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256회
보스톤코리아  2010-07-19, 12:04:11 
지난해 가을 한국을 방문하며 한국(송도 신도시)에서 5년째 살고 계시는 시부모님의 집을 찾았었다. 몇 년 전 시아버님께서 40여 년의 타국생활을 접고 고향 땅(한국)에서 노년을 보내고 싶다고 하셨다. 시어머님께서는 친정 가족(동생)들이 가까이 살기에 한국으로 가시는 것을 꺼리셨다. 지금 약 5년째 두 분이 한국에서 살고 계시는데 정작 싫다 하시던 어머님이 더 좋다고 하신다. 지난가을 어머님댁을 찾았을 때 "얘, 흑 마늘 맛 좀 봐라!"하시며 흑 마늘을 한 움큼 내놓으신다.
"어머니, 쫄깃쫄깃 맛이 그만인데요?"하고 말씀드리니 만드는 방법을 막내며느리에게 일러주신다.
그리고 그렇게 미국 보스톤 집에 도착해 바쁜 생활 속에 1년이 훌쩍 지났다. 얼마 전 어릴 적 친구가 전화가 왔다.
"너희 집에 오래된 전기밥통이 있니?" 하고 말이다.
"왜?"하고 물으니….
"흑 마늘 만드는 법을 찾았는데…."
"한 번 만들어 볼까 싶어서…." 하고 전화가 온 것이다.
"이 언니가 먼저 만들어 봐야겠다."
"우리 어머님께서 지난해 가르쳐주셨는데…." 하고 친구에게 얘길 하니.
"그래, 그럼 네가 만들어 보는 게 낫겠다." 하고….
지하실 구석의 물건들을 둘러보며 큰 밥통을 두 개나 찾아 놓고, 마늘은 가까이 지내는 아저씨에게 한 박스를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마늘 한 박스를 야채 시장에서 아저씨가 사다 주셔서 아저씨네랑 우리랑 두 집이 나누기로 했다. 우선 어머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깨끗이 마늘을 다듬고 뿌리도 깨끗이 잘라내었다. 큰 전기밥통 두 곳에 마늘을 가득 담고 나니 마늘이 조금 더 남았다. 우선 마늘 담은 두 밥통을 부엌에다 놓기로 정하고 전기를 꼽고 보온으로 고정시켜 놓았다. 하루 이틀이 지나니 냄새가 부엌에서 진동하기 시작했다. 집안에 온통 마늘 냄새가 아래층의 방마다 여기저기에서 코를 찌른다. 대문을 들어서는 다이닝 룸과 컴퓨터 방, 훼밀리 룸에까지 진동을 한다.
이층의 방들은 문을 닫아 놓아 다행이었다. 아래층은 대문을 열고 들어오기가 무섭게 현관에서부터 코를 찌르기 시작했다. 남은 마늘을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작은 전기밥통을 하나 더 찾아 그 밥통의 것은 친구를 주기로 하였다. 친구에게 작은 밥통의 마늘은 큰 밥통의 것보다 한 이틀 늦게 꼽아 놓았다고 일러주며 방법을 차근차근 전해주었다. 아마도 친구 집에도 마늘 냄새가 진동하고 있을 게다.
그렇게 어머님께서 일러주신 대로 전기밥통에 전기를 꼽고 9일을 기다렸다. 남편도 남편이지만 아이들에게 여간 미안하지 않았다.

"정말, 냄새 지독하다!" 하고 말을 던지니 우리 집 큰 녀석이 하는 말.
"엄마, 마늘 냄새가 많이 나니 강아지 냄새가 덜 나는데요" 한다. 그 녀석의 말이 맞았다. 후덕찌근한 날씨나 비가 내린 날에는 영락없이 강아지 냄새를 감출 수가 없다. 그런데 이 녀석의 말대로 '티노(강아지) 냄새(실례한 냄새까지 포함)'를 잠시 잊은 것이다. 삶에서 또 다른 것(삶)을 깨닫는 날이었다.
세상에 쉬이 되는 것이 어디 있을까. 9일 동안의 기다림이 있었다.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흑 마늘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하고 말이다. 날짜를 계산하여 캘린더에 동그라미를 그려놓았었다. 바로, 그날이 그날이었다.
"얘들아, 이리와 봐!"
"남편을 불러 자랑을 하며…."
"정말, 신기하다."
"그렇지???" 하고 남편과 아이 둘에게 묻고 또 묻는다.
"정말, 신기한데?" 하고 답해온다. 통마늘을 밥통에서 꺼내어 몇 조각으로 나누어서 키친 테이블에 넓게 펼쳐놓았다. 그렇게 한 이틀을 말리니 검은 마늘이 꾸득꾸득 해졌다.
이제는 눈으로 보았으니 맛을 봐야 할 차례다. 남편은 여느 남편들에 비해 이런 '특별한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럼, 좋아하는 내가 먼저 먹어볼까?" 하고….­
꾸득꾸득해진 마늘을 입에 넣고 씹으니 쫄깃쫄깃한 맛에 단맛까지 느껴진다. '성공이다'를 외치며 며칠 더 말리다가 마늘을 사다 준 아저씨(언니)네 집에 반 정도를 내려주고 며칠째 더 말리는 중이다. 집에 있던 꿀에 몇 조각 흑 마늘을 넣어 먹어보며 기다림 후에 오는 기쁨이란 바로 이런 것(흐뭇함)이 아닐까 싶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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