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극히 즐거운 일
보스톤코리아  2007-05-15, 11:43:36 
강금희(렉싱톤 거주)

  "나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높다하리요 어머니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충효사상은 삼국시대부터 강조되어 왔다는데 1960-70년대의 한국도 그랬다. 당시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던" 초중등학생들은 서당 아이들처럼 수많은 노래를 외웠다. 삼일절, 육이오, 광복절, 제헌절, 개천절 노래를 암기하고, 스승의 날, 어린이날, 어머니날 노래를 외워 불렀다. 어머니날 노래를 부르며 어머니들 가슴에 빨간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던 아이들의 진지한 표정 위로, 노래를 듣다가 눈물을 훔치던 어머니들 모습이 겹쳐온다.
  당시에 노래하던 아이들은 깨닫지 못했다. 혼자서는 자신에게 허락하지 못했던 눈물을 곁에 있는 다른 어머니들을 핑계삼아 흘렸으리라는 것을 아이들은 짐작하지 못했다. 입 하나 줄이느라 고만고만한 여자애들이 타지로 식모살이 떠나고, 보릿고개에 아이들은 줄줄이 풍년이어서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표어가 동회 앞에  내걸리던 시절, 삶은 대부분의 어머니들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걸어도 걸어도 끝없던 피난길을 걸어보았던 어머니들에게는 드륵드륵 쌀뒤주 바닥을 긁으며 내쉬던 당신네 어머니들의 긴 한숨소리도 귓전에 생생했으리라 짐작하기에 아이들은 어렸다.  
  세월이 흘러야 했다. "쓴 것만 알아 쓴 줄 모르는 어머니, 단 것만 익혀 단 줄 모르는 자식" (김초혜), 어린 아들이 짜장면 한 그릇을 함께 시켜놓고 당신은 짜장면이 싫다고 했던 어머니를 이해하려면 더 기다려야 했다.
         부모님 계신 제는 부몬줄 모르더니
         부모님 여윈 후에 부몬줄 아노라
         이제사 이 마음 가지고 어디다가 베푸료 (이숙량, 조선시대 문인 이숙량)
시인의 사모곡에 가슴이 싸아해지고, "자식들 다 키우고 이제는 부모님께 효도해야지 하고 고개드니 이미 부모님은 계시지 않네요. 할 수 있을 때 잘 해 드리세요" (무명, 보스톤 거주), 한스런 읊조림에,  부모 찾아 태평양 넘는 입양아의 애증에 찬 설움에 먹먹해 질 때, 자기 부모를 부모를 넘어 볼 수 있게 되었을 때에야,  아이들은 어머니들이 흘리던 눈물의 성분을 이해하게 되었다. 어느덧 노래를 부르던 아이들은 아버지가, 어머니가 된 것이다.  
   노래를 듣던 어머니들에게도 세월은 어김없이 거쳐갔다. 자칭 타칭 "국제파출부"라는 우스개 소리를 해가며 유학간 딸 아들 보러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어머니들. 얼씨구나, '팥쥐엄마'마냥 이것 해달라, 저것 해라 부려대는 딸과 며느리 앞에 '콩쥐'가 된 어머니들. "현모양처"상은 "여성의 일방적인 희생과 억압을 요구하는 이데올로기요 구시대의 유물"이라 평가하는 이론이 후대에 생겨났지만, 이 시대에도 기력있는 "할머니"는 여전히 "쓸모"가 있는 듯하다. 미국거주 어머니들도 2세의 창창한 앞날을 위해  3세를 돌보아주려고 타주 "출장"을 마다 않는다. "에고  허리야"를 연발하면서도, "아이들 다 키워 떠나보내면 하고픈 일도 많았는데,  이제는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 정작 내 황금기는 지나갔나봐요", 쓸쓸해하다가도, 손녀손주녀석의 웃음 한 방에 무력하게 녹아버린다. 할머니가 된 이런 어머니들을 보노라면, 어떤 한 시대의 사랑법은 동시대를 살았던 그들만이 평가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인지도 모른다.
  요즈음 이들 중노년 사이에 유행하는 재치문답이 있다고 한다. 아들 딸을 시집 장가보낸 후의 서운한 마음을 담고 있다.
   "장가간 아들은?"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며느리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시집간 딸은?"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효의 바이블이라는 뜻을 가진 <효경>은 유교효도의 기본서이다. 공자가 제자인 증삼에게 효를 설명하는 형식으로 서술되어 있는데, 공자는 모든 덕의 근본은 효라고 하였다. 그러면 효란 무엇인가? 공자는 효의 처음과 끝을 일러준다. 효의 시작은 신체는 머리털에서 살갗에 이르기 까지 모두 부모에게서 받았기 때문에 감히 이것을 상하지 않는 것이요, 효의 마감은 몸을 세우고 올바른 길을 걸어서 이름을 드날려서 부모를 빛나게 하는 것이다.  새삼 공자 운운한다고 해서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효도(입신양명)의 길이 막혀있었던 "옛날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나라가 부모자식간에 맺은 정과 도리를 강조하지 않았겠느냐마는, 우리 한국만큼 효를 윤리도덕이요, 통치사상이요, 예술 소재로 삼은 나라는 드물 것이다. 반복해도  고전은 지겹지 않다는데, 게다가 즐거운 시조가 여기 있다. 어느 선비가 효라고 하는 시제를 놓고 생각에 잠긴 채 앉아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진지한 표정 위로 미소가 떠오른다. 선비는 붓을 들어, 어린애 장난을 하면서 늙은 부모를 기쁘게하고자 하는 70세 어른을 노래한다.
    하늘 아래 극히 즐거운 일은 노래자의 정성이라,
    반의로 춤을 추어 늙도록 어린체 하는 것은
    백세 후 다시 못할 일은 이뿐인가 하노라.  
(조선시대 문인 백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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