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보스톤코리아  2016-04-17, 17:35:21 
  한국 신문에서 읽었다. 9급공무원 시험에 경쟁율이 몇백대 일이란다. 공무원이 되는것이 보통 힘이 드는 일이 아닌 모양이다. 보스톤에서 봄꽃이 피는 것보다 더 어렵다. 젊은이들에게 취업문이 좁기는 좁은가 보다. 고민 많은 ‘요새 젊은이들’에게 격려를 보낸다. 
  수십 년 전이다. 한국 중앙지에 신문 반면을 차지한 글이 실렸다. 제목이 길었다. ‘어른님들 내 말좀 들어보소’. ‘요새 젊은 것’이 쓴 글이었는데, 동전치기 한다고 나무라지 마시라 투정이었다. 신바람 나는 일 없어 고민한다는 말투였던 거다. 당구장, 튀김에 소주, 며칠 감지 못한 장발엔 기름때가 흘렀다. ‘요새 젊은 것들’  머리가 그게 뭐냐. 너무 나무라지 마시라는 부탁이었다. 

  며칠 지나면, 4.19 이다.  그 시절 육십년대 초반  ‘젊은 것들’도 그랬던 모양이다.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문제 때문에 고민했다 했으니 말이다. 내가 ‘요새 젊은 것’이었을 적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소주를 앞에 놓고 말이다. 입속으로 털어 넣고 그 친구 하는 말을 들어야 했다. 튀김조각을 간장에 찍으며 그가 말을 이어갔다. 김광규 시인이다. 시인은 사일구 세대이다. 
         
4•19가 나던 해 세밑/우리는 오후 다섯시에 만나
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김광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중에서)

  세일럼에 가면 피바디 박물관이 있다. 그 옛적 유길준이 이곳에 남아 공부했다. 그가 고국으로 돌아 갈적에 벗어 놓고 간 갓이며, 관복이 전시 되어있다. 그 시대 ‘요새 젊은 것들’ 유길준과 서재필과 김옥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인가. 한창 혈기방장한 청년들 아니었던가. 우리네 젊은 이들보다야 성숙했을 텐가. 서유견문록을 읽기는 읽어야 겠다. 그가 무슨 생각을 품고 있었는지. 그도 사랑과 조국과 인생을 고민했을까.  

  세월이 흘러갔다. 갑신정변은 한세기도 넘겼다. 사일구 세대 선배들도 일선에서 은퇴한지 한참 됐다. 계속 김광규 시인이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혁명이 두려운 기성 세대가 되어/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옛적 ‘요새 젊은 것’이 이제는 ‘요새 젊은 것’들을 나무란다. 선배들이 그랬던 것 처럼 말이다. 내 아이도 이제는 요새 젊은 것들 중에 하나가 되었다. 이녀석도 세월이 가면, 요새 젊은것들을 보고 혀를 차겠지. ‘요새 늙은 것들’ 중에 하나였던 아비와 ‘요새 젊은 것들’ 중에 하나인 아이가 공존한다. 내가 요새 젊은 것 이었을 적에 무얼 고민했던가. 그건 기억이 희미하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되었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전도서 1:4)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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