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202회
보스톤코리아  2009-06-08, 15:47:28 
"치매에 걸린 부인을 돌봐 오던 울산의 한 80대 노인이 담낭(쓸개)암 말기 판정을 받자 고민 끝에 부인을 목 졸라 살해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으려다 실패했다.... 부인과 유난히 금실이 좋았던 A씨는 5년 전부터 치매를 앓기 시작한 부인을 지극정성으로 돌봐왔으나 올 3월 중순께 담낭암 말기로 6개월여밖에 더 살 수 없다는 진단을 받자 부인의 앞날을 몹시 걱정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울산=연합뉴스 2009.06.02 임기창 기자]

이 기사를 읽으며 마음이 아려온다. 이 노부부의 아름다운 한평생의 삶과 사랑 그리고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50여 평생을 살을 맞대고 살아온 부부의 정이란 아마도 이런 것이리라. 우리 요즘 젊은 세대의 사랑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그런 깊은 정이 흐르는 사랑 말이다. 이 기사를 읽으며 나 자신에게 물음 하나를 던져본다.

"너는 지금 제대로 잘살고 있니?" 하고 묻고 있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마주한 지금 서로에게나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와 부부의 모습으로 잘 살고 있는지 묻고 있는 것이다.

요즘 젊은 아이들이 흔히 말하는 '쿨한 사랑'이 부럽다고 농담처럼 던지곤 했었다. 군더더기 없이 좋으면 만나고 싫으면 헤어지는 젊은이들의 '쿨한 사랑'이 우리 중년 세대들에게는 부러움이기도 한 얘기였다. 그래도 가끔은 중년도 '쿨한 척 한다고...'

"뭐, 부부가 만났다 헤어지는 일이 요즘 유행 아닌가?" 하면서...

"정 싫으면 헤어져야지, 아이들 핑계를 대면 뭘 해?"

"아이들이 자라면 잘 참아줘서 고맙다고 말이나 하겠어?"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요즘 중년 세대들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지만 흘러가는 얘기처럼 가끔 농담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노부부의 따뜻한 정에 가슴이 아리고 저린 것은 지금의 현실을 그대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나이 들어 늙으니 서러운 것투성이고 몸도 마음도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자식에게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아 그럭저럭 끼니를 손수 챙기며 살아가는 노인의 숫자는 늘고 있는 현실이다.

이것이 어느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닌 한 사회의 문제이고 더 나아가 국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젊어서 열심히 일하고 자식들을 돌보며 잘 살아왔는데 이렇게 노후의 계획은 어처구니없이 허무한 삶을 만들어 놓았다. 그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 이 한국 뉴스의 기사는 멀리 있는 한 노부부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한국에 있는 내 부모와 내 가족의 이야기이기도 하기에 더욱 가슴이 아려온다.

문득 오래전 아버지 병시중을 정성스럽게 드셨던 내 어머니가 떠오른다. 그때 그 모습을 보면서 부부라는 정이 어떤 것인가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아버지는 뇌일혈로 쓰러지셨고 7시간의 뇌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 계셨다. 그때의 연세가 75세 정도가 되셨던 기억이다.

그렇게 몇 달을 중환자실에 계시다가 일반 병실로 옮겨 치료를 받았고 집으로 퇴원하여 통원치료를 받게 되셨다. 그렇게 시작된 병시중은 만 5년을 하게 되었고 아버지는 아내의 따뜻한 사랑을 받다가 돌아가셨다. 단 한 번도 불평하지 않으시고 아버지를 정성스럽게 간호하시던 내 어머니의 그 깊고 진한 사랑이 고맙고 자랑스럽게 마음에 남았다.

오늘 아침 이 기사를 읽으며 내 어머니를 떠올렸다. 아마도 내 어머니도 이 상황에 놓였다면 그 강직한 성격에 자식에게 폐 끼치기 싫어 이 노인처럼 그 선택을 하지 않으셨을까, 하고 말이다. 어머니는 평생을 한(恨)을 품고 사셨다. 다름 아닌 아들을 낳고도 기르지 못한 '한 여인의 가슴앓이의 恨'이었다.

그래서일까. 아버지를 먼저 보내드리고 10여 년을 혼자 사셔도 당신이 손수 끼니를 챙겨 드셨다. 그 모습이 안타까워 딸자식과 사위들이 모셔간다고 해도 고맙다고 인사만 할 뿐 끝내 허락하지 않으셨다.

"시한부 80대 암환자의 안타까운 夫情"의 기사를 읽으며 남의 일같지 않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가슴이 아리고 저려왔다. 정신도 오락가락하는 치매에 걸린 내 사랑하는 아내를 내 손으로 거두고 자신도 떠나려 했던 그 안타까운 夫情의 깊은 정을 뭐라 말할 것인가. '살인자?' 그래, 사람을 죽였으니 살인자는 당연한 이름일 게다. 아, 이 세대를 살아가는 나 자신에게 한번 묻고 싶다.

"정말, 죽이고 떠나야 할 만큼 깊디깊은 그런 사랑을 해본 일이 있는가?" 하고 말이다.

"죽음보다 더 깊은 그 참사랑의 의미를..."

깊은 정으로 살았던 그를 세상 사람들인 우리는 '살인자'라고 말한다, 차가운 가슴으로 오늘을 사는 우리는.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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