지역에서 금광이 발견됨으로써 인디언과 백인 사이에 새로운 갈등이 불거지자 1875년에 워싱턴을 다시 방문하여 백인들의 불법적인 인디언 영토 침범을 항의하고 이를 막을 수 있는 대책을 받아내고자 하였으나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이러한 갈등은 결국 이듬해에 전쟁으로 발전되었다. 붉은 구름은 이 전쟁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1884년에는 그의 가족과 다른 몇 명의 추장들과 함께 가톨릭교회의 영세를 받고 신자가 되었다. 그는 또한 1887년 소위 도스법이라고 불리는 토지할당법이 제정되어 인디언의 땅이 부당하게 백인에게 매각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그 시대 인디언 지도자 중에서 가장 장수하여 1909년 88세의 나이로 파인릿지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다음 호에 계속)

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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