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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의 세상 스케치 540회
보스톤코리아  2016-04-04, 11:34:38   
겨울의 햇살 끝은 참으로 짧다. 긴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다 보면 어느샌가 겨울 그리고 봄 어김없이 왔다 지나가는 계절과 계절 사이 나는 늘 그 자리에 있는 듯싶다. 하지만 단 하루도 아니 단 한 시간도 그 짧은 찰나의 한순간도 같은 날은 없었다. 세월의 덮개에 무뎌진 감성이 그냥 지나쳐버렸을 뿐이다. 내게 남은 봄과 여름은 몇 번이 될까 그리고 가을과 겨울은 몇 년을 더 맞을 수 있을까. 우리는 가끔 자신 속 깊은 자신과 대면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 어떤 두려움의 대상으로 대면하지 않으려 한다. 어쩌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비켜가고 싶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삶 속에서 죽음을 생각해 본 이와 그렇지 않은 이의 삶은 생각 이상만큼의 차이가 있다.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나와 늘 함께 동행하는 그림자인 것이다. 그것이 내가 되었든 내 배우자가 되었든 간에 우리에게 그것은 부인할 수는 없는 사실인 것이다. 부모나 형제 그리고 자식 그 외의 가까운 친구나 친지들이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일을 경험해본 이는 알 일이다. 차마 볼 수 없는 광경이며 견딜 수 없는 고통임을 말이다. 하지만 이런 경험을 해본 사람은 또한 복된 사람이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의 고통을 통해 제대로의 삶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 나이가 어려서는 무엇인가 걱정과 염려 없이 일일 술술 잘 풀리면 세상이 모두 내 것인 양 행복에 겨워했다. 다른 사람의 행복이나 불행 앞에서도 그저 체면이나 인사치레 정도로 마주한 것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지나온 삶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어리석은 모습이었음을 고백한다. 물론 나 자신이 어려운 일을 한두 번 겪으면서 그 경험을 통해 지혜를 얻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내 일 남의 일이 따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에야 진정한 삶의 뿌리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때야 비로소 삶의 가치를 알게 되었고 혼자가 아닌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연년생인 세 아이를 키우면서 참으로 분주하게 살았다. 아이들 학교 공부와 그 외의 과외 공부 그리고 음악과 스포츠를 위해 세 아이를 내려주고 데려오는 시간은 택시 드라이버가 된 것처럼 시간에 쫓기며 초침을 따라 움직였던 날들이었다. 그때는 그 일이 힘들다고 생각해 볼 틈도 없었다. 물론 그 일이 즐겁거나 행복하다고 여겨 볼 그런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세 아이를 모두 대학 기숙사에 보내놓고서야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그 시간이 내게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던가를 말이다. 이 모두가 지나놓고서야 그 시간의 참 소중함을 깨닫는 어리석은 존재가 아니던가.

남편도 썩 괜찮은 사람이었다. 참으로  정신과 육체가 건강하고 건장한 청년이었다. 이런 남자와 결혼한 나는 너무 행복했고 함께 어디를 가나 든든했다. 젊은 부모님 밑에서 삼 남매의 막내로 자란 남편은 만 6살에 이민을 왔다. 그리고 아버지 쉰에 얻은 늦둥이 막내인 나는 청소년기를 마치고 미국에 왔다. 그런 이유로 남편과 나는 언어와 문화적인 차이가 많이 났다. 10년 전 어느 날의 하루 남편의 느닷없는 건강의 적신호로 하늘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었다. 무엇보다도 남편의 꿈이 무너지는 것이 더욱 가슴 아팠다. 그래도 그 어려운 시기를 잘 보내니 오늘을 맞는다.

지천명에 올라 지난 시간들을 반추하며 참으로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삶에서 어찌 이런저런 일들이 내게만 있었을까마는 누구나 내 일이 가장 큰 일이라고 여기지 않던가. 세 아이를 키우며 정신 없이 지냈던 시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아이들이 자라 제 갈길을 찾아가니 이제는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앞으로 다가 올 내 삶의 밑그림의 스케치를 이제 다시 또 시작하는 것이다. 여백이 많아 넉넉하고 편안한 그런 삶의 그림을 그리고 싶은 것이다. 나이 들어가며 서운하지 않을까 싶었던 마음에 나이 들어가며 좋은 것들이 하나 둘 느니 이보다 좋은 일이 또 있을까.

이처럼 환한 대낮에 눈이 부셔 바라보지 못했던 것들을 서산에 해 질 녘이면 천천히 바라볼 수 있어 감사한 시간이다. 내 삶의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천천히 바라보고 느끼고 기다리며 마중할 수 있어 고마운 것이다. 이런저런 삶의 모자이크들을 주어모으며 어수선하고 분주했던 한낮의 수다마저도 빠트릴 수 없는 한 조각의 그림인 것을 이제야 사뭇 깨달아 간다. 이 세상에 그 무엇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을까. 이 시간마저도 지나면 오지 않을 귀한 것일진대, 내 삶과 마주한 이 세상 모든 것들이 고맙고 감사할 뿐임을 고백하는 오늘이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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