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흥망과 발해국의 태조 대조영 20.
보스톤코리아  2009-05-18, 15:56:11 
이제 한국의 고대사가 발해사를 어떻게 이해해왔는가를 잠시 살펴 보기로 하자.

한국의 고대사라고 일컬어지는 고려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후삼국의 궁예의 후고구려와 견훤의 후백제를 말하면서도 신라의 삼국통일 후 이국시대를 전개하는 발해에 대하여는 이렇다 할 역사적 사실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 옛날 중국의 당나라와 그 문명을 비견하며 230여년 간 국위를 떨친 발해에 대하여는 단 세 번의 기록이 있을 뿐이다. 그에 대하여는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두 번은 북국 즉 발해국에 사신을 보냈다는 것과 한번은 당나라의 요청에 따라 북국을 정벌하기 위하여 원병을 보냈다는 사실뿐이다.

그리고 발해사의 편찬을 책임져야 했던 고려가 서기 926년 발해가 망한 후 그 국민을 받아들였다는 사실만을 고려사에 남겼을 뿐 발해의 흥망에 대하여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오히려 충렬왕 때의 이승휴 (李昇休)가 제왕운기 (帝王韻記)를 지으면서 고조선, 신라, 고구려, 백제의 제왕의 행적을 기리면서 발해왕의 정통을 기술한 대목이 있지만 많이 인용되지 못한 것 같다.

내려와 이씨조선의 역사기록인 이조실록에는 발해라는 그 이름조차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조 정조대왕 때의 규장각 (왕실도서관)의 검서관 유득공이 발해사를 조사 연구하여 발해고라는 저서를 내놓았다. 이것이 우리나라 역사가 처음 가지는 발해사인 것이다.

그런데 유득공이 이 책을 저술하면서 구당서와 신당서들의 기록을 인용하면서 하등의 검토와 여과 없이 그대로 채택하였다는데 아쉬움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 중국측 사료는 매우 간략할 뿐 아니라 상호 모순된 점이 많이 발견되어 그 정확성마저 의심되는 대목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서기 870년경 당나라의 사신 장건장 (張建章)이 발해국에 갔다가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발해기 (渤海記) 라는 책을 저술하였다. 그러나 그 책은 이미 일실된 지가 오래라는것이다.

그보다도 발해사의 연구에 있어서 적지 않은 도움을 주는 것은 일본측 사료인데 속 일본기(續日本記), 일본후기(日本後記), 일본일사(日本逸史), 유치국사(類治國史), 문화수려집(文華秀麗集) 등인데 이들 저서가 발해사 연구에 의하여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일본은 1905년 노일전쟁에서 승리하여 러시아의 남만주 철도와 요동반도를 차지했다. 그리고 만주에 진출하기 위하여 1910년 동경대학의 시라도리구라기지 (自鳥庫吉) 교수를 만주의 흑룡강성 목단강 지방에 파견하여 옛 발해의 도성이었던 영안지방의 고적을 답사 보고케 하였다.

영안은 소련의 동청철도가 지나가는 근처이기 때문에 그때까지만 해도 일반인의 여행이 드믈었던 곳이다. 더구나 마적의 출몰이 잦은 그런 곳에 군대의 호위도 없이 단신으로 가서 고적을 조사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시라도리 교수는 일본의 귀족학교인 학습원과 관립 동경대학교의 교수를 겸임한 어용학자이었다. 사실 일본은 1908년 남만주 철도 회사의 산하에 만선지리 역사 연구소를 설치하고 시라도리 구라기찌 교수의 주도하에 한국과 만주를 조사 연구케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불편하자 시라도리 교수는 1915년 동 연구소를 자기가 재직하고 있는 동경제국대학교로 옮기고 권위 있는 동양사학자를 동원하여 한국, 만주, 몽고, 서역 등의 역사와 지리를 조사케 하였다. 그 보고서가 <만선지리역사 연구보고>16책 그것이다.

시라도리 교수는 동양사의 연구를 위하여 동경제국 대학교 도서관과는 별도로 1924년에 동양문고를 설립하고 그 이사장이 되어 상해 상무인서관의 장본을 수집하여다가 동양사연구에 이용케 했다.

그런데 일본의 동양사연구는 한국, 만주, 서역, 등의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는데 목적이 있었던 것보다 오히려 한국사와 만주의 역사를 왜곡하여 침략과 식민지 정치를 합리화 하는데 공헌했다.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상화 시인의 것으로 기억한다). 일제의 폭악한 식민지 정치 하에서 살기가 어려워 만주 땅으로 이민하여 가던 그곳 북간도가 그 옛날 고구려와 발해국의 영토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었을까!

한국사와 만주사의 연구는 일본사학자들의 독점물로 그들의 편향적인 식민지 사관에서 엮어진 결과로 피해를 본 것은 고구려사와 발해사 등 한국고대사이다.

나는 하버드 대학교 옌칭도서관의 사서로 근무할 무렵 북한의 박시형 교수가 지은 발해사 (1979년 간행)가 수입되어 그 책의 목록을 작성하면서 읽은 기억이 있다. 그러나 내 전공이 발해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별로 관심을 갖지 못했다.

그런데 근래에 이르러 발해국의 역사적 귀속 문제를 갖고 한국과 중국 간에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기사를 여러 번 읽었다. 그런데 천년 전 동북아에서 그 위력과 문화를 자랑하던 발해국에 대한 논란이 왜 새삼 발생하게 되었는가!
<다음호에 계속>

백린(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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