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교회를 놓으시다!
보스톤코리아  2006-09-13, 00:24:19 
조태연 목사 (보스톤 중앙교회)

초대교회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홀로 궁금하던 게 하나 있었다. 예루살렘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을 목도한 사람들이 이룬 교회였다. 역사적으로 '기원의 교회'이며, 성령이 폭포수같이 임하였던 교회, 그것도 120문도에게 집단적으로 임하여 불같이 일어났던 교회였다. 사도행전이 거의 절반이나 할애하여 그 찬란했던 역사와 아름다웠던 면면을 세세히 전하였던 그런 교회였다. 그러나 그런 교회도 유대전쟁(66-70년)이 발발했을 때 나이 마흔을 못 넘기고 역사의 지평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후발 주자면서 핍박받은 성도들로 이뤄진 안디옥교회는 향후 수백 년 동안 기독교 세계를 이끌어가는 전무후무한 교회가 되었다. 어찌 하나님은 그 위대하였던 예루살렘교회를 끝내 버리셨고 어린 아이 같은 안디옥교회를 택하셨을까?

왜 안디옥인가?
하나님께서 안디옥교회를 택하신 데는 이유가 있었다. 안디옥교회가 대단히 '실험적인' 교회였기 때문이다. 첫째, 예루살렘교회와 지상의 모든 교회들이 '오직 유대인으로' 모였을 때, 안디옥교회는 처음으로 이방인들을 끌어들였다(행 11:19-21). 하나님께서 유대인뿐만 아니라 비유대인(이방인)도 창조하신 것같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복음으로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찾는 데엔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릴 것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안디옥교회야말로 맹목적 선민의식(選民意識)과 국수주의(國粹主義的) 유대주의의 이데올로기를 극복하였고,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시는 구원의 역사(Salvation History)에서 사해동포(四海同胞)의 만민주의(萬民主義)를 실현한 첫 교회가 된 것이다.
둘째, 안디옥교회는 덕망있는 지도자 바나바의 탁월한 리더십 아래 실의에 빠져 낙향한 바울을 찾아오고 지도자로 세웠다(행 11:22-26a). 저들은 인재를 발굴하여 키워주고 동역하는 슬기를 보인 것이다. 나중에 바울은 기독교 역사에서 사도들 가운데 최고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안디옥교회야말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교회,' '사람을 키우는 교회,' 그리고 '사람을 키움으로써 인류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교회'를 마침내 실현한 것이다. 하나님의 눈이 사람에게 그 초점을 맞추었고 구원사의 지향 또한 참다운 인간 됨의 실현에 있음을 깨닫고 실천한 선지자적 통찰이었다 할까.
역사의 갈림길에서...
셋째, 안디옥교회는 기독교적 정체성을 확립한 교회였다. 사도 바울과 그의 교회들은 복음의 '케리그마'(kerygma)를 발전시키고 계승시켰다. 그리스도의 대속적(代贖的) 죽음과 영광의 부활이 사람을 구원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울의 그 많은 편지들에 예수의 비유나 기적 이야기 한 토막도 아니 나타나는 것을 보면, 바울의 교회들은 '예수 전승'(예수 야야기)을 계승하지 않았음이 분명한 듯하다. 바울 자신은 오히려 역사적 예수를 논하지 않기로 굳게 결심하였다고 공언을 하지 않는가(고후 5:16). 그 자신이 예수의 직계 제자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예수가 돌아가신 후 한 세대가 지나기 전 기독교 역사의 아침엔 ‘예수 이야기’(이는 나중에 복음/복음서로 자리를 잡는다)를 신학과 목회의 전거(典據)로 삼는 방법과 ‘그리스도-케리그마’를 신학과 목회의 전거로 삼는 방법이 병존하였던 것이다. 기독교 역사의 이런 갈림길에서 안디옥교회의 선택은 무엇이었나? 안디옥교회는 유대나 시리아 지역의 교회들에서 형성된 예수 전승을 계승함으로써 기독교 기원과 본질에 충실하였고, 또한 이방 세계에 적합한 복음의 케리그마를 발전시켜 바울의 이방인 선교에 기초를 놓음으로써 기독교의 미래를 열었다. 그 결과, 안디옥교회는 이제까지의 다른 모든 교회들과 달리 처음으로"그리스도인"(Christians)이라 일컬음을 받았다(행 11:26b). 한 편으로는 예수의 음성과 가르침을 마음에 담고, 다른 한 편으로는 그리스도의 피 묻은 복음을 가슴에 새김으로 지상에서 처음으로 '기독교'를 이룬 것이다. 예루살렘교회가 '교회의 기원'이었다면, 안디옥교회는 명실상부하게 '기독교의 기원'이 된 것이다.

토큰인가, 타입인가?
무엇이든 완성된 것은 없고 영원한 것도 없다. 개인도 영욕(榮辱)을 반복하고 교회도 부침을 거듭한다. 예루살렘교회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도록 하나님께서 손을 놓으신 것은, 그들이 역사적 첫 교회였으나 역사를 창조하는 사명을 게을리 하였기 때문이며, 그러면서 여럿 중 하나로 전락하였기 때문이다. 하나의 토큰(token)으로 만족하였다는 뜻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안디옥교회를 들어 쓰신 것은 그들이 여럿 중 하나로 만족치 않고 새 역사를 창조하는 교회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역사에 새로운 타입(type)을 주었다는 뜻이다.
무엇이든지 많은 것 가운데 하나는 어느 때든 순식간에 소멸할 수 있다. 예루살렘교회가 그러했다. 설령 수천 명 혹은 수십만 명이 운집하는 교회라 할지라도, 그것이 다른 모든 교회들과 같은 것이라면(token), 한두 개 없어진들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서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하지만 모든 것과 다른 것 그래서/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옳고 쓰시기에 좋은 것(type)은 하나님께서 진정 귀히 여기시며 역사의 고비에서 귀히 들어 쓰신다. 비록 수십 명 혹은 두세 명만이 모이는 작은 교회라 할지라도, 그것이 다른 모든 교회들과 달리 복음의 보편적 진리로써 인류의 역사에 새로운 희망과 구원을 가져다주는 것이라면, 안디옥교회처럼 역사에 크게 기여하는 교회가 되지 아니하겠는가.
보스톤에 와 처음으로 목회를 배우면서 나의 목회가 안디옥교회처럼, 묻지 않고 당연시되던 많은 편견과 고정관념을 넘어 예언자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변하고 실천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묻는다. 바나바의 안디옥교회처럼 함께 역사의 프런트에 서서 사람을 소중히 여기며 새로운 미래를 창조해 나갈 수 있을까 반문해 본다. 나는 이 지역의 모든 교회들이, 역사의 기로에서 슬기로웠던 안디옥교회처럼, 예수와 그리스도 사이에서 그리고 역사와 신화 사이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기독교의 내일을 밝혀갈 인류의 등불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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